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댁과 함께하는 스위스 문화체험

감자와 오이의 결혼식으로 엿보는 스위스의 결혼 문화 ②


7살, 감자 오이

미운 일곱살 vs 럭키 세븐



생일 축하해!


아침잠 많은 감자와 오이가 웬일로 발랄하게 인사를 나누며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은 우리가 마리오 루이지를 사칭하며 공식적인 부부가 된지 어언 7년, 7살 부부가 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마리오, 루이지 사칭을 모르시는 분은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 콧수염 붙이고 결혼한 여자


어린이는 7살쯔음 되면 미운짓을 많이 해서 미운 일곱살이라는 말도 있는데, 부부도 그럴까?

아니면 행운의 7 이니만큼 행운이 덩굴채 굴러 들어 올까?

감자 오이의 영문명이 LuCKi이니 만큼 후자쪽에 기대를 걸며 신나게 7년째 첫째날을 맞이했다.

감자와 오이가 왜 LuCKi 인지 모르는 시는 분은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 LuCKi의 의미


우리에겐 매년 두번씩 찾아오는 결혼 기념일, 13번째 기념일이라 이제 더이상 시도해 볼 이벤트가 남아있지 않아서, 간단히 수제 버거와 칵테일을 한...아니 세잔 마시며 소박한 세레모니를 했다. 요 수제버거집이 참 괜찮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난번 소개드렸던 동사무소 결혼식에 이어 6개월 후에 있었던 교회 결혼식 말이다. 약속드린 웨딩 드레스 사진도 공개할 예정이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 할지도. ^^;


아, 교회 결혼식으로 넘어가기 전에, 일단 관공서 결혼식 때 지인들에게 결혼소식을 알리느라 감자가 하룻밤을 꼬박 새서 만들었던 웨딩 플래시 카드를 감상하시고 넘어가자. 이게 뭔 어이 없는 허접한 카드냐 물으시겠지만, 일단 7년전에 만들어진 카드인데다가 나는 웹디자이너도 에니메이터도 아니다. 플래시 초보의 순수 노가다로 우리의 만남에서 결혼까지를 결혼식 테마에 맞춰 함축적으로 담아 본 카드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볼륨을 키우고, 감상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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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동화

나 어릴 적 꿈꾸던 결혼식


지난번에 말씀 드렸듯이 스위스에서는 보통 결혼식을 두번 하게 된다. 관공서 결혼식종교적 결혼식으로, 전자는 보통 부모님과 절친만 불러 간단하게하는 결혼식이고, 후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결혼식이다. 딱히 종교가 없으면 관공서 결혼식 때 모두 초대해서 피로연을 해도 되지만, 나는 기독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비자 기한에 밀려, 초스피드로 관공서 결혼식을 진행하느라 당시에는 큰 파티를 준비를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도 스위스의 일반적인 흐름을 따라 간단한 관공서 결혼식을 마치고, 6개월 후에 교회에서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6개월 후.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애초에 계획했던 교회가 아니라 아래 사진 속의 동화같은 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니, 웬 성?

오이군의 정체가 알고보니 유럽의 왕자라도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스위스 재벌?

그럴리가. 로또 1000원 당첨도 잘 되지 않는 감자양에게 그런 대박 횡재수가 내렸을리가 없다. ^^; 오이군은 평범한 직장인일 뿐.




느림보 커플

느려터져서 공주된 사연


그렇다면 성에서의 결혼식은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스위스에서는 이런 경우가 흔한 걸까? 

별로 그렇지도 않다. 정황은 이러했다.


스위스의 관공서 결혼식은 지난 포스팅에 소개 드렸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종교적 결혼식은 보통 다음과 같이 진행 된다.



스위스 교회 결혼식 순서 요약


1. 2시-3시 쯤 : 교회에서의 예식

2. 4시 쯤 : 레스토랑 또는 카페에서 초대객 전부와 함께 아페로 Apero 라 불리는 식전 음료 파티 진행

3. 6시 쯤 부터 약 10시 까지 : 절친과 가까운 가족만 추려 코스 메뉴 저녁 식사, 이벤트, 게임 등

4. 밤 10시 이후 : 자유의사로 남을 사람은 남아 밤샘 파티



시간이라든지 프로그램 등에는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결혼식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우리나라의 동해번쩍 서해번쩍 하다 뚝딱 끝나버리는 결혼식과는 상당히 다른 리듬을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결혼식은 그야말로 하루 종일 이어지는 풀코스 파티. 따라서 식을 위해 준비할 것이 상당히 많다. 일단 예식을 위한 교회와 아페로(식전 음료 파티)가 진행될 곳, 저녁 식사가 진행될 곳을 각각 예약해야 한다. 스위스에도 결혼 준비를 대신 해주는 대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가격이 어마어마 할 뿐만 아니라, 제네바, 로잔, 취리리 정도의 등의 대도시가 아니면 그나마 있지도 않다. 결국 각자 알아서 예약해야 하는데, 사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스위스에는 결혼할 장소가 얼마 없었던 것이다!


중, 소도시에는 결혼식을 할 교회가 한마을에 하나 둘씩 밖에 없고, 피로연을 위해 대인원을 수용할 곳도 별로 없다. 따라서 결혼 성수기인 봄, 여름엔 훠얼씬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세 장소의 스케쥴이 맞지 않아서 날짜를 잡는데 상당히 애를 먹는다. 대부분의 커플은 결혼 준비기간을 1년정도로 잡고, 차근차근 예약에 들어가는데, 지인중엔 2년 전부터 준비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처음엔 황당하게 느껴지더라. 2년 사이에 맘 바뀌면 어쩌나. ^^; 그런데, 막상 내게 닥치고 보니 그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개월 뒤에 결혼을 해야하는데...

