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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타고 떠나는 1박 2일 스위스 봄나들이

뒤숭숭한 잠자리에도 최고의 여행 중 하나였다고 기억되는 스위스 마차여행, 일단, 비디오로 감상하세요

한국에 돌아온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오이군은 한국의 겨울쯤은 별거아니지?
어떻게 추운것 싫어하는 감자 니가 스위스서 버텼니?

하는 두가지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부분이 스위스 도시는 알프스 산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스위스에 잠깐 여행을 올 때는 알프스 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오기 때문에 여름에도 추웠던 나라로 기억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라. 알프스 산 꼭대기는, 특히 한국관광객이 주로 가는 융프라우는 해발 4천미터가 넘어가는 만년설이 있는 곳인데, 추운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그저 관광지라는 사실.

보통 사람들은 해발 천미터 이하에 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취리히, 바젤, 로잔, 제네바 등등의 대도시는 모두 해발 4백미터 이하에 위치하고 있다. 따사러 스위스도 한국처럼 4계절이 있는 온대국가이고, 사실 겨울은 한국보다 온화하다. 겨울 평균 기온이 영상 5-10°C 정도로, 눈이 내릴때도 영하 5-0°C 정도로 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겨울에는 추운것이 당연하지만, 한국의 매서운 겨울처럼 영하 14°C씩 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스위스에서도 몇십년 만에 오는 추위라며 미디어서 떠들고, 사람들은 추워 못살겠다며 호들갑을 떤다.

대신 그 기간이 한국보다 한달정도 길고, 호숫가에 위치한 도시들에는 안개가 자주 끼기 때문에 사람들이 긴 겨울을 동안 지치고, 우울해지는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들도 봄을 학수고대한다.

마차타고 가련다, 봄 맞으러

그래서 오이군 목이 이렇게 긴가? 
어느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 날, 둘이 쪼그리고 앉아 목을 쭈욱 빼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문득 든 생각이다. 
지겹다. 겨울.
올해는 봄이 오거든 제대로 한번 맞아주자! 주먹을 불끈쥐고, 결심은 했는데, 꽃놀이 말고는 별로 생각나는게 없다. 그때, 마침 말을 무지 사랑하시는 지인께서 ‘마차 패키지’ 선물하셨다. 으잉? 마차라고라?

그렇게 우리의 봄맞이 액티비티가 결정되었다.
마차 패키지는 2일동안 마차를 타고, 농장 주변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포인트는 마부는 불포함이라는데 있다. 즉, 우리가 이틀간 말을 돌보아주고, 마차에 매주고, 풀어주고, 씻겨주고, 밥도 먹이고, 마차도 몰고 다 해야하는 것이다. 농장에서 숙소도 운영을 하는데, 우리 패키지에는 짚더미위에서의 1박과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꽃 피고, 새 우는, 집앞에 동네 참새 반상회하는 나무가 있어서 엄청나게 새가 울어대는 6월의 어느 아침, 우리는 마차여행을 떠났다.



마차를 타고 자유롭게 돌아다닐만 하려면 농장은 차가 다니지 않는 시골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곳이 어디일까? 별로 찾을 필요가 없다. 스위스는 도시에서 10분만 벗어나면 차가 뜸해지고, 거의 모든곳이 농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오이군이 옆에서 발끈하고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지인의 이모님이 스위스에 오셔서 여기는 골프를 많이 쳐서 골프장이 이렇게 많냐고 물으셨다는데, 그럴만도 하다. 농장 잔디가 골프장 처럼 푸르르고 드넓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북서쪽에 있는 칸톤, 쥬라 Jura는 소박한 시골마을이 모여있는 곳으로, 농장이 저엉~말 많다. 오늘 우리가 마차여행을 떠날 곳도 바로 이 쥬라에 있는 농장으로, 우리가 사는 곳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기차를 두번이나 갈아타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바로 이 사진이 우리가 도착한 역, 라 쇼 데 브휠류 La Chaux des Breuleux. 안다. 읽으시는 분의 기분. 뭔 동네 이름이 이모양인가 하시는 거. 아, 그게 동네 이름이었냐 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짜 발음은 한글로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

