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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17살 노령견 까비 이야기
2015. 3. 6. 05:00

17살 까비는 여전히 청춘
건강하고 똘똘한 믹스견의 폭발적인 매력

 

 

올해로 17살이 된 까비.

개 나이로 치면 80에 가까운 노령이지만, 여전히 데리고 나가면 동네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는다. 

이 애기는 몇살이여?

애기라니, 뚱땡이 할마씨 동안이라 좋겠네. ^^

이제는 앞도 잘 안보이고, 소리도 잘 안들리는 덕분에(?) 까칠하던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져 순둥이 소리를 다 듣는다. 원래는 모르는 사람은 근처에도 못오게 하는 깍쟁이 였는데.

 

 

17년째 가족으로서 한자리를 톡톡히 차지하며 살고 있는 우리까비는 원래 동생이 데리고온 버림받은 강아지였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동생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조그만 강아지가 한마리 있더랜다. 어디서 났냐니까 누가 잠시 맡겨 놨는데, 아무도 키우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길에 버리기는 뭐하니 안락사를 시키겠다는게 그집 어른들의 설명. 참...초등학생한테 뭐 그런 얘기까지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까비의 운명이 바뀌었다. 털실뭉치를 굴리며 놀고 있던 조그마한 강아지를 안락사 시킨다는 말에 충격받은 나의 순진한 동생이 (그렇다. 내 동생은 무지 순진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 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대뜸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누나, 우리집에 강아지 한마리 더 키워도 돼?

 

아놔~ 누드는 곤란하다구요~ 눈이라도 가리겠어요

 

그때 우리집엔 아주 극성맞은 슈나우저 잡종이 한마리 있었는데, 내가 정신없게 자란 털을 밀어주고, 배설물을 치워야 했으므로 사실 개가 한마리 더 온다는 사실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다. 얼마나 또 일이 잔뜩 늘어날까. 그러나 동생이 아무도 안키우면 얘가 안락사 당한다면서 울듯 말하는데, 차마 매정하게 내칠 수가 없더라. 

흠...걔도 못생겼니? 내가 털 안밀어도 될 것같이 생겼으면 데리고 오던가...

그날 저녁 집에 갔더니 먼저 있던 슈나우저와 똑같이 못생기고 시커먼 녀석이 마루를 뛰다니고 있더라. 에효...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털미는 바리깡을 집어들었다. 

 

 

 

 

 

 

 

 

작년 까지만해도 귀신같이 어떤 기종이던 카메라는 물론 핸드폰 비슷한 것만 집어들면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는데, 이제 귀찮아서 신경도 안쓰는 듯 (사실 잘 안보이는 모양)

 

그런데, 운명이란 참 예측할 수 없는게 한달 먼저 우리 집에 왔던 극성맞은 녀석은 어머니가 못견뎌 하셔서 결국 마당 넓은 시골집으로 보내졌고, 얼떨결에 동생이 데려온 까비가 안방을 사수하게 되었다. 먼저 있던 슈나우저는 숫컷이었는데, 어찌나 근육질에 힘이 좋은지 뛰어다니다 화분을 머리로 들이받아 깨기도 하고, 엄마가 혼을 내도 씨알도 먹히지 않게 씩씩했던 것. 사실 어머니는 어릴적에 개에게 물린 기억이 있어 개를 무서워 하셨다. 안그래도 무서운데, 혼내도 말안듣는 녀석이 이쁠리가 없지않은가. 그런데, 바로 이 까비라는 녀석이 어머니의 개공포증을 자연스럽게 치료해줬다는 놀라운 사실.

