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 Instagram Facebook NAVER 이웃 E-mail 구독

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Chungcheong | 충청도
내 생에 최고로 쇼킹했던 국내온천의 기억
2016. 2. 22. 16:52

내 생에 최고로 강렬했던 온천의 기억
새해 액땜? X물에서 목욕재계한 사건

 

 

목욕재계로 지난해의 묵은 때를 벗어 버리고, 새마음 새각오로 한해를 맞이하리라!

 

새해 첫날은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한다고 한다. 뭔가 깨끗하게 새시작을 하는 의식같은 개념인데, 올해 우리도 목욕재계로 한해를 시작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특별한 날이니 상쾌한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는 노천온천에서. 

사실 겨울에 소복히 눈이 쌓여 운치가 펑펑 쏟아지는 노천온천은 옆나라 일본이 제일이겠으나 지금 명색이 국내일주 중인데, 옆나라에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그래서 가까운 국내 노천온천을 물색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새해 첫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새해의 꿈

 

내가 맞이 하고 싶었던 새해는 그랬다.

조용한 노천온천에서 시원한 겨울 바람을 얼굴에 느끼면서 뜨끈한 물속에 앉아 지난해의 묵은 때를 벗어 버리고 싶었다. 차분히 명상하듯 한해를 준비하며, 개운해진 몸과 마음으로 신나게 올해 여행을 이어가리라.

 

그런데, 사실 한국 온천에서 이런 차분한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조금 어렵다. 이름이 온천이라고 해도 가보면 동네 목욕탕과 다를 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용하는 사람들도 깔끔떠는 일본인들과 성향도 달라서, 목욕탕에 의자와 바가지가 자로 잰듯 각맞춰 놓여있는 일본 목욕탕과 달리, 한국은 바가지 날아다니고, 물 사방으로 튀고, 애들 뛰고, 아주머니들 큰소리로 수다 떠시고...남탕에서는 심지어 나체로 막 윗몸일으키기에 팔굽혀펴기, 점핑잭까지 하면서 운동을 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오이군이 손가락에 꼽은 한국 컬쳐쇼크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목욕탕에서 나체로 운동하는 아저씨들. ^^;

 

 

 

새해의 현실

 

어쨌든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니 뭐 그런 점은 그러려니 한다. 게중에 목욕탕이 좀 깨끗하게 관리된 곳이 있는데, 우리가 이번에 찾아갔던 곳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명 온천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그렇지는 못해서 약간 실망스러웠다. 시설이 낙후 한거야 오랜 역사라고 인정해 준다지만 타일 사이에 물곰팡이도 많고, 비누에 머리카락 덕지덕지 감겨 있고, 하수구에 머리카락이 잔뜩...이런거는 청소하면 해결되는 건데, 관리 상태가 명성을 따라오지 못해서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특히 우리나라 제일의 온천이라고 오이군에게 큰소리 치고 데려가서 더 민망했다는.

뭐 어쨌든 오늘의 목표는 노천온천에 앉아 하늘을 보며 쉬는 것 아닌가. 실내 목욕탕 컨디션이 아무려면 어떠랴.

깨끗이 실내에서 샤워를 마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노천탕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신년 휴일이다보니 이용객이 많았는데, 그래도 나 하나 끼어 앉을 자리는 남아 있기에 종종 걸음으로 물속에 발을 딛었다. 

 

어매 뜨거운거. 

차가운 공기에 오싹해 졌던 피부가 뜨거운 물이 닿으니 잠시 추운지 더운지 정신을 못차리다가 그새 안정이 되어 마음이 푸근해 진다. 

 

크아~조쿠나아 ^^

뜨거운 욕탕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는 나이가 됐다는게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절대 아주머니들이 사우나 좋아하는 걸 이해 못할 줄 알았는데, 쑥쓰러워서 찜질방도 못가던 내가 제발로 온천을 찾아 왔다. 게다가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오다니...기대하던 산 풍경이 막혀서 안보이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하늘이 시원하게 보여서 기분이 한없이 좋아졌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어느동네 집 값이 뛰니 그쪽에 분양을 받아야 하네 어쩌네 등의 소재를 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셨지만 잠시 후 그 소리도 저어 편으로 멀어 지는 듯 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시원한 겨울 공기를 느끼며 사색에 잠겼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내가 물속에 있는건지. 공중에 떠 있는건지.