※ 칸톤 : 한국에서 경기도, 강원도 할때 ‘도’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 쥬라칸톤 : 스위스 북서쪽에 있는 곳으로 언어는 불어를 사용하고, 26개의 칸톤 중 가장 나중인 1979년에 생겨났습니다. 이름이 ‘쥬라’라고 하면 ‘쥬라기 공원’을 떠올리실 텐데, 맞습니다. 쥬랴기라는 이름이 이 칸톤을 걸치고 길게 뻗어있는 쥬라산맥에서부터 온것으로 칸톤의 이름도 이 산맥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쥬라 산맥에서 발견된 화석이 생성된 시대를 산맥 이름을 따서 쥬라기라고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기차에서 내려 예약시간에 맞추느라, 걸음 빠른 오이에게 구박 받아가며 열심히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농장일을 배우는 청년 한명이 있었을 뿐, 아무도 우리를 신경쓰지 않았다. 청년도 느긋하게 걸어와 강한 독일어 억양으로 마당에 바베큐장을 보여주며, 여기서 일단 바베큐나 해먹으면서 기다리라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조심스레 석쇠뚜껑을 열어보니 열소독을 해야겠더라.
일단 빈 석쇠를 구워서 살균 시작. 고기는 말목장에 맞게 말고기를 준비해 왔다. 므흐흐, 이쁜말을 오늘은 타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며. ^^;
사실 나는 처음에는 스위스나 프랑스에서 말을 즐겨 먹는 것을 무지하게 경악스러워 했다. 아니 왜 저 섹시하고 아름다운 말을 먹어야 하는 걸까. 프랑스사람들은 우리가 개 먹는다고 팔딱 팔딱 뛰고, 항의하고 난리면서, 자기네는 저 멋진 말을 먹고. 우껴…근데, 오이군의 초강력 권유로 한번 먹고는 뭐 그렇게 나쁜 행동이 아니라는 쪽에 한표를 슬쩍 내밀고 말았다. 일단 말은 사육이 가능해서 먹는다고 멸종되는 동물이 아니고, 개농장처럼 학대해서 기르거나 잡는것도 아니며, 무엇보다도 정.말.맛.있.다. 부드럽고, 다른동네 말고기는 잘 모르겠지만 스위스 말고기는 노린내도 안나며, 기름기도 없어서 살찔 걱정도 없어 보인다. 기름기 전혀 없는 진짜 부드러운 안심스테이크 같달까?

스테이크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상큼한 토마토와 빵을 뜯으며 경치 감상. 
평화롭다.
지글 지글 스테이크가 익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보고 있자니 좀 이상하고, 미안하고, 오묘하다. 바베큐통 안에도 말이 있고, 그 옆에도 말이 있다.

다 먹고 났는데, 아무도 우리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할일도 없고, 배도 부르고, 주변은 조용하고, 심심해서 누워 자고 있는 비만 고양이에게로 갔다. 토실토실한 배를 쿡 찌르며 물었다.

작고 힘없는 생물이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니 무섭다. 카리스마에 밀려 내자리로 돌아왔다.
얘는 나중에 주인에게 물어보니 임신한 것도 아니랜다. 그냥 살찐거랜다.

잠이나 자자. 
오이도, 감자도, 고양이도 평화로운 봄날, 조용한 농장에서 잠이 들었다.

오늘내로 말을 한번 만져 보기는 하는건가 궁금해하다 단잠에 솔솔 빠져 버렸는데, 아까 그 청년이 툭툭 쳐 깨운다. 
입가에 흐른 침을 스윽 닦으며 비몽 사몽 따라갔다. 스타일 구겨진다. 아까 어디서 왔냐고 했을 때 일본사람이라고 할껄 그랬다.

