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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Day 3. 내인생 최악의 홀리데이 아파트
2013. 8. 25. 12:12

꿈에서도 가지말자, 105 밀튼 스트리스!
105 Milton St, Montreal

 

도착한지 3일이 지나가는데, 잠을 잘 못자서 여독이 풀릴 틈이 없다(좌) / 아침에 내가 먼저 일어나면 이런 모습의 오이군이 보인다(중) / 아침에 내가 늦게 일어나면 핏발선 좀비눈의 오이군이 옆에서 이러고 있다(우)

 

캐나다에 도착한 이래로 우리는 아침형 인간일 뿐 아니라 저녁형 인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야기. 이건 우리가 얼마 전의 개기일식으로 초능력을 얻어서 안자고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아름다운 홀리데이 아파트 덕분이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서, 이걸 아파트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거의 토끼장 수준인데, 오이와 감자가 들었으니 야채 사육장이라고 해야 하나? 뭐 어쨌거나 그래도 잠을 잘 침대는 있었으니 크기는 그렇다 치자. 방이 작아도 잠은 잘 수 있으니...

그럼 대체 왜 우리가 밤 낮으로 깨어있는 자가 되었을까? 그건 바로 이 집에 온뒤로 꾸는 '꿈' 때문이다.

 

처음 이틀 밤, 나는 아주 해괴한 꿈을 꾸었다. 밤새 사람들이 우리 침대 밑에서 웅성웅성 거리고, 가끔 날카롭게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꿈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흑인들과 베이스 만빵 올린 힙합음악이 진동을 해대는 자동차에 앉아서, 악셀레이터를 과하게 밟아대며 밤거리를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은 누군가가 경찰차 사이렌을 내 귀 옆에 설치해 놓아서 그게 10분마다 울려대는 것. 으...이게 뭔 그지같은 꿈이란 말인가...

 

그러나 세 번째 밤 어떤 여자의 환희에 찬, 찢어질 듯 한 비명소리에 놀라 깨어나면서 알게 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모든 소음들이 내 방에서 나는 것은 아니고, 건물아래서 나는 거라는 것 정도. 뭔일인가 싶어 부스스 일어나 창문아래를 내려다보니 헐...이게 무슨 백귀야행도 아니고...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낮에는 평범하고 한적한 1차선 도로 였는데, 밤이 되니 차들이 가득 들어차 음악을 크게 켜고, 요란하게 달려 다니고 있더라. 게다가 그 사이사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히히덕 거리며 비틀비틀 좀비같이 배회하고 다니는게 아닌가? 방이 7층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들이 바로 방안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소리가 어찌나 가깝게 들리던지... 최고 품질의 닭장같은 아파트는 역시 최고 품질의 방음설비를 갖추고 있었구나.  (-_-;) 그리고 아래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마리화나 냄새...총체적 난국이 여길 두고 한말이었던가... ^$#^#%^#$.’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우리 아파트가 몬트리올에서 꽤나 잘나가는 파티 거리(St Lautrent) 에서 두 블록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별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데, 밤만 되면 이 술 취한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 집 앞을 지나쳐 갔던 거다. 수십 대의 경찰차가 이 사람들을 안전하게(?)지켜주려고, 밤새 쉬지 않고, 시끄럽게 싸이렌을 울려대며 순회를 도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우리는 결국 밤새 최대 한계치를 넘어가는 소음에 바둥거리다가 사람들과 경찰이 모두 자러 갈 무렵(새벽 5시 즈음), 화창하고 아름다운 햇살이 커튼을 뚫고, 우리 눈을 푹푹 찔러대기 시작하면 좀비 같이 핏발선 눈으로 일어나 앉아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아침 우리는 3개월간 잊혀진 찬장 밑의 감자와 오이처럼처럼 누렇게 쪼글쪼글 떠서 침대 위를 데굴거렸다.

 

14인치 TV를 본지가 얼마만이던가...게다가 방 전체가 14인치 화면에 전부 비치는 사이즈다
게다가 미친 화재 경보기때문에 요리하다 창가로 뛰어야 해서 살이 다 빠질 지경. 음...이건 좋은건가...

 

몬트리올 에서의 한달은 세미 휴가로, 오이군은 낮에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고, 감자양은 그동안 사랑스런 아파트에서 오이군을 삼시세끼 먹일 식사를 준비하고, 캐나다에서의 삶을 블로그에 연재하기로 했는데, 웬걸. 오이군도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블로그는 고사하고, 밥한끼 해먹는 것이 모험이었다. 왜냐하면 요리를 하다가 중간 중간 프라이팬을 들고 창가로 잽싸게 달려가야 했기 때문.  이유인즉슨, 요리대 바로 위에 화재 경보기가 달려있는데, 연기를 빨아들이는 팬이 없기 때문에 요리가 맛있게 익기 시작하면 이 경보기가 신나게 샘을 낸다는 거다. 특히나 버터 녹는 연기를 아주 좋아하는지 조금만 녹여대면 꺅꺅거리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해서 심장이 배밖으로 튀어 나올뻔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스프링쿨러까지 달린 고급보통아파트는 아닌지라 경보기 따위 무시하고 요리를 계속할 수도 있지만 밤새 충분히 소음과 뒹굴기 때문에 낮 동안만은 좀 평안하고 싶은 마음에 요리가 다 식어 꾸질해 질 때 까지 창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곤 했다.

 

어떻게 이 베란다가 안무너지고 붙어 있는거지?

 

이런 방이 너무 답답해서 가끔 창밖이라도 구경할라치면 그것도 별로 여의치가 않았다. 숙소 소개에는 베란다가 있다고 써있었는데...헐...뭐 거짓말은 아니었으나 굉장히 좁아 혼자 올라설 공간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낡아 부스러져 가는 것이 확연히 보이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발코니의 로맨스는 포기해야 했다.