결혼할 장소가 없는게 아닌가.


▲ 프렐Prele 마을의 호수가 보이는 교회. 요런 훌륭한 위치의 교회는 행동이 느린 커플에게는 그림의 떡



우리는 비가 많이 오는 스위스를 고려해 그나마 맑은 날이 많은 8월로 날짜를 잡았는데, 남들도 그때를 선호했던가보다. 웬만한 규모의 레스토랑이나 연회장 중 마음에 드는 곳은 이미 2년 후까지 예약이 찼다고 한다. 그렇다고 날짜를 늦출 수도 없었던게, 내가 9월부터 시작하는 대학 부속 불어과정에 등록을 해버렸기 때문. ㅠ_ㅠ


결국 우리는 편법을 선택했다. 교회를 건너뛰고, 레스토랑에서 아예 식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한국인인 나에게는 이게 그다지 놀라운 선택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호텔 결혼식에는 간혹 식을 진행하는 동안 음식이 서빙되기도 하지않는가. 그래서 오이군에게 아예 아페로는 빼고, 예식과 저녁식사를 동시에 진행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이군 눈이 휘둥그래지며


그럼 우리 결혼하는데, 다들 안쳐다보고 밥먹는거야?

음. 한국에서는 결혼식 아예 안들어가고 밥만 먹고 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하고보니 조금 민망하더라. 그동안 결혼식에 정말 아무생각없이 참여했구나. -_-;


이러해서 사진속의 보마퀴 Vaumarcus라는 이름의 성은 예식과 아페로가 진행됐던 음식점이다. 예전에는 마을 영주의 성이었겠지만, 지금 입구쪽은 음식점으로 쓰이고, 정원과 내부 볼룸은 이렇게 파티가 있을 때만 대여하는 모양이다. 일반 음식점보다 가격이 살짝 높았지만, 당시 가능한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그나마도 감지덕지. 대신 우리는 교회를 대여하지 않았고, 결혼식장 데코레이션을 우리가 직접 함으로써 비용을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다. 

.

..

응?

...

결혼식장 데코를 직접한다고? 

그렇다. 스위스에서는 예식장 장식 조차도 알아서 따로 예약해야 하므로 그런 선택이 가능했다.




내손으로 만드는 결혼식

결혼식장 꾸미기


스위스의 결혼은 비용면에서 한국보다 저렴하다. 이유인 즉슨, 남자는 집을 사오지 않아도 되고, 여자는 혼수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양가 가족에게 전달해야 할 예물의 의무도 없다. 결혼은 그야말로 두 사람이 만나 둘이만 잘 살면 되는 것. 물론 같이 살려면, 집과 살림이 필요하겠지만 둘이서 소박하게 시작하는게 일반적이므로 우리나라처럼 돈없어서 결혼 못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결혼 자체도 부모님께 허락을 받기 보다는 보고를 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스위스의 결혼 의식 자체는 한국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신랑 신부의 진을 쏙 빼 놓을만큼 준비할 것이 많다.

일단 첫번째로 교회를 예약해야 한다. 물론 유료이고, 교회 대여료, 주례 봐주실 목사님이나 신부님께도 주례비를 드려야하며, 반주자와 성가대에게도 일당을 지급해야 한다. 또 교회를 꾸며줄 플러리스트를 고용해야 하는데, 이 모든게 인건비가 우리나라의 두세배는 비싼 스위스에서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다행히 우리는 교회대신 음식점으로 쓰이는 성의 정원에서 예식을 진행하기로 해서, 교회 대여료를 굳힐 수 있었다. 음식점 정원에 파이프 오르간도 있을리가 만무했으므로, 반주자가 필요 없었고, 컴퓨터로 음악을 틀기로 했는데, DJ를 부업으로 뛰는 친구가 있어서 DJ와 대형스피커 등을 무료로 지원 받을 수 있었다. ^^ 

정원을 꾸며줄 꽃은 가족들이 예식전에 근처 해바라기 농장에 가서 직접 꺾어오기로 했다. 그러면 꽃집에서 사는 것의 1/5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 이 꺾은 꽃은 며칠 전 다같이 상의한 위치에다 친한 친구들이 식전에 가서 배치해주기로 했다. 감자양이 직접 천파는 곳에가서 떼어온 리본도 친구들이 주렁 주렁 달아주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비용을 줄이고 나니 조금 비싼 음식점을 빌린 것을 대충 무마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게 고마운 가족과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불가능 했으리라.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례없이 화창한 날씨에 꽃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고개를 숙였다는 것. 입구에서 방글 방글 축하객을 반겨줘야할 해바라기가 식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수줍게 고개를 숙여버렸다. ^^;




뉘샤텔Neuchatel 호수가 드넓게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정원.

그러나 이곳에는 하객이 앉을 벤치가 없어서 이것 역시 직접 공수해 와야 했다. 이사람 저사람에게 묻고, 물었더니 누군가가 어떤 목수네 마당에 오래되어 쓰지 않는 벤치가 잔뜩 있다는 정보를 건네 주었다. 그 목수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흔쾌히 벤치를 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무거운 나무 벤치를 직접 옮겨와야하는 과제가 남았지만, 이만하면 훌륭하다. 게다가 무료.