우리와 이틀을 함께할 말은 닉키. 제일 첫 주인에게 버림 받은 적이 있어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던 말이라고 한다. 그 뒤로 경찰마로 지내다가 이곳으로 왔는데, 한번 상처받은적이 있어서인지 딱히 누구를 따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신 관광객이 모는 마차는 아무 말이나 끌 수 없는건데, 얘는 이런것도 마다하지 않고 시키면 묵묵히 다 한다고 하니, 뭔가 측은한 마음이. 흑. 우리 이틀동안 잘해보자 닉키!

청년이 말 빗질서부터, 발굽에 밖힌 흙과 돌빼기, 마차에 매기 등의 기본기를 가르쳐 주고, 마차 모는 법을 설명해 주었다. 좌회전, 우회전, 멈추기, 마차 사이드 브레이크 걸고 내리막길 가기, 말안듣는 말 듣게 하기, 흥분한 말 진정시키기 등등. 

‘알았어, 알았어, 뭐 별거 아니구만~ 허허, 이 청년, 남자가 말이 많구먼.’ 

빨리 가고 싶어서 대략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차에 올랐다.
청년이 오늘은 첫날이니 간단히 두시간 코스를 다녀오라며 닉키의 궁둥이를 탁하고 쳤다. 말이 이미 길을 잘 알기 때문에 알아서 가기는 하는데, 가끔 마부가 길을 잃어서, 낯선 곳으로 들어서면 불안해서 흥분한다는 조언과 함께…

유후~ 말주인이 손수 그린 주변 지도를 손에 들고, 첫 나들이에 올랐다. 

또각 또각 말굽소리가 경쾌하다. 
햇살은 찬란하고, 푸른 초원은 눈부셨으며, 바람이 살랑 살랑 코끝을 간질이는 느낌이 좋았다.
가다가 갈림길이 나타나면, 우리가 미처 지도를 읽기도 전에 닉키가 알아서 길을 골라 간다. 나중에 보면 항상 닉키가 고른 길이 맞다. 네비게이터가 달린 말이군. 아싸~ 이녀석이 길도 알겠다, 마음이 놓여서 딴청도 하고, 완전 풀어져서 가기엔…비 운전자가 너무 바쁘다.

왜냐하면 중간 중간 요렇게 저 멀리 목장 문이 나타나면 마차에서 뛰어내려 달려가서, 말이 도착하기 전에 문을 열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의 말에 따르면 닉키가 마차를 몰고 가는 중간에 멈추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 믿기지 않아서 실제로 말을 멈추려고 해 봤는데, 멈추지도 않을 뿐더러 막 콧김을 뿜고, 씩씩거리며 매우 싫어한다. 울타리를 점프해서 뛰어 넘을 기세.

마차타고 울타리를 점프하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아서 말님을 위해 열심히 달려 목장문을 열었다.

그리고 말님이 지나가시면 목장문을 다시 닫고, 열심히 달려 마차를 따라잡아 뛰어 올랐다.

말이 토닥 토닥 걸어가기 때문에 마차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여러번 하니 힘들더라.

마부가 할 일은 내리막길에서 마차에 가속도가 붙어 닉키를 밀어붙이지 않도록 핸드브레이크를 잡는 것과 중간 중간 내가 문을 열기 위해 달려 내려가면 살짝 고삐를 잡아서 말 속도를 줄여주는 일이 전부이다. 좌회전, 우회전도 말이 알아서 하니 지도 볼 일도 없고, 어차피 멈추지도 않는 말을 멈출일도 없기 때문이다. 

조금 억울해지려는데, 중간에 차도가 하나 나왔다. 차도래봐야 양쪽 일차선인 시골길이지만 간간히 차도 다니고, 한 삼십미터정도 차도를 따라가다가 샛길로 들어가야 했기에 약간 긴장이 됐다. 음? 근데, 닉키가 이상하다. 매우 기분이 나빠 보이고, 막 씩씩거린다. 

