스위스의 깨끗함과 프랑스의 낭만이 어우러진 서쪽의 작은 도시, 뇌샤텔 Neuchâtel

한국 토종감자 이곳에서 스위스댁이 되다



 저기 보이는 저 성이 스위스에 있는 오이군네 집...이라면 부담됐겠지 ^^; 오이군의 고향 뇌샤텔 전경


나는 어릴 적 부터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14년 동안 살았던 발산동을 제외하면 한동네에 3년 이상 살아본 기억에 별로 없는데, 내가 두번째로 긴 시간을 보낸 곳은 가기로 마음먹기 전 까지 꿈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스위스의 뇌샤텔이라는 도시였다. 2006년 불어를 배우겠다며 용감하게 뛰어들었던 나의 첫 유럽도시로 6개월정도 불어학원을 다닐 생각에 발을 딛었는데, 어쩌다 보니 스위스댁이 되어 5년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순간부터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던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에 나오던 문구가 나를 늘 따라다니는 듯 하다. 직장인으로 살던 시절의 내가 언젠가 스위스 댁이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긴, 그건 오이군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버지께 반강제로 등떠밀려 왔던 호주어학원에서 어떤 동양인 여자를 만나고, 그게 인연으로 이어져, 키키라는 별명이 키서방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둔갑할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오이군은 사실 한국인 친구들 사이에서는 키서방으로 불린다.



오이군, 키서방의 고향인 뇌샤텔은 스위스기준으로는 나름 큰 도시인데, 관광객들에게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 대부분의 가이드북에는 그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으니까. 여기 티스토리 에디터 지역태그 선택만해도 그렇다. 치즈로 유명하지만, 사이즈는 코딱지만한 시골마을 그뤼에르는 버젓히 리스트에 자리하고 있지만, 한 칸톤의 수도인 뇌샤텔은 리스트에서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뇌샤텔도 스위스의 다른 도시들 못지 않게 아름답고, 휴양지로 손색없는 곳이다. 넓고 푸르른 뇌샤텔 호숫가에는 곳곳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바베큐 터가 있고, 뒤쪽에 쥬라 산맥에 오르면 아름답게 빛나는 호수와 저멀리 알프스 산맥을 한눈에 감상할 수도 있다. 산에는 야생 산양들이 뛰놀고, 그 산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들에 가면 시원한 앱생트를 마실 수 있다. 반고흐가 마시고 귀를 잘랐다는 설이 전해지는 술, 앱생트의 본고장이 바로 칸톤 뇌샤텔의 발 드 트라베르 지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환각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던 성분들은 모두 제거되고, 제조되니 안심하시길 ^^;


어쨌든 감자와 오이가 가장 그리운 것은 뇌샤텔 호숫가에서 바베큐를 구우며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 한모금. 사실 우린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서 레몬맛 스미노프 한모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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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중심에 있는 뇌샤텔 성


뇌샤텔 Neuchâtel은 고대 프랑스어로 새로운 성이라는 뜻이고,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감자와 오이가 스위스에 살던 때 뇌샤텔 1000년 기념 축제를 했었으니까) 스위스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주변 작은 마을들을 다스리며 지역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곳으로, 커다란 뇌샤텔 호수 주변에는 여러 도시와 마을들이 있는데, 당당히 뇌샤텔이 호수에게 그 이름을 주게 되었다.

이름은 불어이다보니 한글 표기가 어려운데, 발음은 뇌샤뗄, 뉘샤뗄, 뉴샤뗄 뭐 대략 저런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되겠다. 간혹 가이드북같은 곳에는 독어 표기로 노이엔부르그 Neuenburg로 적혀있기도 한데, 이곳은 100% 불어권 지역이다. 스위스는 4가지 언어가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 있는데, 60%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독어 그다음이 30%의 불어, 9%의 이탈리아어 그리고 1%를 차지하는 로만슈어가 있다. 로만슈어는 들어보면 독어같기도 하고, 이탈리아어 같기도한 알프스 산간지역에서 쓰던 언어인데, 매우 극소수의 인구가 사용함에도 국어로 지정되어 있는 걸 보면 스위스는 중립국 답게 소수의 목소리도 존중하는 모양이다...라고 추측해 본다. ^^; 어쨌든 여러 언어가 국어로 지정되어 있다보니 마을이나 도시에따라 두가지 언어를 쓰는 인구가 섞여 살기도 하는데, 뇌샤텔은 칸톤내에 있는 모든 마을이 전부 불어만을 쓴다. 