 

훗, 나의 매력에 퐁당 빠져 버리신거죠~

 

슈나우저가 떠난 후에도 어머니는 틈틈이 까비마저 어디론가 보내려고 노력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침대에 엎드려 까비를 불렀는데, 얘가 반갑게 오더라는 것이다. 근데, 막상 오니 또 싫어서 저리가 라고 했더니 툭툭툭 걸어 있던 자리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개들이 부르면 오는거야 흔한 일이지만 가랜다고 가는 것이 신기했던 엄마는 얘가 정말 말귀를 알아 듣나 싶어 테스트에 들어갔다. 오라 가라를 20번쯤 시켰던것. 그런데, 놀랍게도 까비는 순순히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한 20번쯤 됐을때는 지도 힘들었는지 엄마가 부르자 한동안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짧게 한번 내쉬고, 마지못해 툭툭툭 걸어와서 옆에 주저앉아 버렸다고 한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드디어 엄마의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개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두려움이 사라진 듯. 

 

 

 

 

까비 사랑 나라 사랑
그녀 인생의 전환점

 

까칠한 성격에 새로 맞이한 외국인 아빠와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렇게 우리집에 처음으로 진짜 가족같은 반려견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부터 아버지는 어디서 열심히 개를 데려 오시고, 엄마는 열심히 다른 집에 주기를 반복했는데, 처음으로 우리집에서 생애를 보내게 되는 동물 가족이 생긴거다. 17년은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도 참 긴 시간이다. 까비가 처음 왔을때 초등학생이었던 내 동생은 사회인이 되었고, 나는 어느덧 결혼 8년차 아줌마가 되었다. (꺄울. 말도 안돼 >_<)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살던 까비는 3년전 우리가 한국으로 들어오며 맡아 기르기게 되었다. 다들 일을 하기 때문에 까비가 맨날 집에 혼자 있는데, 야채커플은 모두 재택근무를 한다는게 그 이유였다.

 

겨울이 맺어준 그들

 

그렇게 까비는 다시한번 인생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외국인 아빠가 생긴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겐 가차 없이 매정한 까비가 웬일로 오이군은 처음 봤을 때 부터 별로 짖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근하게 구는 것도 아니었다. 오이군이 친해지려고 몇날 며칠 개껌을 들고 갖은 노력을 다 했건만 까비는 슬금 슬금 피해 다니기만 했다. 마음 상한 오이군은 자기는 원래 개보단 고양이를 좋아한다며,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서운함을 표시한다.

 

그러던 어느날 겨울이 오자 판도가 바뀌었다. 어쩌다 보니 한겨울에 까비 털을 홀랑 밀어버리게 됐는데, 이녀석이 추웠던 모양이다. 오이군이 바닥에 벗어 놓은 (울 영감은 옷을 벗어 사방에 뿌려 놓는다. 신혼때는 울컥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포기) 검은 스웨터에 올라 앉기를 유난히 좋아하더니 급기야는 일하는 오이군 무릎팍에 턱하니 올라 앉은거다. 

이유있는 동맹. 

이유야 어쨌건 오이군은 행복해 했다. 여전히 고양이가 좋다며 앙탈(?)을 부리지만 까비가 무릎에 올라오면 그 자세로 한시간이건 두시간이건 깨어나 내려갈때 까지 꼼짝도 안하고 안아 준다.

 

개는 고령이 되어 폐경이 되어도 발정이 난다. 그 때마다 유선이 발달하는데, 그로인해 염증 및 종양이 많이 생겨서 결국 중성화를 받게 됐다

 

이렇게 커지기 시작한 오이군의 까비 사랑은 중성화 수술을 했을 때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캐리어가 없어서 수술이 끝난 까비를 편하게 데려올 방법이 없자 직접 이동식 침대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 상자에 쿠션을 넣어 침대를 만들어서 엿장수마냥 목에 걸어줬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씩씩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개을 무슨 애 다루듯 한다며 어이없어 하셨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까비가 불안할까 열심히 까비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정말 계속 말을 걸더라. 개와 대화하는 남자.