앗, 그런데, 30미터 후에 들어가야 할 샛길로 안가고, 이 말이 차도를 따라 직진을 하는 거다. 

네비게이터가 고장났다. 몸집 큰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을 유턴시킨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었기에 다음 샛길로 들어가서 되돌아가 보려는데, 다음 샛길에서도 이녀석이 계속해서 신경질적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려는 것이다. 이번 길을 놓치면 한참을 돌아서 가야했기에 이번에는 필사적으로 녀석을 세웠다. 닉키는 완강히 거부하며 직진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청년이 이럴 때는 한명이 고삐를 당기고, 다른 한명이 마차에서 내려 말의 정면으로 가서, 입에 물린 재갈과 고삐랑 이어진 부분을 꽉 잡고, 눈을 똑바로 마주보라고 했다. 그러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고삐를 쥐고 있는 오이군의 손에 힘이 풀리면, 닉키가 앞으로 달려갈 기세였기에 고삐를 놓을 수가 없어서, 내가 내려가서 말을 마주보는 역할을 맡았다.
뜨아아…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생사를 거는 일이더라. 마주 봤을 때 느껴지는 흥분한 말의 콧김. 단호하게 눈을 똑바로 바라 보라고 했는데, 말이 내 눈 넘어서 저어 먼 곳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이야기. 조금만 도발하면 밟고 지나갈 기세다. 순한 말이랬는데…낚였나보다. T_T

영화에서처럼 말이 앞발을 들고 히히힝 거리며 도약하듯 나를 밟아버릴 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며 재갈 옆을 잡고, 말과의 눈싸움을 한참 했더니 말이 푸르륵 거리며 제자리에서 멈춰섰는데, 매우 화가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유턴을 시켜서 샛길로 말머리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말이 매우 지쳐보인다. 대체 얘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
아까부터 말이 씩씩거린 이유는 바로 사이드브레이크가 걸려있는 마차를 오직 완력으로만 끌고 오려니 힘에 부쳤던 것이었다. 짜증 난 말이 차도 지나다니는 도로에까지 와서 길까지 잃었더니, 힘도 들고 불안해서 그렇게 정신없이 앞으로 나가려고 했나보다. 도로에 진입하기 훨씬 전에 마지막 내리막길이 있었는데, 상당히 먼 길을 브레이크 걸린 마차를 질질 끌고 온 것이다.
애구, 가여운것!

감자양이 고삐를 손에 쥐었다. 사이드브레이크도 풀어주었다. 말이 살랑 살랑 기분좋게 잘 달려간다. 콧김도 안뿜는다.
오이군은 내려서 목장문을 연다. 다리도 나보다 길어서 걸음이 빠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지 마차 앞으로 가서 사진도 찍어준다.
좋다.
진작 이럴껄…

드디어 모두가 행복한 여행길이 되었다. 닉키도 또각 또각, 사뿐 사뿐 들판을 가로지르고, 자동운전시스템 마차를 모는 감자도 편안해지고, 더이상 나오지 않는 목장 문 덕분에 옆에서 찍사놀이하는 오이군도 즐거워보인다.

가다보니 이렇게 소들이 길을 막고 풀을 뜯고 있다. 이거 괜찮을라나? 동물들이 뭔가 교감을 하거나, 서로 싫어할까 걱정했는데, 소와 말이 슬쩍 반쯤 비켜서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갔다. 소들은 말보다는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못보던 녀석들인데? 옆에 저 까무잡잡한 애 이상하게 생겼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내 얼굴에 구멍나겠다. 소가 그 큰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탐스러운 말궁뎅이, 이름 모를 풀꽃들이 잔뜩 핀 들판에서 풀을 뜯는 당나귀.