뇌샤텔 호수는 스위스에 온전히 포함된 호수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데, 날씨가 좋은 날엔 이렇게 호수 넘어로 알프스 산맥이 웅장하게 보인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융프라우도 보이고,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블랑도 보이고. 

오래전 처음 스위스에 도착했던 날, 호숫가에 섰는데, 날이 서서히 개면서 저녁 무렵에 이렇게 알프스 산맥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의 신비로운 느낌이란. 달력에서 보던 만년설 쌓인 삐죽 삐죽한 산들이 눈앞에 HD로 펼쳐지는데, 참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더라.


알고 계신지? 융프라우를 유럽의 지붕, 탑 오브 유럽이라고 광고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융프라우가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린줄 아시는데, 융프라우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다.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프랑스-이탈리탈리아 국경에 있는 몽 블랑Mont Blanc이고 (빵집이 아니라 봉우리 이름 ^^;), 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체르마트 동쪽 스위스-이탈리아 국경 근처에 있는 몽 로사Mont Rosa이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야생 백조도 이곳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스위스에 가기 훨씬 전, 뉴질랜드에 친구들과 여행을 간적이 있는데, 공원의 작은 동물원에 백조 한쌍이 있었다. 그중에 숫놈이 백조의 호수 발레에서 봤던 것 처럼 날개를 부풀려 물에 떠다니는 모습이 신기해서 뚫어져라 구경했는데, 오히려 오이군을 비롯한 유럽 친구들은 그런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너 백조 처음 봤니? 뭘 그렇게 열심히 봐. ^^

응, 나 백조 처음봐. 진짜 크고 이쁘다. 발레에서 날개를 부풀리고 있던 사람들이 진짜 백조를 흉내낸거구나아~ 신기하네.

뭐? 백조를 진짜 처음봐? 울동네에 널린게 백조인데...그럼, 참새는 본적 있니? 비둘기는?

...-_-; 그...그런 새는 울동네도 있단다.


스위스에 와서 보니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정말 호수에 참새처럼 널린게 백조였기 때문. 오리, 물닭, 논병아리 등 한국에서 보던 물새들도 많은데, 백조가 물새의 30%정도를 차지하는 듯 보였다. 한국에도 고니가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야생에서 본적이 없어서 이 야생 백조들이 우아하게 물위를 떠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더라. 그런데, 힘이 세서 이쁘다고 가까이 갔다가 먹을거 달라고 팔이라도 물었을 경우 뼈가 부러질 정도라니 조심하는게 좋다. 특히 아이들은.



 내겐 너무 커다란 세상


스위스에 오니 사람들도 참 크다. 나는 165cm로 스위스에서도 여자키로 보통은 되지만, 그래도 오이군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키가 큰 여자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특히 남자들은 오이군 정도의 키는 흔하게 널렸기 때문에 길을 걸으면서 종종 내가 난장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그나마 불어권 지역 사람들은 독어권 지역 사람들에 비해 평균키가 살짝 작은 것도 같지만 내게는 뭐랄까...도토리 키재기가 아니라 뽕나무 키재기랄까?



 도시 중심인 마켓플레이스. 햇살 좋은 날이면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 한잔에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뇌샤텔 칸톤은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데, 언어 뿐만 아니라 건물양식이나 생활, 문화, 음식 들도 프랑스 서쪽과 흡사하다. 뭐 옛날에 나라로 나뉘기 전에는 그냥 옆마을이었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하지. 어쨌든 나는 생각하던 스위스의 집모양이 아니라서 도착했을 때 살짝 실망을 했던 것도 같다. 창문가에 빨간 제랴늄이 방실 방실 웃고있는 알프스 스타일의 집들을 상상했는데. ^^; 그러나 깔끔하기로 이름난 스위스 답게 거리는 물론 자연 구석 구석까지 참 깨끗한 편. 



물가에 있는 마을이니만큼 보트나 요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많아서 유람선 선착장 이외에도 개인소유의 배들을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트를 가지고 있으면 거의 재벌에 가깝겠지만, 여기는 요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재벌은 아니다. ^^; 부모, 형제, 자매 가족이 돈을 모아 같이 소유하는 경우도 있고, 스위스는 보통 회사원 월급이 높은 편이니 열심히 저축하면 한번 꿈꿔볼만도 하다. 오이군네 가족도 한척 가지고 있어서 종종 뱃놀이를 가곤 했는데, 지금은 팔아버려서 지나버린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요트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몇몇 있어서 가끔 스위스에 가면 여전히 야채들도 마치 갑부인양 요트위에 나른하게 누워 호사를 즐겨 볼 수 있다는. ^^;;