이는 식전에 신랑 오이군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트럭을 빌려 직접 옮겨와 닦고, 광내서 정원 단상 앞에 가지런히 배치해 주었다. (그때 나는 미장원에서 머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 ) 


이렇게 여러사람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결혼식, 감사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더라.




이것이 세팅 완료된 결혼식장. 

커다란 나무를 잘라 만든 단상에 해바라기 꽃 더미를 놓고, 그 앞에 벤치를 배치했다. 옆에는 예식 후 칵테일과 핑거푸드가 서빙될 테이블이 놓였다. 나무 벤치 사이에 신랑 신부 입장할 레드카펫도 깔았는데, 의외의 곳에서 튀어나온 문화적 차이. 

나는 한국 예식장에서 본 대로 레드카펫을 깔자고 제의했을 뿐인데, 스위스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던가보다. 모두 의아한 목소리로 카페트? 엥?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이상하면 없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결국 신부가 원한하면 깔자는 결론이 나서 카펫집을 한다는 지인의 친구의 친구에게 물어 물어 카펫을 공수하게 되었다. 이역시 무료로 제공. 다시한번 감사.




결혼식까지 신랑 신부는 서로 만날 수 없습니다

전통과 미신의 차이




오늘의 신랑 오이군을 소개합니다.

크하핫. 다시 봐도 반할것 같은 결혼식장의 내 남편. (팔불출 마누라...난리 난리)


굉장히 그런지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오이군이 정장을 입은 모습을 처음 본게 바로 우리의 결혼식장에서 였다. 오늘 오이군은 그와는 반대로 패션에 남달리 관심이 많은 형의 작품. 웬만한 양장점보다 개인 소장 양복이 많으신 분이라 오이군은 양복을 대여하거나 구입하는 대신 형 옷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살짝 사이즈만 수정했다. 사이즈 수정도 옆집에 사는 의상전공 친구가 직접 해 줬고, 형이 아침부터 직접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단골 헤어샵에서 머리 손질에서부터, 면도를 손수 지시해서 결혼식장에 데려다 놓았다고 한다. ^^


그런데, 나는 요 때빼고 광내 놓은 오이군을 식장에 들어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이유인 즉슨 스위스에선 전통적으로 신랑 신부가 결혼 전날부터 서로 얼굴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려면 식장에 들어갈 때까지 서로의 결혼예복은 물론, 전날엔 얼굴도 봐서는 안된다고. 살짝 미신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미 6개월전에 관공서 결혼식을 마치고, 같이 살고 있다가 갑자기 전날부터 콧빼기도 안비치니 은근 궁금하고, 보고 싶더라. 나름 로맨틱한 전통이지 싶다.





신부 입장은 늦어야 제맛

12센티 킬힐 신고 달리기


이 달려가는 신부가 바로 지난번 콧수염 붙였던 여자, 감자양. 마치 결혼 파토내고, 옛 애인 찾아 도망가는 것 같이 나왔는데, 사실 코리안 타임의 절대적인 추종자인 내가 내 결혼식에도 늦어서, 죽어라 달리고 있는 중에 찍힌 파파라치 샷이다 ^^;


예식에 멋져보일려고 늦은건 절대 아니다. 시간약속에 칼 같은 스위스에서 그런 객기를 부렸을리는 만무하다. 단지 신부화장을 내손으로 직접 했는데, 그게 생각이상으로 엄청나게 오래 걸렸을 뿐. 아니 왜 또 신부화장을 직접?

이유는 이렇다. 서양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동양인의 얼굴에 별로 익숙하지가 않다. 피부 톤을 보정하는 메이크업 베이스부터 다른 색을 쓰기 때문에 일단 피부톤 조절에서 실패한다. 그러나, 진짜 큰 문제는 눈화장에 있다. 그들의 눈은 쌍꺼풀이 매우 깊게 지므로 아이셰도우를 엄청나게 넓게 바르는 것이다. 동양인의 쌍꺼풀은 훨씬 얕은데, 이렇게 두껍게 셰도우를 칠해 놓으면, 패왕별희의 경극 배우가 되기가 십상. 결국 모험을 하는 대신 직접하기를 선택했다. 내얼굴을 가장 잘 아는것은 나 아니겠는가!

...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이렇게 풀 메이크업을 해 본적이 없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집에 와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했다. 아니 그런데, 연습할 때는 잘 되던 화장이 당일날은 왜이렇게 말썽인지. 속눈썹 붙이는 풀이 눈안으로 들어가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 거다. 결국 눈물을 줄줄 흘리며, 시뻘게진 눈으로 화장을 했다 지웠다를 세번쯤 반복했더니 예식 10분전이 되어 버렸다. 


집으로 데리러온 차를 타고, 식장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신부 입장음악이 흐르고 있더라. 

시간약속에 칼 같은 스위스 사람들, 신부 없이 결혼식을 진행할 기세다.

이런, 킬힐이 문제냐, 달려라 달려! 나도 내 결혼식 가고 싶다구~




일생의 단 하루, 온전히 우리가 주인공


내 인생의 주인공은 늘 나라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때도 내가 온전히 주인공일 수 있는 단 하루는 바로 결혼식 날이지 싶다. 6개월간 준비하며 받은 수많은 스트레스를 모두 뒤로하고, 온전히 이 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사방에 어설픔이 가득 묻은 결혼식이지만, 어차피 지금 수정하기는 글렀지 않는가. 그냥 맘편히 파티를 온몸으로 즐기자.