이런 봄맞이를 기대했었다. 말 발굽에 밟히는 그런 봄맞이 말고, 이런 꽃들판의 여유와 말발굽의 기분좋은 소리.
약간 여전히 긴장되었지만 슬슬 말고삐가 손에 익는 듯 했다. 주변도 둘러보며 딴청할 여유도 생겼다.

들판 한가운데, 차 세워 놓고 저 사람들은 뭐하는 걸까…으흣.

다이나믹했던 우리의 첫번째 마차 여행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우리 패키지에 저녁이 포함되어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농장에서 먹고 싶었지만 예약이 없는 경우 식당은 운영을 하지 않는 관계로 20분쯤 마을로 걸어 나와 아무곳이나 들어갔다. 음식점 이름이 오 까르푸 오베르쥐 Au Carrefour Auberge, 해석하면 사거리 숙소다. 이름이 시원치 않아서 요기나 떼울 생각이었는데, 오~ 뜻밖의 대박 주방장을 만났다.

메뉴 가격이 14-25프랑 사이로 한화 1만6천원-3만원 정도인데, 스위스 음식점 치고는 저렴한 편이었던 이곳에서, 호텔 요리가 나온 것이다. 비주얼만 호텔이 아니라 맛이 진심으로 끝내줬다. 스위스 음식점들이 짠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간도 적당하고, 신선한 야채와 감자튀김, 밥등의 사이드 메뉴까지 가격에 포함되어 있어서 기대 없이 간 우리로서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이게 뭐가 저렴하냐고 하시겠지만 스위스는 음식점이 진심으로 비싸다. 대충 먹어도 25프랑, 약 3만원은 기본, 테이크 아웃 중국요리같은 간단한 것을 먹으면 14프랑, 약 1만6천원정도 나온다. 특히 중식과 케밥을 제외한 외국 음식은 희귀성 때문에 가격이 더 올라가는데, 로잔에 있는 한국음식점에서 김치라면이 2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경우도 본적이 있다. 그집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스위스 음식점 가격이 보통 그렇다.
어쨌든 이 대박집에서 기분이 좋아져 상쾌한 밤바람을 쐬며 농장으로 돌아왔다.

쿠쿵.
우리의 잠자리를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 앉았다. 

오늘의 숙소는 짚더미였는데, 이게 또 이렇다. 스위스에는 농장 체험의 일환으로 ‘짚더미에서 자기’라는 옵션이 있다. 일반 침대가 있는 방보다 가격이 절반이지만 그렇다고 방이 아닌 것이 아니다. 보통은 창고 같은 곳에 나무 침대가 있고, 그 위에 푹신하게 짚을 깔아준다. 마치 나그네가 지나다 하룻밤만 묶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마구간에서 재워주는 듯한 체험을 하는 곳인데, 은근 낭만적이라 커플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접하게 해주고 싶은 부모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런데, 이 농장이 조금 황당하다. 우리에게 진짜로 마구간을 준 것이다. T_T

마구간. 그렇다. 진짜 말이 자고, 짚더미는 말의 먹이로 던져주는 그 지푸라기 말이다. 말도 한마리가 아니라 무지 큰 마구간이어서 스무마리 정도 있더라. 물론 칸막이가 있어서 자다 밟힐 일은 없었지만, 말그대로 나무 펜스같은 칸막이 였으므로 그들의 냄새와 먼지는 전혀 막아주지 못하는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밤에 춥다고, 문마저 닫아버리면, 메탄가스가 가슴을 조여 오고, 지푸라기와 말들에게서 일어나는 먼지가 원자폭단 구름처럼 자욱해진다. 
그리고 소음. 말들이 밤에 그다지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밤새 여물을 우그적 우그적 씹어먹고, 앞뒤로 왔다리 갔다리해서 또각 또각 발굽소리가 난다. 푸르르르 입술을 떨어대고, 웅성 웅성 대화하는 듯 머리를 맡대로 지들끼리 뭔가 교감도 한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이 진짜 나그네처럼 하룻밤만 재워줍쇼, 해서 공짜로 얻어낸 것이라면 감사하며 잤을 것이다. 문제는 돈을 냈다는 데에 있다. 인당 무려 28프랑, 한화로 3만원이 넘어간다. 간단한 아침이 포함되어 있고, 더운물이 오락가락하는 샤워실을 쓸 수 있다지만, 그냥 하루 안씻고, 아직 밤에 쌀쌀한 봄일지라도 밖에서 자는 것이 나을 뻔 했다는게 나의 결론이었다. 진짜로 침낭만 겨울용을 들고 왔더라면 오밤중에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얇은 여름용 침낭덮고 야전치루다 초라하게 농장앞에서 동사한 아시안 여자따위는 지역신문 구석에도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침낭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이를 악물고 잤다.