중간에 간간히 바꿔 들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무거워서 나는 제대로 걷기도 힘들더만 오이군은 혹시라도 흔들려서 까비가 아플까 조심 조심 무릎을 구부리고 그 먼 길을 걸었다. 이만하면 정말 자상한 개 아빠, 인정.

 

늦은 중성화의 부작용은 개의 식욕이 폭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안먹어도 살이 찐다. 포동 포동 살오른 궁딩이
침대로 이용했던 바나나 상자가 마음에 들었던지 요새처럼 사용한다. 위가 뻥 뚤렸다는 건 생각 못하는지 늘 저렇게 숨어(?) 있다는 ^^;
개도 나이를 먹으니 손이 많이 간다. 노령견들은 몸에 사마귀가 많이 생기는데, 앞발에 난 것이 거슬렸는지 이녀석이 과감하게 물어 뜯어 버렸다. -_-; 그 부분을 늘 핥아 상처를 만들므로 종종 소독약을 발라줘야 한다. 까비는 한쪽눈에 눈물 분비도 잘 안돼서 눈꼽이 많이 끼므로 매일 아침 닦아주고, 인공 눈물을 넣어 줘야 한다.

 

 

 

 

그녀의 일상
그녀가 좋아하는 세가지

 

 

개가 나이가 드니 일과가 딱 세가지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잠, 밥, 산책.

노령견은 많이 잔다는 얘기를 듣긴했는데, 정말이지 어찌나 잠만 자는지 가끔 숨은 쉬나 확인을 해 볼 때가 있다.

 

 

 

 

 

내가 놀아달라고 애원해 봐도 소용없다. 제작년까지만해도 내 머리를 잘근 잘근 씹는 놀이(?)를 즐겼는데, 딱히 맛이 없다는 것을 15년만에 깨달았는지 그만둬 버렸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사람이 오면 짖거나 반응이 있었는데, 이제 그것 조차 없다. 그냥 힐끔 한번 쳐다보고...
다시 꿈나라로 돌아간다. 집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스스로 은퇴한 듯
위에서 자다 미끄러져 내려왔는데도 안깨고 계속 잔다
새벽같이 일어나던 녀석이 이제 아침에 눈부시다고 머리 묻고 잔다
문가에서 자다 방문이 스르르 닫혀 코를 눌렀는데, 숨이 안쉬어져 거친 호흡 소리를 내면서도 안깨고 잔다
새벽에 일어나면 침대로 다가와서 부비적 거리고, 발로 툭툭 치며 깨우곤 했었는데, 몇달 전 부터 우리가 깼는지 확인하고, 자는 것 같으면 저도 다시 잔다. 

 

까비 전용 TV. 가끔 하염없이 저러고 바라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개를 보고 흥분하곤 했는데, 요즘엔 고요히 바라만 본다

 

그런 까비도 가끔 열광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밥과 산책이다. 

자다가도 정확하게 낮 12시 저녁 5시가 되면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달그락 달그락 밥통을 핥아대며 시위를 시작한다. 정말 신기한 까비의 배꼽시계 덕분에 우리도 비교적 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누가 와도 신경도 안쓰는 녀석이 누군가 나갈 때는 발랄하게 달려와 저도 나간다고 애절한 눈빛 공격을 시작한다. 

 

루돌프 출동!

 

결국 손발이 오그라드는 한겨울에도 눈빛 공격에 종종 당해서 같이 산책을 나오게 된다. 신기한 건 추워서 바들 바들 떨면서도 밖에만 나오면 그 느리던 생명체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 이리 킁킁 저리 킁킁. 

앗, 너 여전히 달릴 수 있구나?! 