성의 뒷문으로 들어가 2층에 있는 정문에서 우아하게 걸어 내려와 식장에 들어섰다.

...라고 하고 싶었지만, 뛰어 와서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비올까봐 기도했더니 너무 좋은 날씨를 주셨네 ^^; 세번 다시한 화장이 다 지워지는 느낌이 난다. 게다가 익숙치 않은 12센티 킬힐을 신고, 생크림 케익같은 드레스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는게 쉬운일이 아니라는 걸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사뿐 사뿐 정원에 들어서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내 팔을 잡아 넘어지지 않게 부축하고, 나는 치마를 치든 채, 뒤뚱 뒤뚱 계단을 걸어내려가는 이상한 형국이 되었다. 정원 잔디밭에 푹푹 빠지는 하이힐은 또 어떻고. 우아는 고사하고, 신발 잃어버릴까 발까락에 힘을 꽉 주고 걷느라 자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_-;


드디어 길게만 느껴졌던 계단을 다 내려와서,

어거지로 깔아준 레드카펫을 밟고, 

해바라기가 흐느적 흐느적 시들어가는 단상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6개월 된 내 남편

난생 처음 보는 양복입은 모습에 새삼 반해서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예식은 약 한시간 정도 진행된 것 같다. 다행히 한국처럼 신랑 신부가 내내 서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 준비된 벤치에 앉아 있있는거라 별로 힘들지 않았다. 목사님 말씀이 있고, 중간 중간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나와 총 4번 정도 사랑에대한 시나 성경 구절같은 것을 낭송한다. 축가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우리 목사님께서 잊어버리시고, 불러주지 않는 바람에 노래는 건너 뛰었다. ^^; 신랑 신부도 혼인 서약서를 읽는데, 여기서 나를 울려버린 깜짝 쇼가 있었다.


혼인 서약서는 보통 사전에 목사님과 미팅을 하며 내용을 수정하고, 같이 조정하게 된다. 나는 당시 익숙치 않던 불어로 낭독을 해야해서 초 긴장한 상태로 내용을 달달 외워가지고 들어갔다. 나는야 주입식 교육세대, 달달 외우는거에 익숙하다. 게다가 연습한 내용을 바꾼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창의적인 서양 교육을 받은 오이군은 우리 둘만의 혼인 서약을 남과 함께 조정하는 것이 탐탁치 않았던가보다. 식장에서 갑자기 미리 정했던 내용과 전혀 관계 없는 내용을, 그것도 내가 잘 못알아 들을까봐 불어가 아닌 영어로 이야기 하는게 아닌가. 아...이런. 감동먹은 감자, 애써 울지 않으려고 살짝 고개를 돌렸는데, 때마침 시야에 들어온 울 엄니가 펑펑 울고계신다. -_-;

망했다. 

나도 펑펑. 보고 있던 관갱들도 덩달아 펑펑.

세번 다시한 땀 범벅 화장, 이번엔 팬더화장으로 변신했다.




드디어 예식이 끝나고, 부부로써 첫걸음을 내 딛었다.

우리의 앞길은 초대객들이 핑크빛 미래가 담긴 장미 꽃잎부자로 살라는 뜻이 담긴 쌀을 던지며 축복해 준다.

싸...쌀을...

밥풀 하나도 농부의 노고를 생각해서 소중히 여기라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라서, 늘 스위스의 결혼식장 바닥에 던져지는 쌀을 보면 죄책감이 든다.




웨딩 촬영은 결혼식 당일날


스위스에는 딱히 웨딩촬영이라는 개념이 없다. 보통 결혼식 당일날 예식을 마치고 하게되는데, 아페로 장소로 이동하는 도중 멋진곳이 있으면 신랑 신부만 잠깐 들려 촬영을 하거나, 아페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 여기 쉴틈 없이 빵빵 터지며 웃어댔던 신부와 우리 마누라는 뭐가 이렇게 웃길까 궁금했을 신랑이 있다.

사실 그닥 웃기지는 않았는데, 6개월간 고생한 일이 오늘 끝난다 싶으니 홀가분 했던 것도 있고, 사진 찍는데 사람들이 계속 쳐다봐서 민망함을 저렇게 표출 했던 것도 있다. ^^;


웨딩촬영은 사진과 비디오가 있었는데, 촬영기사를 불렀으면 가격이 상당했겠지만 사진과 영상을 취미로 하는 친구들 세명이 결혼 선물로 자진해 주었다. 다시한번 감사 또 감사. 그런데, 식이 끝나고 보니 사진 씨디를 건네주는 친구들이 총 8명이 되더라. 이렇게 DSRL이 널리 보급된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




이제 모든 식이 끝났으니 정원의 분수에서 아롱 아롱 빛나던 무지개빛 인생이 펼져지려나?



여보, 나 다리 아파 죽겠어. 신발이 너무 높아 ㅠ_ㅠ    오~ 불쌍한 마누라. 니 키가 작아서 그런거니 그냥 버텨봐.




웨딩드레스는 당연히 구입하셔야 합니다

웨딩드레스 이베이 구입기



당황하셨어요?