물론 호흡곤란으로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도 기념샷은 잊지 않았다. 
셀프타이머 맞춰 놓고 찍은거라 앵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두번 세번 시도할 여력따윈 없었다. 어서 침낭속으로 코를 묻어버리고 싶은 생각 밖엔…



밤새 침낭속에 웅크린채, 머리를 감싸쥐고 잤더니 아침에 온몸이 뻐근하더라.
부스스 침낭에서 나오니 어제 그 카리스마 뚱땡이 고양이가 내 옆 짚더미를 아침 해우소로 사용하고 계시더라는. 완벽한 농장체험 잠자리의 마무리다. -_-;

아침은 토스트, 잼, 오믈렛 등이 나왔는데, 억울해서 많이 먹어 주고 싶었지만 밤새 메탄냄새를 맡아서 인지 속이 영 좋지않았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 콸콸 나오는 깨끗한 욕실에서 씻고 싶다고 오이군에게 하소연을했다. 그러자 우리 오이군, 가뿐하게 나를 데리고, 빈 객실로 몰래 들어간다. 망보고 있을테니 어서 깨끗한 화장실 갔다오라며…
빈 객실이라 청소하는 사람만 오지 않는다면 아무도 올 일이 없건만 소심한 나는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다. 그래도 스릴을 느끼며 아기자기하고 깨끗한 욕실에서 세수도 하고 이도 닦았다. 므하하하! 바로 이런 엉뚱한 용감함이 우리 오이군의 매력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깨끗하고, 예쁜 농장 객실이 인당 50프랑밖에 안한다. 짚푸라기 잠자리에서 12프랑 더 내면 여기서 잘 수 있는 것이었다. 어제 진작 물어 볼껄… -_-;

건물 밖으로 나와 들판에 뛰어다니는 말들을 보니 꿀꿀했던 잠자리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단순해서 행복해요~
상쾌한 아침공기로 메탄가스를 대체하고, 풀잎이 우수수수 바람에 쓸리는 소리로 말들의 우적거리는 소리를 대체했다.

기분이 업되서 신나게 마차 준비 시작. 닉키의 먹이로 우리가 깔고 자던 짚을 담고, 커다란 물통과 양동이도 실었다. 점심으로 먹을 바베큐거리를 담고, 닉키의 털을 빗겨준 후 발굽 정리 까지, 오늘의 여행준비 완료!

오늘은 두번째 해본다고 그새 둘다 여유가 생겼다. 싱글 벙글 커플샷도 찍고, 귀여운 집과 바둑이도 구경했다. 가는 길에 어제의 소처럼 이번에는 말을 풀어 놓고 방목하는 곳을 지나게 됐는데, 같은 말이라 혹시 무언가 이벤트가 벌어질까 잠시 걱정했는데, 서로 가뿐하게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더라.