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루돌프 옷 제일 큰 사이즈를 샀는데도 뚱띵한 까비에게 너무 작다 ^^;
옷이 터질 듯...개 소세지 ^^;

 

 

 

 

그녀의 위기
강적, 토란이를 만나다

 

나의 눈빛을 봐~ 나에게 빠져들어 봐~

 

그런 평온한 까비의 일상에 가끔 시련이 찾아 온다. 바로 부모님 댁에 새로 들어온 강아지 때문이다. 이녀석 역시 동네 뻥튀기 장수 아저씨가 키울 사람이 없다며 놓고 갔는데, 누군가 컴컴한 지하 창고에서 기르겠다고 나서자 동생이 또 마음이 아프다며 낼름 집어와 버렸다. 17년전이나 여전히 변함없는 내동생 ^^;

젖도 못뗀 주먹만한 녀석이 얌전하다며 데려 왔다는데, 모두가 그 청순한 모습에 속고 말았다.

 

꺄악, 신난다! 놀자 놀자 놀자 놀자 놀자 놀자 놀자!

 

조금 자라나자 정말 어마 어마 어마한 개구장이 본색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녀석이 우리집에 놀러 오거나 야채커플이 여행갈 때 까비를 부모님 댁에 맡겨 놓으면, 요 녀석이 하루종일 졸졸 쫓아다니며 까비에게 놀자하는 모양이다. 물론 하루 종일 자야하는 80살 할머니가 그게 달가울 리가 없다. 으르렁거려보고, 컹 짖어도 보지만, 알토란, 토란이(새로온 강아지 이름)는 전혀 굴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럴 수록 오히려 더 신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게다가 빠르기는 또 어찌나 빠른지, 까비와 개껌을 하나씩 나눠 주면 까비가 채 입에 물기도 전에 두개를 다 물고 사라진다. 우리도 잡을 수가 없어서, 그 초자연적인 스피드에 혀를 내두를 뿐. 그래도 요넘 보면 볼 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공던지면 물어오고, 반가우면 얼굴에 뛰어들어 마구 핥고, 높은 곳도 가볍게 점프해 올라서 우리를 놀래킨다. 간만에 보는 개다운 개. 까비는 어릴 때 부터 개보다는 고양이 같았기 때문에 이런 진짜(?) 개는 영화속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나름 재밌고 신기하다. 자주 보진 않지만, 이미 우리도 그녀의 마수에 빠져들었다는.

뭐 어쨌든 그건 우리 사정이고, 원래도 개를 싫어하는 까비에게 이녀석은 엄청난 골칫덩어리일 뿐이다.

 

얼마나 뛰어다니며 말썽을 피우는지 엄마가 집안일을 못하시겠다며 최후의 수단을 쓰셨다. ^^; 그나저나 개 싫어하던 어머니의 장대한 발전. 개를 업어주기까지!

 

 

 

 

우리 가족이 되어 줘서 고맙다!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주는 것

 

가끔 까비의 출생의 비밀이 궁금하다. 얘는 무슨 종류의 개 일까? 엄마는 누굴까? 아빠는 누굴까?

 

요즘 까비를 보면 참 고맙고 기특한 생각이 든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집에 혼자 있을 때 은근히 의지가 되어주고, 나갔다 들어오면 반겨줘서 집안에 활기를 주며, 생각치 못한 애교로 소소한 기쁨을 안겨준다. 나가기 싫어하는 나를 산책을 빌미로 운동시켜주는 것도 고맙고, (개...개가 나를 운동시키는 거였어...) 오랜세월 살면서 큰 병치례 한번 없이 건강하게 살아주는 것도 고맙다. 보험도 안돼는 동물병원, 부담되는 것이 사실인데... 게다가 성격도 얌전해서 말썽도 부리지 않고, (작년까지는) 낯선사람은 따르질 않아서 집도 잘지켰지 않은가.

우리가 너를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니가 우리의 정서를 따뜻하게 키워주고 있었나보다. 

우리집에 와줘서 참 고맙다, 까비야. 앞으로도 계속 우리랑 건강하고,즐겁게 살자~ ♡

(토란이도 까비만큼 건강하고, 똑똑하게 사랑받으면서 살자~)

 

 

개엄마의 일기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