정말 당황스럽더라. 웨딩 드레스를 대여가 아니라 구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스위스에는 웨딩드레스를 대여하는 곳이 없다. 신부들은 드레스를 만들어 입거나, 맞춰 입거나, 사입어야 한다. 남자들 양복이야 뭐 정장으로 입으면 된다지만 세상에 웨딩 드레스를 결혼식 외에 입을일이 뭐가 있을까. 그야말로 일회용 옷인데, 한번 쓰고 버리도록 부직포로 만든걸 입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벌 사자니 너무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드레스샵 여러곳을 돌며, 직원이 지쳐 쓰러지도록 드레스를 다 입어 보았는데, 제일 저렴한 것은 약 120만원정도였고, 대부분의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300만원 선. 물론 그 이상의 가격의 드레스들도 흔하게 걸려있다. 최고가는 천만원에 다달았던 듯. -_-; 한번 입고, 장롱에 걸어두기는 심장마비 걸릴 액수다. 


결국 동네를 뒤지다가 인터넷에까지 손을 뻗쳤다. 그러다 빠져든 이베이의 세계.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다 있는 이베이에는 당연히 웨딩드레스도 있었다. 그런데, 그 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한게 아닌가? 유명 디자이너 카피 드레스들이 해외배송료 포함 20만원 선. 메이드 인 차이나인게 마음에 걸렸지만 요즘 시중에 도는 물건 중 중국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 찾기가 더 힘들다. 한번 입고 말건데, 내구성이 떨어져도 별로 상관없지 뭐. 


디자인은 한국스타일로 풍성한 것을 골랐다. 서양권 사람들은 영화에도 자주 나오듯이 폭이 넓지 않은 심플한 것을 주로 입지만, 나는 어릴 때 부터 저런 커다란 드레스를 입어보는게 소원이었다. 유일하게 욕 안먹고 공주짓 할 수 있는 날인데, 마음껏 누려야 했다.




드디어 목을 빼고, 기다리던 드레스가 배송되었는데...

상자를 풀다가 다시한번 당황하고 말았다. 

사진과는 굉장히 다른 심각하게 촌스럽고, 조잡하기 그지없는 드레스가 그 안에 멀뚱히 들어있었던 것이다. 화가 나기보다는 머리가 멍해지며, 계속해서 헛웃음이 날 정도의 수준. 해외배송이라 반품할 수도 없고, 결혼 날짜는 다가오고, 난감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다시한번 구원의 손길이 내게 미쳤으니,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중에 의상을 전공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한번 스윽 훑어보더니 '장식 다 뜯자. 내가 고쳐주마.' 라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 친구를 만난지 일년 남짓해서 그런 번거로운 일을 부탁하기가 뭐했는데,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서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또 친구의 실력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해서, 드레스 샵에서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디자인을 슬쩍 카피해, 나에게 딱 맞는 드레스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그 친구 아니었으면 결혼 포기할 뻔 했다. ^^; 진짜 고맙다, 칭구야.




당신의 얼굴이 작품입니다

축하객과 함께하는 웨딩 촬영


결혼식에 축하객이 없다면, 매우 우울할 것이다. 오늘을 빛나게 해주고, 우리가 주인공이라 떠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축하객들이 있기 때문. 게다가 그저 축하만 해 준것이 아니라, 다 함께 이 결혼식을 준비해서, 만들어주었기에 그들의 자리가 더욱 컸다.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들의 모습을 액자에 담아 기념촬영을 하는 시간도 마련해 보았다. (클릭하시면 조금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개인에 초상권 동의를 받지 않아서, 몰래 미니사이즈로 올립니다. ^^;)




예식 후 신랑 신부가 웨딩 촬영을 하는 동안 하객들은 샴페인과 핑거푸드를 즐기면서, 우리가 미리 준비한 게임을 하거나 액자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보통 아페로가 진행되는 동안 이렇게 참가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간단한 게임이나 이벤트를 준비해 심심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 친구들 중에는 마술사나 레크레이션 강사를 부르는 경우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마술쇼가 제일 재미있더라 ^^


그리고, 보통 결혼식이 끝나고, 며칠 후에 축하객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카드를 보내야하는데, 우리는 이날 액자를 들고, 찍은 그들의 사진을 보내줬더니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았다.




부케는 장난이 아니다!

부케 못받아 한 맺힌 사건


모든 웨딩 촬영과 아페로를 마치고 나면,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을 한다. 이때 신부는 차에 타기 전, 여자친구들에게 부케를 던져주는데, 스위스에서는 이게 또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전에 미리 이야기 해 둔 친구에게 부케를 던져주기 때문에, 나도 곧 결혼할 한국인 친구에게 부케를 던져주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던질려고 보니 사전에 이야기가 된 친구 외에도 다른 스위스 친구들이 그 옆에 주르륵 서있는게 아닌가? 음, 뭐지?

어쨌든 나는 뒤로 부케를 던졌고, 돌아보니, 친구들이 치열하게 부케를 잡으러 달려드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원래 부케를 받기로 했던 친구는 의무감에 불타 열성적으로 잡은 끝에 예정대로 부케를 손에 쥘 수 있었고 말이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스토리가 끝났는데, 이일로 한이 맺힌 여인이 하나 있었으니...



