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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Seoul, Inchon | 서울, 인천
2013 Sicaf, 만화가 있는 풍경
2013. 8. 16. 00:00

2013년 Sicaf 

 

하늘이 어두운 것이 비가 올 것 같다.

만화 축제장으로 가는 길, 공중에 매달린 우산들에 잘 어울리는 하늘이다.

 

 

뭔가 만화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우리 커플.

순정만화가 아님은 분명하다. 액션, 무협만화도 아닌 듯 하다. 뭐...개그 코믹만화라 할지라도 우리는 주인공이다. 내 인생에서는 항상 내가 주인공 이니까. 기왕이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 코믹 만화가 되도록 살아가야지.

 

길에 NPC (non play character) 도 지나간다. 머리에 느낌표가 떴으니 말시키면 게임 진행할 정보를 줄것 같다.

'내 인생의 다음 미션을 진행하려면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요? '

그나저나, 왜...만화 페스티벌에 게임 캐릭터가 돌아다니나?

 

 

 

 

 

 

 

 

 

예전엔 학교에서 만화보면 뺐겼었는데, 어느샌가부터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기도 한다. 이젠 만화들이 박물관 안으로도 들어왔다.

 

 

나는 요런 세대는 아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만화들이지만 익숙한 제목에 향수가 묻어나는 포스터. 집 벽에 하나 붙여놔도 좋을 것 같다.

 

푸로덕슌...

깔깔 거리다 생각하니, 뭐 웃을일도 아니다. 현재에도 coffee를 커피로 쓰고 있는 우린데, 프로덕션이나 푸로덕슌이나 외국인들 못알아듣기는 매한가지.

그나저나 옛날에는 삼성이 비행기나 우주선을 만들리라고 생각했나보다. 언젠간 그럴 날이 오려나?

 

 

대...댕기가 박물관에 전시될 만큼 시간이 흘렀나?

나도 매달 사서 보던 잡지라서 표지 하나하나가 어제본 듯 익숙한데, 책장 안쪽에 고이 진열되어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다. 다 버리지 말고, 잘 둘껄 그랬나보다. 

 

 

 

 

 

 

 

 

 

 

댕기의 추억

 

중학교에 들어갔다고 엄마가 매주 소정의 용돈을 준다고 하셨다. 그 당시 나의 사회생활, 즉 친구들과 떡볶기먹는 것 말고는 그다지 돈 쓸 것이 없었던 나이였는데, 방과 후 서점에서 새로 나온 격주 만화가 눈에 띄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2000원. 이틀에 한번꼴로 떡볶기를 거르면 2주에 댕기 한권 쯤은 살 수가 있었다. 

 

'나도 이제 다 컷는데 (무려 중학생인데!),  순정만화쯤은 사서 봐야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닥터슬럼프나 끼고 살 순 없잖아?' 

 

덥썩 거금 2천원을 들여 그 격주코믹스, 댕기1회를 손에들고 집에왔다. 아니 가방속에 잘 숨겨서 집에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방적이었던 엄마가 그 만화책을 보시고 뭐라 할리가 없건만, 그 당시 나는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소녀였다. 그때는 모든 것을 숨기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우리 딸이 커서 이런거 보기 시작하는구나'라는 낯간지러운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댕기는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소녀적인 감성에 딱 맞아서 단번에 푹 빠져들어 버렸다. 그 책과 함께 나는 우주를 탐험했으며, 유럽 어느 나라의 왕녀가 되었고, 이집트를 구경했으며, 삼국 시대 이전 어느 무사와 사랑에 빠졌고, 환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즐겼다. 나와는 또 다른 캐릭터 - 둘도 없이 단정한 모범생, 누구도 못말리는 날나리, 십대 연예인, 소녀가장, 전국에서 제일 예쁜 아이, 지구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 재벌 2세 등등 - 이 되어보며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염탐했다.

그 책을 통해 나는 세계를 배웠다.

아마도 지금이 이 방랑기는 그때 심어진게 아닐까? 따라서 내 여행은 달나라는 물론 사차원의 세계까지 가 보지 않는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때 내가 배운 세계관이 그러했고, 나는 아직도 어딘가에 그런곳이 있으리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한다.

 

그나저나 몇 개월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책의 권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니 이걸 숨길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책장 유리가 검은 칸이 있어 그곳에 잘 넣어 뒀는데, 책이 15권쯤 쌓였을 때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학교에 가 있는 사이에 엄마가 내방 대 청소를 하신것이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내방에 앉아 계셨다. 약간 기분이 안좋으신 듯한 얼굴로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옆에는 패대기 쳐져있는 걸레와 댕기가 쌓여있었다.

 

'아. 젠장. 걸렸구나..'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어?'

'엄마. 미안...내가 숨길려고 한건 아닌데....'

'이렇게 책이 많이 쌓이도록 나한테 왜 말안한거야?'

'엄마, 미...'

'너 내가 만화책 얼마나 좋아하는지 뻔히 알면서 왜 너만 보는건데? 응? 근데, 이 불의검 왜이렇게 슬프니. 흑흑...가라한이 기억을 못해...아라 불쌍해서 어떻하니. 흑흑흑'

'......'

 

엄마눈이 빨갰던 이유는 불의검을 보다 울어서 였고, 걸레가 패대기 쳐져있는 이유는 만화책을 발견하시고 청소 중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울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만화가게를 하셨었다. 잊어버렸었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댕기는 엄마가 구입하셨기 때문에 나는 다시 나의 사회생활(떡볶이)로 복귀 할 수 있게 되었다.

 

 

행사장은 조금 아쉽게도 전반적으로 연령층이 매우 낮은 만화, 애니매이션 류가 주를 이루었고, 거리에는 기대했던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나 공연이 많이 없었다. 청소년 이상을 위한 만화는 간단한 전시 몇첨이 전부였는데, 그중에 모션캡쳐를 이용한 로봇 대전이 그나마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크린 뒤에서 센서를 장착한 분이 직접 로봇 영상을 움직여 스토리를 만드는데, 모션캡쳐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반면에 애니메이션 상영작들은 매우 훌륭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세계 여러나라의 애니메이션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앞으로가 기대되는 가능성 높은 아마추어 단편들도 볼만했다. 살짝 아쉬운점은 영문 자막이 없었다는 것. 행사장에 외국인들이 매우 많았는데, 상영작들에 영문자막이 있었더라면 좀더 많은 사람이 축제를 같이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 

 

 

애들만 만화보는 시대는 이미 저어 만치 사라졌다.

우리엄마가 그랬듯, 

서른 넘은 나도 밤새서 만화를 본다. 

 

 

 

 

 

 

 

 

 

모든 축체의 마무리는 항상 고기 파티.

한국에서 겨우 40일 떠나있었는데, 토종 한국인보다 수입 한국인이 고기와 김치가 그리웠다며 고기집으로 덥썩 들어갔다.

달콤 짭쪼름한 등갈비 구이를 주문했는데, 겉모습에 속았다. 붉은 색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었건만, 짜증나게 매웠던 것. 매운것과 친하지 않은 우리는, 불같이 더운 날, 불판 앞에 마주않아, 입에서 불나는 등갈비를 오손도손 나누어 먹었다.

 

 

       

2013년 Sicaf의 기억

행사일자 : 2013.07.27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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