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축제,
우리는 퀘벡 사람이다!
6월에 몬트리올 여행을 결정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 였다.
한달 내내 정말 축제가 끊이지 않더라.
프랑코 폴리 음악축제를 시작으로 재즈 페스티벌, 드럼 페스티벌 등이 이어지고, 주말에는 여기저기에 수공예 시장, 벼룩시장 등이 열렸으며 퀘벡주의 가장 큰 국경일 축제도 바로 6월에 있었다.
매년 6월 23, 24일에 열리는 이 축제는 퀘벡 국경일 Fête nationale du Québec 이라 불리는데, 캐나다에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한 영국문화에 대항하여 퀘벡주의 독자적인 프랑스 문화를 기념하는 날이다. 따라서 몬트리올과 퀘벡시티 등 퀘벡주의 도시 거리에 퍼레이드가 열리고 공원에서 음악축제가 펼쳐지며 퀘벡주의 색깔인 파란옷을 입은 사람들이 퀘벡주의 깃발을 들고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라고 들었다.)
프랑스인의 후손인 퀘벡주 사람들은 오래전 영국과의 땅따먹기시절 싸움에 밀려 캐나다라는 이름으로 통합된 것을 여전히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들을 캐나다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퀘벡 사람이라고 부르며 캐나다 건국기념일 대신 퀘벡 국경일을 기념한다. 언어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데, 영국문화에 흡수되지 않으려고 모든 프렌차이즈 이름이나 영화 제목도 전부 프랑스어로 바꾸어 표기한다. 오랜세월 퀘벡주의 독립을 꿈꾸어 오다가 드디어 몇해 전 독립 투표가 진행되었었는데, 아무래도 영어권 지역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하다보니 반대표가 더 많아서 성공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 이 축제를 생-장-바티스트의 축제 Fête de la Saint-Jean-Baptiste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 프랑스의 하지날 열렸던 축제에서 기인해 왔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사실 뭐 나에겐 프랑스냐 영국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이날 거리로 뛰쳐나간 이유는 바로 거리 퍼레이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왜 나는 어릴적 부터 그렇게 퍼레이드가 신나고 좋은 건지.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냥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엄청 좋아한다. 퍼레이드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
그런데, 하늘은 그런 나의 설레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부터 찌뿌드하더니 추적추적 비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몬트리올 6월 날씨가 뭐 매일 화창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유럽처럼 자주 흐린 것도 아니었는데, 왜 하필 이날. ㅠ_ㅠ
창밖에 비를 보며 나는 소풍날 아침 비를 본 초딩마냥 시무룩하게 아침밥을 입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힝~ 여보, 비때문에 퍼레이드 취소되면 어떻게 해…ㅠ_ㅠ “
미심쩍은 마음으로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거리로 갔는데, 다행히 취소가 되진 않은 모양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퍼레이드는 행진을 했고,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쓴 시민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근데, 비 때문에 관중이 벨로 없었다는 것이 함정.
덕분에 앞사람 어깨 너머로 기웃기웃 봐야하는 불편함은 없었지만 분위기가 영~안나더라. 축제장이 신나려면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ㅠ_ㅠ
그러나 얼마 없는 관중보다 더더욱 큰 함정이 있었는데, 바로 퍼레이드의 퀄리티(?) 였다. 퀘벡주의 제일 큰 국경일 축제라고 해서 엄청 화려한 행진을 기대했는데, 우째 학생 축제장같이 뭔가 어설퍼라?
시드니나 벤쿠버의 마디그라스, 취리히 스트리트 퍼레이드 또는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화려함을 기대 했는데, 음…여느 놀이동산 퍼레이드 보다도 소박한 느낌이었다. 차라리 오이군의 고향인 스위스 뉴샤텔의 와인축제 꽃차 퍼레이드가 훠얼~씬 볼만하다는…
퍼레이드가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조금 늘어났다. 인파가 이정도만 되어도 벌써 분위기 업업!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파란옷을 많이 입고 있지 않더라. 들은 바로는 다들 퀘벡주 문장이 새겨진 하늘색 모자를 쓰고,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몰려 나온다고 했는데…
행렬이 종착점에 도착하면 퀘벡주의 위인들을 상징하는 대형 인형들을 한데 모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다들 기념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기념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진 대기자가 많아서 포기하고, 조금 멀리서 셀카 한장.
몬트리올 바이오돔 Biodôme de Montréal
이 해의 퍼레이드 루트는 이베르빌 거리 Rue D’Iberville에서 시작해 올림픽 경기장과 바이오 돔 수족관, 천문대, 보태닉 가든 등이 있는 매종뉴브 공원 Parc Maisonneuve 에서 끝이 났다. 그러나 퍼레이드 루트는 해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모양이니 만약 구경하려 가려거든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도록 하자. (퀘백주 국경일 축제 홈페이지 www.fetenationale.quebec )
행렬이 도착한 공원에서 야외 콘서트가 열리고 음식물을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가 생긴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 올림픽 경기장이 신기하게 생겨서 일단 여기를 먼저 구경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이날은 국경일이다보니 모든 시설이 휴무 였다. -_-; 우리는 공휴일에 동물원, 수족관이 더 붐비는데, 여기는 그런거 얄짤 없이 퀘벡 국경일에는 모든 시설이 전부 다 쉰다고 하니 여행 계획 짤 때 참고 하시길.
국경일 축제의 마무리
수족관 및 천문대 구경은 포기하고, 다시 축제장으로 돌아 왔다.
잔디밭에서 여유롭게 콘서트도 보고, 몇몇 스탠드 음식점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고 해서 뭘 먹을까 상의 하며 룰루랄라 왔는데…
음…근데, 여기 또 어째…
몬트리올 시내 중심에서 며칠간 무료로 열렸던 프랑코 폴리 페스티벌과 재즈 페스티벌이 워낙 화려하고, 규모가 컸던지라 국경일 콘서트도 대규모 일 줄 알았는데, 여기는 좀 소박하네? 그리고 스위스에서는 보통 야외 콘서트장에 가면 음식을 워낙 다양하게 팔아서 여기도 먹을 것이 많을 줄 알았건만 메뉴가 이런 인스턴트 피자와 핫도그가 전부더라. 맛난 음식을 기대하고 왔다가 어찌나 허무하던지.
핫도그는 진심 너무 심플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나아 보이는 피자를 주문했는데, 생긴대로 맛이 영 벨로다. 게다가 가격도 비쌌는데, 그 위로 비까지 쏟아져서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처량하게 만들었던 비에 젖은 인스턴트 피자.
퀘벡주의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국경이로 큰 축제라고 해서 공연도 밤 늦게 까지 있을 줄 알았는데, 오잉, 웬걸. 4시쯤 되니 가게들이 하나 둘 접시 시작하고 콘서트도 끝이 나는 듯 했다. 올림픽 경기장에 있는 수족관에 가고, 천문대에 갔더라면 공연도 못보고, 비에 젖은 피자도 못먹을뻔 했네 ^^;
퀘벡주 국경일 퍼레이드는 관광안내소 아저씨가 열심히 자랑을 해서 기대를 하는 바람에 사실 나는 실망이 조금 더 큰 퍼레이드 였지만 아무 생각없이 왔더라면 재밌게 보고 갔을 것 같다. 그래도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뭐 꼭 이 축제를 보려고 여행 날짜를 이때 맞출 필요까지는 없을 듯. ^^;
퀘벡주 국경일 축제 공식 홈페이지
www.fetenationale.quebec
올림픽 공원 수족관 및 동물원 홈페이지
espacepourlavie.ca/biodome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네…
201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