그로부터 2년 후, 

오이군의 절친과 그의 여자친구가 결혼 발표를 해서, 같이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자연스레 우리 결혼식 이야기가 나와 옛 추억을 되새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케 대목에서 이 여자친구가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 아닌가. 부케를 잡은 친구 옆에 이 친구가 있었던 모양인데, 내 친구가 목숨걸고 부케에 달려들어 자기를 팔로 밀쳤다는 것이다. 그때 자신은 프로포즈를 하지 않는 남자친구 때문에 한참 애가 타고 있어서, 부케가 절실했건만, 이미 결혼 약속도 잡혀있다고 들은 내 한국인 친구가 목숨 걸고, 부케를 잡은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말이다. 그래서 상황 설명을 해 주었으나 여전히 한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 결혼 약속도 잡은 그 때에도 그렇게 속이 상해 눈물까지 글썽이는 걸 보면, 스위스에서 부케는 절대 장난이 아니다!




냉정한 스위스 결혼식

리본 받은 사람만 저녁식사에 오실 수 있습니다



부케까지 던지고 나면, 이제 신랑 신부는 구형 모델의 귀여운 차를 타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을 한다. 이런 차는 자동차 판매장에 가면, 결혼식 대여용으로 몇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차가 있어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다행히 시아버지께서 젊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일일 운전사가 되어주셨다. 


그나저나, 저 차 앞과 뒤에 생화 장식과 내 부케를 합친 가격이 무려 70만원에 육박했으니, 왜 오전에 힘들게 농장에서 해바라기를 꺾어와야 했는지 이해가 가시리가. 요 꽃도 역시 지인께서 협찬해 주셨다. 또 한번 감사합니다.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미리 나눠 준 리본을 자동차 안테나에 묶고, 신랑 신부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룬다. 스위스 여행 중 주말에 갑자기 많은 차들이 리본을 달고, 빵빵거리거든 이것이 바로 결혼 행렬이니 살짝 다가가 보자. 과일맛 사탕을 던져줄 것이다. ^^ 맨 뒷차는 빗자루 맨이라 불리며 행렬이 잘 따라가고 있나 확인을 하는 차다. 이를 표시하기 위해 자동차 뒤에 빗자루를 달아 놓는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나에게는 매우 이질적이고, 냉정하게 느껴졌던 부분이다. 식사를 모든 초대객에게 대접하는 것이 아니고, 따로 저녁초대를 받은 사람만 식사장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가족과 정말 친한 친구, 동료 만으로 인원을 대폭 제한해 버린다. 이유는 이렇다. 스위스 웨딩 저녁식사는 레스토랑의 코스메뉴나 출장 부페 코스메뉴가 제공되는데, 일인당 가격이 최소 6-7만원으로 10만원이 훌쩍 넘는 경우도 많다. 거기에 와인까지 합하면 1인당 식사 비용이 상당해진다. 그러나, 스위스엔 부조금이 없고,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거나, 가벼운 액수를 여러명이 모아서, 선물 구입 비용으로 전해주므로 이 식사 금액은 온전히 신랑 신부의 몫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미안하지만, 대충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까지 모두 식사에 초대할 수는 없다. 당연히 결혼식장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데리고 가는 것은 매우 실례가 되는 일. 


혹시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지 못한 사람이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스위스에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는 것이다. 결혼 당사자와 얼마나 친한지 아닌지는 본인도 알고 있기 때문.

그러나, 나는 한국 사람 아닌가...

내 결혼식에 온 사람을 어떻게 매정하게 중간에 짤라내고 집에 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양측 모두 인원을 추려내지 않고, 전원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로 했다. 삐그덕...하고 허리 휘는 소리가 심하게 들렸지만 말이다.




한복입은 오이군

어드벤쳐 커플, 캠핑장 강당에서의 저녁식사



안나오면 섭하지, 한복 입은 커플.

특히 국제 결혼이면 웬지 한복씬을 더욱 기대하는 것 같다. 우리도 빠질세라 한국에서 날아오시는 부모님께 한복 대여를 부탁 드렸다. 결국 2주 대여 가격이 구입 비용과 맞먹어서 구입해 오셨지만. ㅠ_ㅠ 장롱에 들어갈 웨딩드레스가 두벌이 됐구나. 아까워서 배...아파...

어쨌든 한복까지 입었더니 뭔가 완성된 느낌이 든다.


우리가 한복을 입고, 저녁 식사장이 셋팅되는 동안 심심할 하객들을 위해 마당에서는 오이군의 누님이 손수 만들어 준비한 게임과 퀴즈쇼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후문에 의하면 각종 아이템을 동원해 만들어 티비쇼에 내놓아도 될 퀴즈쇼 였다고. 누님께도 감사. ^^




저녁 식사는 이렇게 신랑 신부가 관공서 결혼식 때 증인이 되어 주었던 친구들 과 맨 앞 테이블에 따로 앉고, 하객들은 각자 본인의 이름이 쓰여있는 곳에 앉으면 된다. 


장소는 산속에 있는 산장으로 스카웃이나 학교에서 단체로 캠핑을 올 때 강당으로 쓰이는 통나무 집이었다. 앞에 무대가 있고,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가 여러개 있었으며, 음향시설이 설비되어 있어 파티를 하기에 최적의 컨디션을 가지고 있었다. 대신 장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장식을 해야 했는데, 이 덕분에 나는 내 평생 가장 뚱뚱한 순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ㅠ_ㅠ




내 평생 최고의 몸무게로 결혼하다

결혼 준비 마사지 대신, 가내수공업으로 살찌우기


식사장은 보통 생화로 장식을 하는데, 위에도 말씀드렸듯이 스위스 꽃값은 금값에 맞먹는다. 따라서, 손으로 꼼지락 거리기 좋아하는 나는 약간의 노가다를 자처했는데, 조화와 나뭇가지를 사용해 직접 테이블 장식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장소 주인이 화재의 위험을 들먹이며, 일반 초의 사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물 위에 띄울 초와 데코도 따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을 초대객의 이름표와 이름표 받침대, 결혼식장에 치장하고 나갈 귀걸이와 팔찌, 웨딩 행렬 차량에 매달 리본 등등을 모두 혼자 만들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왜 그랬을까...