 

첫 번째 날 나에게 크게 감명을 준 그 냄새 나는 복도이다. 냄새가 대략 어떠냐 하면 거리의 부랑자들과 알코올 중독자들이 함께 모여 오래된 치즈를 곁들여 썩은 카레를 먹을 때 10cm 간격에 앉아서 관람하는 정도의 향기? (좌) / 오늘은 웬일로 복도와 높이가 딱 맞아 문이 열렸다! 신기해서 찍음 (우)

 

그리고 밖에 나가는 것도 엄청 큰 모험이다. 이유는 이 아파트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엘리베이터 때문. 손바닥보다 쬐끔 큰 사이즈인데, 보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우리는 바닥보다 10cm위에 혹은 아래에 있게 된다. 갑자기 떨어질 것 같아서 어찌나 조마조마 하던지...(그래서 7층을 대부분 계단으로 오르내렸다) 게다가 문이 가끔 안 열리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오이 군의 근육을 듬뿍 살려 문짝을 완력으로 밀어 젖힌적도 몇번 있었다. ㄷㄷㄷ

 

몬트리올에는 은색 지붕을 가진 교회가 많다. 양철지붕인건가?

 

아...한숨만 가득한 아파트 였으나 자자, 불평은 그만하자. 왜 돈들여 놀러와 불평질인가. 좋은점을 보자. 우리방은 7층이기때문에 나름 괜찮은 전망을 가지고 있다. 저 멀리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은색 지붕의 교회.

 

위치가 또 예술이다.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이 각3분, 5분 거리에 있고, 왠만한 볼거리들은 모두 도보 30분 거리에 안에 있다. 또 유명한 재즈 패스티벌과 락 패스티벌이 지하철 역 주변에서 열리기 때문에 어느 때고 툭툭 걸어가서 즐겨줄 수가 있었다. 뿐만인가, 우리를 밤새 괴롭히는 원인인 파티거리를 역으로 즐겁게 이용해 줄 수도 있다. 내가 하면 파티, 남이 하면 난장판 아니던가.

 

 

 

 

 

그리고 이게 내가 꽤나 좋아하는 놀이인데, 바로 '사람구경하기'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창문아래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 2시간도 2분같이 거뜬히 보낼 수가 있다.

 

이 아파트에는 뭐 이런 정도의 소소한 장점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역시 이 아파트는 아무리 위치가 좋아도 그 어느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하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시설이 꾸진 것 이외에 경찰이 가끔 들이닥쳐 헐리우드 액션영화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곳이기 때문.

 

몬트리올에서의 하는 것 없이 피곤한 한달을 보내고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이었다. 경찰차가 엄청 많이 다니고, 싸이렌을 울리고, 뭐라 소리치는 경우는 종종매일 봤는데, 급기야 마지막 날엔 어떤 세 명의 준수한 청년들을 우리창문 아래로 몰고 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바닥에 엎어뜨려 깔고 앉아 수갑을 채우는 일이 생긴 것이다. 새벽 2시 반에 방안이 갑자기 방안이 테크노 바로 변한듯 번쩍이는 바람에 깨어나 아래를 내려다 보니 경찰차 다섯 대가 몰려와 바로 이런 멋진 액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참내...우리의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밝혀주는 친절한 몬트리올이다. 혹시나 총이라도 쏠까 싶어 창문가에 가까이 붙지도 못하고 벽쪽에 몸을 숨겨 조마조마하게 흘끔거렸다는...덕분에 우리는 다음날 생 소버 St.Sauver 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 멋졌을 지도 모르는 경치를 죄다 놓치고 병든 닭처럼 꾸벅 꾸벅 졸 수 밖에 없었다.

 

이 파란만장한 우리의 사육장은 에어비앤비 Airbnb에 등록 된 업체인 마이 스튜디오 몬트리올 닷컴에서 찾은 아파트로, 105 Milton street 에 있는 아파트이다. 몬트리올 물가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쌀 뿐더러 공원에서 침낭깔고 자는것과 다른점이 하나 있다면 작은 부엌과 화장실이 하나 딸려있다는 정도이다. 중계회사 전체에 있는 아파트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건물만은 정말이지 내부를 전부 재보수 한다 하더라도 다시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품질이니 정 잘 곳이 없으면 그냥 공원에서 침낭 깔고 잘 것을 고려해 보시도록 권유하는 바이다. 게다가 중계회사 자체도 좀 무뚝뚝한데, 안내인이 들어갈 때 아파트에 대한 설명도 안 해 줄 뿐더러, (어디다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지, 세탁실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등등) 거의 열쇠만 던져주고 사라지다시피 한다. 그리고 만약 기간을 변경해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차액 환불은 일절 없으며, 공들여 고른 방이 통보없이 같은 빌딩내의 아무 방으로 임시 대체된다하더라도 일말의 사과같은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오히려 약간 짜증섞인 말투로 '여기 방은 다 똑같아요.'라고 툭 던질 뿐. 그럼 대체 방마다 이름과 테마는 왜 다르게 붙여 인터넷에 광고를 해놨단 말인가. 

심한 공개 비판은 자제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심히 고민했지만, 결국 우리같은 여행자들이 몇몇의 부당한 중계업자들의 횡포때문에 몬트리올 전체에 나쁜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일은 막아야겠다 싶어 내린 비장한 결론. 누구든 몬트리올로 놀러 가거나 이사가게 되거든 되도록 이 아파트는 피하심이 좋을 것 같다고 강력리 권고하는 바이다.

(현재는 에어비앤비에서 내려가 더이상 리스팅에 없는 듯 하다.)

 

 

 

 

 

       

몬트리올 3일째, 다크써클이 느는 이유

여행일자 : 201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