눈을 감았더니 감각이 아득해 지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래. 이게 바로 원하던 새해의 첫날이지.

 

허걱.

근데, 그때 갑자기 맨살이 팔에 슥 닿는 느낌이 든다. 흐익. 정말 이지 소름 쫙 돋는 기분나쁜 느낌.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어떤 4-5살 되어보이는 꼬마애가 물이 뜨겁다며 호들갑을 떠느라 이사람 저사람 부딛히고 난리가 났다. 아. 애구나. 뭐 그럴 수도 있지. 조금 번잡스러웠지만 새해니까 너그럽게 그 애에게 자리를 좀 만들어주고,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여자아이가 하나 더 들어와 아까 걔랑 물 가운데서 다이빙하고 첨벙거리고 노는 바람에 분위기가 훨씬 더 산만해졌다.

 

저애들 엄마는 누굴까 -_-;

애들이 산만하고 공공장소에서 뛰며 예의 없게 구는 것들이 부모 눈에는 활발하고 밝은 걸로 둔갑해서 보이는가보다. 어느정도는 사랑의 콩깍지가 이해되긴 하지만 저런건 부모가 주의 좀 줘야 자기 애가 어디가서 이쁨 받는건데...

에효. 애들도 놀러와서 좋은가부지 뭐. 어디가서 미운털이 되든 그것은 저들의 인생이니 신경 끄고 나는 나의 세계로.

 

오늘은 새해 첫날이니 너그럽게 모든 걸 포용하기로 마음 먹고 왔기 때문에 다시 눈을 감고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데, 이번엔 조금 하이톤의 어떤 아줌마가 내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멋? 이게 뭐야?

그말에 옆에 있는 아주머니가 호응하는 소리가 들린다. 

응? 저게 뭐지?

 

뭐. 신경쓰지 말자. 나는 나의 세계로...

궁금했지만 그냥 눈을 감은 채 여유를 즐기려고 애쓰는데 주변에서 웅성 웅성 하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뭐야. 진짜 이게 방금전까지 없었는데, 갑자기 떠올랐어.

저 애기들 중 누가 하나가 그런거 같은데?

에이씨. 그거야, 아니야?

나갈까?

 

뭐...뭐지?

이쯤되면 나도 궁금해져서 눈을 뜰 법도 한데, 오늘은 웬지 끝까지 그냥 나만의 힐링을 즐기고 싶었다. 그냥 눈을 감고 끝까지 신경쓰지 않으려 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촤라락 소리가 나며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는 느낌이 난다.

 

에이. 찝찝해. 나가자.

그 소리와 함께 우르르르 탕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 차암?! 진짜. 뭐냐고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해 눈을 떠 봤더니 실내로 우르르 들어가는 아주머니들의 바쁜 뒷모습이 보이네? 잠시 어리둥절 하다가 뭔가 기분이 섬짓해져서 물 가운데를 봤는데, 미심적은 물체가 물살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는게 보였다. 아직 상황판단이 잘 되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내 몸은 물 밖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더라. 그때 다급하게 나오신 관리인 아주머니가 뜰채로 물체를 떠내며 투덜 투덜 하신다. 

여러명이 쓰는 공간에서 이러면 어떻게해! 에잇 참. 이거 물 갈아야 되겠네. 쯧...

.

..

...

그렇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 중 하나가 까불며 장난치다 근육 조절을 잘못해서 방출해낸 물체였던 것이다. 

 

으아아악...

 

충격에 휩싸인 나는 급하게 목욕탕으로 들어가 비누칠을 두번이나 해서 열심히 몸을 씻어냈다. 

건강에 좋은 온천수를 피부에 좀 남겨 놓으라는데,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씻고 또 씻고.

 

이렇게 2016년 병신년을 나는 X물 목욕으로 아주 강렬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올해는 병신년이라는 이름도 심상치 않은데, 한해가 아주 버라이어티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병신년 새해 첫날

2016.01.01

 

 

 

※ 이 글을 쓰고 난 후 일년 뒤 해당 온천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해당온천은 이 글을 쓰고난 해 말에 전체 리모델링을 거쳐 현대적인 시설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특히 노천온천은 일식온천과 비슷하게 나무와 돌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했다고 하네요. 이후 청결상태와 시설관리 상황은 저는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시설이 새것이다보니 제가 갔을 때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겠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온천탕안에 흘린 물체는 온천측의 잘못은 아니니 이 글로 온천이용을 망설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