생각할 땐 일이 얼마 없어보였는데, 이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해 꼬박 2개월이 걸렸다. 결혼 며칠 전까지 책상앞에 가만히 앉아 본드냄새 맡아가며, 손가락 부르터가며, 이런 것들을 만들었더니, 결혼 전날 올라선 체중계 바늘이 4kg을 더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의 친구들은 결혼 전에 경락 마사지에, 다이어트에 여념이 없을 때, 나는 밤새워가며 등 구부리고 앉아 움직이지도 않았구나. 


내 결혼식을 내 손으로 꾸몄다는 뿌듯함이 있지만, 힘들어서 결혼식을 두번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든다. 뭐가 됐든지 오이군과 지지고, 볶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


한국에서 오느라 결혼 준비에 뒤늦게 합류한 우리 가족은 여독도 못푼 상태에서 풍선 준비조로 투입이 되었다. 풍선아트의 일환으로 풍선을 불어 하트모양 틀에 끼우는 것이었는데, 식 전날 수백개의 풍선을 부느라 기진 맥진.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결혼식 내내 끊이지 않는 이벤트가 필요해!


스위스에서는 결혼식 끝마치고나서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중간 중간 이동시 뿐만 아니라 기나긴 저녁 식사 시간에 하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이벤트를 마련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벤트 1  신랑 신부 어릴적 상영회


일단 식전에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신랑 신부의 어릴적 모습을 담은 영상을 상영한다. 이렇게 생겼던 애들이 무럭 무럭 자라 부부가 되었어요. 뭐 이런식인데, 신랑 신부가 가지고 있는 어릴적 비디오와 사진으로 친구나 가족들이 영상을 만들어 주는게 일반적. 우리도 오이군의 누나와 형이 만들어준  영상으로 즐겁게 옛추억을 되새기다가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오이군이 자신의 어릴적 모습에 심하게 공감하며, 웃어 제껴서 테이블에 머리를 부딛힌 것이다. 상영이 끝나고 불을 딱 켰는데, 신랑 머리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_-;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데, 엄청나게 긴장해서 스트레스 받고 있던 오이군이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기 시작했다. 왜 혼자 머리박고 나한테 짜증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혼식 중간에 서로 감정이 상해서 이혼하기 일보직전에 이르렀다. -_-;



 이벤트 2  폐백 + 부모님 덕담 편지


스위스 결혼식에서는 부모님이 자식에게 덕담 편지를 읽어준다. 내용은 앞으로 잘살라는 내용과 살아가는 조언 등이 유머 있게 담기곤 하는데, 우리는 여기에 한국 폐백을 접목해 조금 독특하게 진행해 보기로 했다.



에피타이저를 치우고, 본 메뉴가 나오기 전, 감자양의 어머니가 손수 엮어 쌓아주신 폐백 음식들을 무대 위 상에 차려보았다. 뚝딱 뚝딱 실로 대추를 엮으시더니 금새 그럴듯한 모양이 나오는게 아닌가. 울엄니 손재주에 감탄하며, 약식 폐백 진행. 양가 부모님께만 절을 하고, 절 받은 부모님은 덕담 편지를 읽어주시는 식이었다. 편지 내용은 신랑 신부에게는 결혼식 전까지는 비밀이므로, 친구들과 가족들이 한-불, 불-한으로 번역해서 프로젝트로 쏘아주는 치밀함도 보였다. 결혼을 한번 하면, 감사할 일이 계속해서 넘쳐난다. 넙죽 엎드려 언제 일어나야 되는지 몰라, 감자양 눈치만 보던 오이군의 표정이 이번 폐백의 포인트였다. ^^; 양가 부모님께서 대추랑 밤도 던져 주셔서 치마로 받았는데, 다들 듬뿍 집어, 엄청나게 정조준을 하셨던지라, 정말 그대로 아이들을 낳는다면 축구단 두개는 차려도 될 것 같았다. -_-;


폐백 때 커플은 뭘 해야하는지 잘 몰라서 어리버리 하는데, 다행히 먼저 결혼하신 분께서 폐백 진행을 해 주셔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같이 잔도 나누고, 커플샷도 하고(이런거 원래 하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 대추도 입으로 나눠 물었는데, 여기서 다시한번 사고 발생.




오이군 입술이랑 말랑 말랑 한것이 대추랑 감촉이 비슷한게 아닌가? 의심없이 덥썩 물어 뜯었는데, 오이군 표정이 오묘하다. 음...?


미안해서 다시한번 빵 터진 마누라.