푸른 초원에서 햇살에 반짝 반짝 빛나던 백마는 마치 유니콘을 발견한듯 신비로왔다. 그런데, 보다보니 다른 말들은 푸른 초원에서 풀이나 뜯고 놀고 먹는데, 우리 닉키는 이렇게 무거운 마차를 끌고 다녀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완연하게 익숙해진 마부, 오이군은 운전하다말고 뒤에 쳐다 보고 잡담도 하고, 급기야는 벌떡 일어나서 목장 문열러 갔다 돌아오는 마누라에게 손도 흔든다. 

오늘은 총 4-5시간 코스로 산책을 나왔는데, 여러가지 코스가 있었지만 사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없었다. 지도를 보고, 잠시만 주춤거리면 닉키가 알아서 코스를 선택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디를 가든 들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곳이었기에 닉키의 선택에 불만없이 따랐다. 한번은 닉키가 커브길에서 마차길이는 고려를 안하고 코너로 바짝 도는 바람에 50cm미터정도 되는 턱에서 마차가 공중으로 날아 내려가는 서부영화스러운 이벤트가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매우 평화로운 산책이었다.

가져간 짚을 주었는데, 바닥의 신선한 풀을 선호한다. 물도 줬는데, 이녀석이 들러 엎어 버렸다
지나가다 무료로 사용 가능한 바베큐 장 (숯과 고기는 개인 지참)

그리고 설레이는 점심 시간.
스위스 산이나 들에는 곳곳에 바베큐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 중 코스의 중간 지점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 일찍 닉키가 길에서 벗어나 잔디밭으로 들어가 풀을 뜯어먹기 시작했으므로 우리도 선택의 여지 없이 그곳에서 바베큐를 시작했다. 물론 조금 더 가자고 앙탈을 부려보았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풀만 먹는 닉키. 그래. 별로 기대도 안했다. 그냥 한번 졸라 봤다.

바베큐를 배터지게 먹고, 햇살 아래 한시간쯤 딩굴거리다가 다시 마차를 타고 농장으로 돌아 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정말 지도를 한번도 안봤는데, 말이 알아서 농장으로 가더라. 마지막은 약간 내리막 길이 있었는데, 말이 농장을 보더니 갑자기 막 달려서 심장이 쪼그라 들었지만 별일 없이 무사히 잘 돌아올 수 있었다.

봄볕에 새카맣게 타버린 이틀간의 마차 여행, 
스위스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주저없이 강추하는 여행지이다.

목장, 수 라 부트 Sous la Voute

주소

Sous-la-Voûte, Bas du Village 22, 2345 La Chaux-des-Breuleux

전화

+41 32 953 16 70 / Mobile: +41 79 606 14 47

오픈

승마 연중가능 / 농장숙소 연중가능 / 짚더미 위에서 자기 5~10월 / 마차체험 5~10월 매일 10:00~16:00

요금

마차 5인승 220 CHF/일, 8인승 270 CHF/일
승마 30 CHF/시간 (가이드 포함), 150 CHF/일
농장숙소(조식포함) 성인당 55 CHF/일, 4~12세 인당 35 CHF/일, 싱글룸 60 CHF
짚더미 위에서 자기(조식포함) 성인당 28 CHF, 4~12세 인당 18 CHF

※ 점심 바베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각자 고기, 음식물 및 숯, 그릇, 포크, 나이프 등등을 전부 준비해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바베큐장은 위에 나와 있듯이 무료이고 숲에 있는 곳입니다.

※ 숙소는 이곳에서의 ‘짚더미 위에서 자기’는 정말 추천하지 않습니다. 정 체험해 보시고 싶으시면 다른 목장 이용하세요.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니 그냥 객실 예약 하시라고 강력히 권장드립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_-;

※ 제게 예약 문의 주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저는 해당 목장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스위스 사람들 웬만하면 영어는 할 줄 아니 영어로 직접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큰 지도에서 스위스 쥬라 마차여행 보기

아래 지도의 분홍 포인트가 목장이고, 빨간 포인트는 음식점이 있는 마을입니다. 저녁은 예약시 하프보드 demi pension(half board) 로 예약하시면 아침, 저녁이 포함되어 음식점에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음식점이 멀어요. 이 옵션 추천드립니다!). 그러나 스위스 시골길을 걷고 싶으시다면 음식점 가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목장에서 도보로 약 20분쯤 걸립니다. 아쉽게도 저희가 갔던 저 맛집은 없어졌네요. 레 브휠류의 다른 음식점 검색하셔서 이용하셔야 합니다.

