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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 일본/Japan | 오키나와, 이시가키
[다케토미] 느림의 미학, 시간도 한박자 쉬어가는 곳
2013. 5. 20. 09:30

다케토미 지마
시간도 멈췄다 가는 마을

 

 

다케토미 섬.

지금도 그 아름다움이 눈에 선하다. 이번 이시가키 여행에서 감히 하이라이트는 이곳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기억에 남는다.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껴 졌을까? 모든것이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울만큼 느리고, 류큐왕국의 오래된 시골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그곳이 말이다...

 

 

 

 

 

 

다케토미섬으로 가는 길
푸른 빛 길

 

 

아침부터 고급 리조트 발코니에서 사진찍는다고 부산을 떤 덕분에 다케토미로 가는 페리에서 침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이시가키 주변의 푸르른 바다를 한없이 지켜봐 주려고 했는데, 결국 꿈에서 지켜보고 말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다케토미 섬인데, 이곳은 류큐왕국의 옛집들이 그대로 보존된 민속마을이있는 보존지구라고 한다. 이리오모테가 자연보존지구라면 이곳은 문화보존지구이다. 가까운 섬인데도 각각의 특색이 참 다르다. 역시 테마만들기에 강한 일본인들. ^^ 

 

 

크게 보기

 

 

섬은 지도에서 보는 것 처럼 고하마섬과 이시가키섬 사이에 있는데, 이곳 페리의 불편한 점은 모든 작은 섬들을 가려면 모항인 이시가키로 돌아와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지역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이시가키이다보니 이곳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많아도 작은 섬들을 오가며 볼일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나보다. 그렇지만 우리같이 여기저기 주어진 시간내에 다 가보고 싶은 관광객에게는 조금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안녕, 시사!
너를 지켜줄께

 

 

다케토미 민속마을은 용인 민속촌같이 현재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테마지구가 아니라 봉화 닭실마을같이 정말 주민들이 거주하고있는 보존지구이다. 섬의 모든 주거지역이 통째로 중건전으로 지정되어 에디에서도 현대식 건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원래 마을 주민들의 주업은 사탕수수나 파인애플 경작인데, 근래들어 물소차로 관광객들을 태우고 마을을 순회하며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도 이 색다른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어제에 이어 또다시 물소차를 타게되었다.

 

※ 중건전 :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축물, 길, 마을등을 보호지역으로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매표소로 들어서니 지붕에서도 입구에서도 익살스러운 오키나와 수호신 시사가 우리를 반겨준다.

이곳의 수호신이 좋은 이유는 '신'이라고 엄숙하고 성스러워서 가까지 가지도 못하는 대상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즐거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와 지켜준다는 데 있다. 사람들의 삶속에 깊이 스며들어 다정한 모습으로 위안이 되어주는, 이런 것이 진짜 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다케토미 전통 마을은 물소차를 제외한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므로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하얀 산호석이 부서진 모래가 깔려 있는 길은 고르고 평평해서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부담없이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시한번 물소차를 타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마을버스

 

 

그렇지만 오늘 우리의 선택은 지역 명물, 물소차. 느릿느릿 흔들 흔들 오키나와 민요를 들으며 마을을 돌아 보기로 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붉은 꽃이 담장마다 흐드러지게 피어 하얀 바닥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우리를 반겼다.

 

 

담장위 꽃 사이사이에 서서 익살 스럽게 인사하는 시사를 찾는 것은 다케토미 마을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

 

 

열심히 일한자, 받으라!

열심히 일한 우리차의 물소에게 물세례가 떨어졌다. ^^ 땡볕에서 무거운 짐을 끌고다니면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이렇게 중간에 물을 적셔 체온을 내려줘야 한다고 한다. 물소는 물을 기분좋게 맞으며 멈춰서 있더니 다시 씩씩하게 출발한다. 마부까지 10명정도나 타고 있는 큰 수레였는데, 물소가 힘이 엄청 세긴 한가보다. 출발할 때 잠시 끙~하다가 금새 어렵지 않게 이 큰 수레를 끌고 유유히 마을을 누빈다.

