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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기억하는 단 한가지

내일 아침 여행을 떠난다.
카메라 가방 잘 꾸린 것 맞나?
배터리는 충전이 됐나?
여분의 메모리는 있나?
충전기 챙겼나?
아침에 비몽 사몽 카메라 놓고 가면 낭패, 문가에 잘 둬야지.

여행 가기 전 내 마음은 온통 카메라에 집중되어 있다. 
내가 디카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 10년 남짓, 어느새 카메라는 삶의 일부가 되어, 집을 나서며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단 한번,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은 여행이 있었으니, 바로 발로 찍어도 예술사진이 나온다는 뉴질랜드였다. 그때 나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었다. 풍경을 화면이 아닌 마음에 담고 싶었다. 사람들의 웃음을 2차원 평면이 아닌, 공감각적인 음성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뉴질랜드 여행은 내가 원했던대로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가장 낭만적이었으며,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기에 더 열심히 보고, 마음속에 기억하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숨 막히게 아름다왔던 풍경들의 구체적인 이미지는 시간과 함께 퇴색되어 버렸지만… 아마도 그래서 그 황홀했던 느낌들은 여전히 충만하게 살아있는 것이리라. 구체적인 이미지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남아있지 않기에.

그런데, 사실 이곳에서의 사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뭔 이야기가 이렇게 왔다갔다 하냐고?
나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았지만, 일행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 후 사진을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해외에서 스쳐가는 친구들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던 어떤 이가 지금 그냥 친구도 아닌, 남편이 되어있다는 게 함정. 그렇다. 그 여행에 오이군이 있었다. 사실 우연히도 그때 그의 카메라는 그때 고장이나 있었는데, 멋진 풍경들을 계속 스쳐 보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일회용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었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합쳐진 살림 속에 그의 사진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달간의 여행을 24방짜리 일회용 카메라로 다 담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따라서 뉴질랜드는 여전히 안개에 싸인 도시처럼 내 기억에 많은 이미지들이 남아 있진 않다. 굉장히 강렬했던 몇몇 장면을 빼고는 그저 느낌으로 남아있을 뿐.

그렇게 무작위로 선별된 몇곳의 사진들은 일회용 카메라의 엄한 화이트 밸런스와 열악한 감도로 우리 인생 최고의 감성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스카이다이빙 센터에서 예약할 때 무서워서 못 뛰면 환불은 안된다고 먼저 못을 박더라. ㅋ 내 피 같은 알바비가 아까워서 문이 열리자마 망설임 없이 툭~뛰어내렸다. 그런데, 바닥에 도착하고 나니까 같이 뛰었던 강사님이 아직 준비 안되었는데, 내가 뛰어내렸다고 하더라 ^^;

어느정도 내려오다가 스카이다이빙 강사가 뒤에서 머리를 톡톡 치면 속도를 줄일 수 있게 팔을 쫙~펼치라고 했는데, 오이군은 넘넘 신나서 머리를 톡톡 치는 것도 못 느꼈다고 한다. 결국 강사가 톡톡이 아니라 쾅쾅하고 오이군 뒤통수를 때려서 겨우 팔을 벌리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스카이다이빙으로 하늘에서 내려다 본 소감은?
구글맵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 높아서 오히려 무섭지도 않더라.

숨이 멎도록 멋졌던 곳 중 하나.
누군가 뉴질랜드 남섬에 간다고 하면 강추하는 곳.

안개가 많이 끼는 뉴질랜드의 겨울.
꼭 멀리 볼 수 있어야 길을 가는 건 아니잖아.
저만치 나아가면, 또 다음 길이 보이겠지.

기차는 올 때 저쪽에서 땡땡 소리가 나는데, 맞은편에서 차가 오는 건 신호등이 없었다. 그냥 알아서 눈치껏 지나가야 함. 뭐 오늘 하루 종일 운전했는데, 차를 한대도 못 보긴 했지만…

처음으로 여러 가지 치즈를 빵 위에 얹어 먹으며 점심을 때워 보았다.
처음으로 바람을 맞으며 벌판에 앉아 차를 마셔 보았다.
너와 함께여서 그냥 다 좋았던 ‘처음이었던 모든 것들’ 

이 여행에서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동물도 있었지만,
유일하게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한 가지는
스위스에서 온 야채 한 조각.

이곳에서라면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다.
폴짝 뛰어 구름에 손을 넣어 볼 수 있는 곳이니까.

내가 처음 본 야생 바다사자.

우리 같이 놀아요
뜀을 뛰며 공을 차며 놀아요
우리 같이 불러요
예쁜 노래 고운 노래 불러요
이마엔 땀방울
마음엔 꽃방울
나무에 오를래
하늘에 오를래
개구장이

내 인생 최고의 갬성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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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푸근하고
미소가 너무 환해서
그 미소에 뒤의 풍경들이 더욱 아름다워보여요

두 분의 미소를 보며 뉴질랜드가 참 좋은 곳일거란 생각이 드네요^▽^~

쭈니러스

스카이 다이빙 경험은 아찔했겠네요~
사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참, 혹시 노르웨이 정보가 있나하고 봤는데 아쉽게도 없네요~;;

아톰양

아 요새 너무 너무 너무 여행이 땡기는데
글과 사진을 볼니 그저 떠나고 싶네요.

라오니스

약간은 흐릿한 느낌의 필름 사진이 .. 그 추억을 아름답게 해주는군요 … ㅎㅎ
저도 갑작스럽게 산 일회용 카메라의 사진이 남아 있는지라 .. ^^
(옛날 여자친구와 첫만남에서 일회용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었던 .. ㅋㅋ)
물개, 고래 ..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간이역불빛

여행지에서의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진 거로군요.
뜻하지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건 참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사진들, 너무 좋아요. 제가 필카를 사랑하는 이유죠. 추억을 그때인양
기억하는 데 최고의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스크롤을 여러번 굴리다 가요~ 좋다!

드래곤포토

일회용카메라에 소중하고 의미있는 추억을 담았네요
부럽습니다. ^^

귀여운걸

폭스 빙하 스카이 다이빙 대박이네요~
스릴있고 정말 재미있을것 같아요!
저두 떠나고 싶은 여행지네요^^

알 수 없는 사용자

사진을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이렇게 사진을 공유하게 되었네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또 아름다운 인연도 만나셨네요~~~^^ㅎㅎㅎ

소이나는

뉴질랜드 지대로 즐기셨네요 ㅎ 하늘에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보고싶어요 ^^

언젠간날고말거야

저도 이놈의 카메라를 좀 떼어놓고, 원고 마감날짜를 신경쓰지 않고 ‘여행’을 즐기고 싶은 맘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