 동화속에서 막 뛰쳐나온 듯 한 모습의 뇌샤텔 성


이름이 뇌샤텔, 즉 뉴캐슬이어서 일까?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 다운 곳은 바로 성 주변이지 싶다. 도시 중심에서 옛 스타일을 그대로 보존한 돌길을 따라 성까지 오르면, 붉은 지붕으로 덮힌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스위스에는 정말 중세시대 영화처럼 마을마다 높은 곳에 성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에 여전히 개인 소유의 집인 곳도 있고, 레스토랑이나 연회장으로 바뀐 곳도 있고, 정부 관공서나 박물관 또는 공동 주택으로 사용되는 곳도 있다. 뇌샤텔 성은 정부 소유로 윗층들 일부는 관공서로 일반인 출입이 불가능 하지만, 안뜰과 교회 등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해질녘 물새들이 쉬고 있는 뇌샤텔 호수 풍경. 저 멀리 알프스의 웅장한 능선이 보인다




그러나 역시 뇌샤텔이 매력있는 이유는 바로 이 호수 덕분이지 싶다. 사계절 마음의 창이 되어 주는 아름다운 호수. 알프스 근처의 호수들처럼 빙하물이 유입되거나 한 것은 아니라 독특한 코발트 블루는 아니지만, 맑은 날이면 동해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새파란 빛을 띈다. 크기도 약간 오버하면 바다처럼 드넓어 모든이들이 부대끼지 않고, 공평하게 쉴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 준다. 이 호수가 없었더라면 지루한 스위스에서 5년 6개월을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주말에 호숫가에서 수영하고, 바베큐 굽는 맛을 되새기며, 쌀쌀하고, 비 많이 오고, 안개가 걷히지 않는 겨울과 봄을 간신히 버텼었다.



 낙엽이 모두 떨어진 늦가을부터 봄이 내리기 전까지는 도시 전체가 고요해 진다. 특히 겨울엔 한달씩 안개가 걷히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러면 낭만히 흐르던 호숫가는 좀비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처럼 텅 비어 버린다



 정말 할 것 없는 추운 겨울에는 가끔 호숫가로 새 모이를 주러 오곤 했다


그런데, 위에 이곳을 스위스 서쪽에 있는 뇌샤텔 칸톤의 수도라며 소개를 해서 큰 도시로 오해를 하면 곤란하다. 오이군이 처음 이곳을 소개해 주며, 시내 중심에 도착했다고 느껴지면 스탑을 외치라고 했는데, 나는 결국 맞추지 못했었다. 시내 중심이라고 해 봐야 서울 변두리 지하철 역 주변 만큼도 사람이 없으니, 복작 복작한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감자는 시내 중심가가 이렇게 한적할 수도 있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뇌샤텔은 중심가를 천천히 돌아도 2시간이면 다 둘러보는 조그만 도시다. 그나마도 상점, 카페들이 전부 일찍 문을 닫아서, 저녁 6시가 넘으면, 펍에 앉아 안주 없이 맥주나 홀짝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다. 지금이야 별로 상관이 없는데, 20대때는 정말 좀이 쑤시고,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그곳에 살 때 시끄러운 네온사인 번쩍이는 도시의 활기가 그리우면, 나는 뒷산으로 갔다. 그곳에서 빌딩숲대신 진짜 나무가 울창한 숲을 만났다.

친구들과 수다떨며 하던 맛집 , 카페 탐방이 그리우면 나는 호숫가로 갔다. 그곳에서 음식점의 맛대신 나는 자연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스위스의 대자연이었다. 자연이야 늘 그 자리에 있었으니 발견이랄 것도 없지만, 그 전에는 봐도 관심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던지라 내게는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 멋진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갖고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겨울 뇌샤텔 호수의 노을. 겨울에는 물새들이 체온을 뺐길까봐 하루종일 물위에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겨울엔 호수가 수많은 검은 점으로 뒤덮힌다


처음엔 나에게 너무 작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느리고, 지루하기만 했던 뇌샤텔. 5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어느새 미운정 고운정이 잔뜩 들어 이제는 나에게도 살짝 고향같이 느껴지는 스위스의 작은 도시를 차근 차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스위스댁, 키서방과 함께 떠나느 스위스 투어, 준비 되셨나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제부터 시작될 스위스 이야기들의 서문입니다.
뇌샤텔을 시작으로 야채커플과 함께하는 스위스 구석 구석 그랜드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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