 

 

 

 

 

그래도 무거운 수레를 끌게해서 학대하는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좀 아팠는데, 이렇게 파라솔이 펼쳐진 넓은 우리에서 쉬고 있는 비번 물소를 보니 마음이 좀 놓인다. 휴양지 같은 아름다운 곳에서 반나절은 이렇게 데굴거리며 주는 음식 먹고 쉰다고 한다. 뭐 자연에서 뛰놀고, 물속에서 첨벙거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햇볕에 따라 파라솔 옮겨주며 그늘도 만들어 주고, 사랑해 주는 주인이 있는 이녀석의 인생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같다. 

세상에 학대 받고 사는 동물이 얼마나 많은데...어떤면에선 사람보다 팔자가 좋은 것 같기도 하다. ^^

 

 

 

 

살아있다고 분주히 움직일 필요는 없다
요란하게 당신의 존대를 알리기보단, 당신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게 하세요

 

 

마을이 너무 예뻐서 물소차로 돌아보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그래서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다시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물소차에서 내려 마을 안으로 들어오니 모든것이 정지된 것 처럼 보인다. 바람한점 없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내 발길에 채이는 하얀 모래뿐. 돌담위에 돋아난 이름모를 선인장같은 식물들이 마을을 더욱 신비롭게 해준다.

 

 

넋을 놓고 구경하고있는데, 마을 한쪽 구석이 약간 부산해지는 듯하여 바라보니저 골목에서 물소차 하나가 다가온다.

어래? 이녀석은 꽃도 꽂았네. 분명 암소이겠지?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에 따르면 꽃을 오른쪽에 꽃으면 처녀, 왼쪽은 시집간 암소, 양쪽에 꽃으면 미친소라고 한다. ^^; 이 이쁘장한 힘좋은 소는 아직 아가씨다. 힘좋아서 시집도 잘가겠다.

 

 

어느집에나 이렇게 붉은 기와 위에는 시사가 앉아 내려다 보며 집안의 나쁜기운을 막아주고 있다. 예전에는 사실 시사도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성한 존재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민가 곳곳에서 사람들을 반겨주는 다정한 신이 되었다.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지금의 시사가 훨씬 좋다.

 

 

그런데, 나도 시사를 내려다 볼 기회가 생겼다. 바로 마을 전망대. 전망대라고 해봐야 제일 아래서부터 고작 십미터도 안되어 보이지만 이 마을에서는 이곳이 제일 높은 곳이다. 한명이 조심스레 올라가야할 만큼 가파르고 비좁은 전망대인지라 차례차례 줄을 서서 올라가야 한다. 어렵게 올라온지라 한사람 한사람이 편안히 볼만큼 보고 내려와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곳의 마법인것 같다. 누구나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하는 마법.

 

 

이렇게 시원하게 마을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녹음에 묻힌 붉은 지붕들.

그런데, 가만히 내려다 보니, 모든게 멈춘것이 아닐까 싶었던 이 마을에 무언가 '매우 살아있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가끔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말고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는데, 대체 무얼까?

 

가만히 보다 보니 그 답을 알것같다.

수많은 꽃들이 살아있고, 나뭇잎 하나 하나도 살아 있고, 활기찬 붉은 지붕 안에도 누군가 살고있다. 그뿐아니라 처음부터 돌맹이가 아니라 예전엔 살아 숨쉬던 동물이었을 검은 산호벽과 하얀 모래에서도 삶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렇다. 살아 있다고 꼭 수선을 떨어야 표가 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이런 경험들이 한번씩 있을 것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잘 들리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정신없었던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반대로 조용하여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사람의 차분한 한마디가 더 영향력있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경우말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요란하게 살았다고 해서 그 삶에 가치가 생기는 건 아닌것 같다.

오늘 이곳에서 또 한수 배워간다. 

 

 

 

 

마을 안쪽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

 

오래되서 녹슨 펌프이다. 우물위에 놓여 있는데, 마실수는 없다고 쓰여 있다. 분명 예전에는 마을의 생명수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매일매일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징검다리 같은 존재 였겠지.

 

 

이시가키에 가거든 이 소박하고, 느린 마을에는 꼭 한번 들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 내가 이곳을 이렇게 극찬했는지, 왜 일본일들이 노후를 보내고 싶은 곳에 일위에 오키나와가 꼽히는지 알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