스위스 기차 시간표 검색

스위스에서의 기본 대중교통은 버스가 아니라 기차입니다. 이 농장도 렌터카를 이용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기차를 타고 가시게 됩니다. 아래는 기차 할인 이용 정보 입니다.
연방열차 홈페이지  www.sbb.ch/en/home.html (영문 시간표, 일정, 루트 검색 가능)

※ 기차표는 한번 구입하시면 구입하신 구간에 대해서는 당일 24시까지 아무때나 한번 탑승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발시간이 확실하시다면 가끔 시간이 지정되어있는 슈퍼세이브 티켓을 구입하실 수도 있습니다. 최고 50%까지 할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위스 패스가 없으시다면 교통비 비싼 스위스에서 엄청나게 유용합니다.

※ 하루에 여러 구간을 이동할 계획이 있으시면, 해당 지역 원데이 패스를 구입하시는것이 저렴합니다.

※ 스위스 기차에는 전구간에 항상 자전거를 가지고 타시거나 개와 동행할 수도 있습니다. 단, 자전거 표와 동행하는 개 표를 추가로 구입하셔야 합니다. 그냥 가지고 타시면 벌금이 있습니다. 접는 자전거는 접어서 백에 넣으시면 짐으로 간주되어 이용요금을 물지 않습니다.

※ 스위스 기차는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1등석과 2등석만이 표시 되어 있어, 본인의 표에 맞는 객실 아무자리에 앉으면 됩니다. 글레이셔 익스프레스(빙하특급), 와인열차 같은 특별 관광열차를 제외한 모든 일반 열차는 표 판매량에 제한도 없기 때문에 표를 사서 들어갔는데, 자리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의 지하철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한다면 역에서 추가금을 내고 좌석을 예약할 수도 있는데, 스위스 열차에는 통학/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리가 있으므로 크게 유용하지 않습니다. 보통 외국인들이 멋모르고 좌석을 예약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

스위스 여행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다음 책을 참고해 주세요.
감자와 오이가 스위스 전국을 샅샅이 둘러보고, 꼼꼼하게 취재해서 만들었습니다. 여행자에게 진짜 필요한 내용은 여행자가 제일 잘 알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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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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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런 정보는 처음이네요!!! 너무 매력적인 여행이에요!! 영화 한편 보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열매맺는나무

날씨도 좋고 음식도 좋고~~ 잠자리만 좀 쾌적했다면 더 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겠어요. ^^

홍정순

정말 이런 마차여행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이겠어…~~
우리나라가 얼마나 삭막하게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느끼게 되공.. 이런 여유와 도전이 있는 여행
요것도 부부가 생각이 맞아야 된다는 우리 남편은 거절할듯 ㅋㅋㅋㅋㅋㅋ

그린데이

무척 긴 글임에도 숨도 쉬지 않고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감자님의 매력적인 에피소드!
ㅋㅋㅋ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산책나온 말님을 위한 목장문 열기, 사이드 브레이크 걸고 내달리기,
말을 몰기도, 먹기도 한다는 부분과 마굿간 숙소 부분에선 완전 한밤에 깔깔 웃어댔단.
으아… 낭만적인 체험이라고 하지만 진정 힘드셨을 것 같기도 해요.

아이들과 함께 가면 정말 재미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스위스에 가야한다는 것이 문제.
제주도에서 이런 상품 좀 벤치마킹해서 상품으로 만들면 안되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