오늘 오이군 얼굴이 혹사당하는 날이구나. ^^;



 이벤트 3  다같이 바람쐬기



장시간을 실내에 앉아있으면 누구나 좀이 쑤시기 마련. 그래서 디저트가 서빙되기 전에 식장 밖으로 나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이벤트를 마련해 보았다. 이때 다같이 풍선을 날리는 경우도 있고, 폭죽을 터트리기도 하는데, 우리는 전구가 든 풍선 연날리기를 선택. 헬륨이 든 풍선에 LED전구를 넣어 밤하늘에 띄워보았다. 산속에 수많은 별을 보며, 다함께 여름밤의 매력을 만끽하고나면, 모두가 기다리는 디저트 시간~



 이벤트 4  결혼식의 완성은 아이스크림 케익 컷팅



결혼식에 케익 컷팅이 빠질 수가 있나. 스위스에선 보통 결혼 케익 = 아이스크림 케익이라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결혼식 케익은 으례 아이스크림이려니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주방장의 야심작, 4단 패션 플룻 케익을 받았다. 친구들이 뿌려주는 인공눈을 맞으며, 케익 컷팅. 첫번째 조각은 날름 신랑 신부가 먹는다. ^^; 



 이벤트 5  신랑? 신부? 퀴즈쇼


스위스 결혼식에 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이 신랑 신부 퀴즈. 

저녁 시간 내내 축하객들 사이에 노트하나가 돌아다니는데, 여기에 하객들이 질문을 적는다. 예를 들면, 잘때 누가 코를 더 많이 고는가? 주량은 누가 더 센가? 잘 안씻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등의 질문이다. 모든 식사가 끝나면 신랑 신부는 한면에는 신부, 한면에는 신랑 사진이 있는 팻말을 들고, 무대위로 나간다. 게임 사회자가 질문을 읽어주면 등을 맞대고 있던 신랑 신부는 서로의 눈치보지말고, 솔직하게 팻말을 돌려 대답하면 되는 것. 이 이벤트는 간단하면서도 재밌어서, 결혼식 때마다 등장하는데, 놀라운건 항상 둘의 대답이 98% 이상 일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100% 일치율을 보이며 솔직함을 과시했다. ㅋㅋㅋ



 이벤트 6  우산속의 로맨스


이것역시 스위스 전통 웨딩 세레모니 중 하나이다. 파티 막바지 쯤 테이블을 한쪽으로 모두 밀어 놓고, 신랑 신부가 댄스 파티로 분위기를 유도한다. 로맨틱한 음악을 배경으로 우산을 들고, 파티장 한가운데서 뱅뱅 돌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색색의 리본을 들고나와 신랑 신부를 리본속에 파묻어 버린다. ^^;



이렇게 해파리 같은 모양이 되면 우산 속이 꽤 아늑해 진다는 ^^



 이벤트 7  리얼 댄스타임!



마지막은 보통 신랑 신부가 커플 댄스 강습을 한두달 받아와 시연을 한다. 하객들에게 무료 강습을 진행해 주거나 파티분위기를 살려주면, 다같이 나와 댄스파티가 열리는 것으로 긴긴 결혼식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나는 것. 그러나 우리는 커플 댄스 대신 루이지와 피치 공주의 막춤을 컨셉으로 잡았다. 우리 통나무 오이군의 핸디캡을 커버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 ㅋㅋ

그나저나 내가 금발이 이렇게 안어울리는줄은 이날 처음 알았네. ^^;;


이때부터는 자유로운 일정으로, 긴 결혼식에 지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은 밤새 파티를 즐긴다. 사실 나는 매우 지쳐서, 아무대나 쓰러져 자고 싶었으나, 파티 주선자가 먼저 집에 갈 수 없는고로 손에 들고 있는 붉은 황소 음료를 쭉쭉 들이키며 마지막 에너지까지 불살랐다는...



 보너스 이벤트  축하객이 직접 꾸며주는 결혼 기념 액자



스위스 사람들은 집안에 커다란 결혼 사진을 걸어 놓기 보다는 하객들이 직접 꾸며준 결혼 액자 걸어놓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낮에 액자를 들고 찍은 사진을 일단 임시로 인쇄해 위치를 잡아 붙이고, 하객들이 롤링페이퍼처럼 돌아가며 축하메세지를 적어주었다. 나중에 인화한 사진을 위치에 맞춰 붙였더니 너무 멋진 결혼 기념품이 되더라.


이외에도 물감을 준비해 하객들의 손바닥 도장을 받는 친구들도 있었고, 색색의 펜으로 그림을 받거나, 열을 가하면 부푸는 물감펜과 드라이어를 준비한 친구도 있었다. 결혼 당사자에게도 멋진 선물이 남고, 하객들도 시간 떼우기 좋은 이벤트 ^^




한번이면 정말 족하다, 스위스 결혼식

이혼 금지, 재혼 금지


결혼식 다음 날 아침.

한국에서 먼길을 오신 부모님과 동생을 위해 따뜻한 아침밥을 지어드리고 싶었으나, 꿈속에서 마음만 밥을 지은 것 같다. 몸은 녹초가 되어 이박 삼일 잠만 잤다는 후문. 


원래는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하려고 했지만, 이 긴 파티를 치루고 났더니 다시는 하고 싶지가 않더라. 여전히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지만 두번 다시 준비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결혼 파티. 아마도 둘이 살다 좀 다퉈도 아까워서 헤어지지 못하라고 결혼식이 이렇게 복잡하고 긴다보다. ^^;



감자와 오이의 스위스 라이프의 스타트는 이러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위스댁, 감자양의 5년 6개월동안의 험난했던(?) 스위스 적응기가 펼쳐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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