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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Gyeongsang | 경상도
영주 부석사 은행나무 길따라
2014. 11. 11. 13:12

 

스위스가족의 한국 시골여행기

가을이 아름다운 사찰, 부석사

 

 

──

 

 

오늘 집에 오는데, 은행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니 생각나는 곳이 있었다. 은행나무길이 화려하게 이어진 부석사. 이야기는 잠시 예전에 오이군의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로 되돌아 간다. 

 

 

우리는 봉화 달실마을을 거쳐, 안동의 농암종택에서 귀족놀이를 하며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영주 부석사로 향했다. 가장 한국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스위스에는 은행나무가 매우 드물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가을하면 빨간 단풍나무와 노오란 은행나무가 진리인데, 스위스에는 은행나무가 거의 없었다. 사찰의 고즈넉한 모습과 화사한 은행나무의 조화, 이거라면 대자연의 은총을 받고 자란 스위스 사람들도 충분히 감동하지 않겠는가?

 

 

스위스가족의 한국 시골여행기 ① 달실마을 편

스위스가족의 한국 시골여행기 ② 농암종택 편

 

 

 

 

 

           

부석사 가는 길

빠알간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 가는 곳

 

농암종택에서 하루종일 여유부리며 늘어져 있어도 불만 없겠지만, 스위스 가족들의 귀국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일찍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였다. 안동의 낙동강 줄기에는 어쩜 이리 그림같은 집들이 툭툭 놓여 있을까. 저 산아래 집으로 지금 당장 이사가도 불만 없겠다는 오이군. 역시 스위스 산골 소년은 산과 물이 있는 곳이 좋은가보다. 나도 저런 곳에 몇달 머물러 보고 싶긴 하지만, 말 그대로 몇달이다. 계속 살기에는 속세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조금 답답할 듯. 집앞 1분 거리인 슈퍼마켓도 귀찮아서 못가는데, 저기 살면 먹고 살기 포기 할지도...^^;

 

 

 

 

 

주차장의 시원한 인공 호수가 화사하게 무지개를 만들며 우리를 반겼다. 오랜만에 같이 카메라 들고, 이런 장면에 환호해 주는 사람과 있으니 은근히 신이 났다.  오이군은 사진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무지개가 가장 예쁜 순간을 잡기 위해 한곳에 오래 머무르거나 하면, 은근히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한없이 지루한 눈빛으로 스윽 바라본 후 스마트 폰을 꺼낸다...) 그런데, 오늘은 시누이가 나와 같이 감동해주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으니 오이군이 싱글벙글 주위를 맴돌며 이쁜 포인트를 짚어주거나, 예쁜 순간에 신호를 보내주는 등 열심히 보조를 해 주는게 아닌가. 크~ 누나바라기 오이군,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네. 역시 가족이 좋긴 좋다. ^^

 

부석사는 산속 깊이 숨어있지 않고, 들어가는 길이 평탄하게 잘 닦여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여행할 때도 부담이 적다. 도란도란 무지개를 구경하는 조카들의 금발이 부드러운 가을 햇살에 빛나 너무 예뻤다. 농암종택에서처럼 난동피우지 않고, 오늘은 계속 이렇게 얌전히 즐겨주면 좋겠는데...^^;

 

 

주차장부터 부석사로 가는 길 주변은 온통 사과 과수원. 빠알간 사과가 주렁 주렁 열려있는 모습이 너무나 탐스럽다. 그런데, 생뚱맞게 나무 사이 사이에는 번쩍이는 은색 비닐이 깔려 있다. 과실이 탐스럽게 익을 무렵 새를 쫓아내느라고 그런 줄 알았더니 사과의 아랫 부분까지 빛이 반사되어 빨갛게 물이 들라고 빛을 반사시켜 주는 것이라는 블로그 지인님의 말씀. ^^ 

 

그 말이 맞는지 사과가 정말 위 아래 전부 탐스럽게 빨갛게 익어있다. 마치 가짜 초인지 의심이 갈 만큼 이렇게 예쁜 사과를 사고 싶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특히 그게 사과 매니아 오이군이라면 더더욱이나.

 

 

 

 

           

1000년 세월을 견딘 목조 건물을 찾아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외국인들의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부석사의 전체 도면.

7세기 신라시대, 문무왕의 명에따라 의상대사 설립한 부석사는 우리나라의 5대 명찰이라 불린다. 처음에 이렇게 크지는 않았고, 원래 건물들은 고려초 소실되었지만, 고려 중기부터 재건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의 규모에 이르렀다.

 

이곳이 특히 가을에 인기있는 이유는 입구에 일주문을 지나 사찰로 올라가는 길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가을에 샛노란 길이 아름다와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인데, 아쉽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조금 이른 가을이라 아직 은행나무가 단풍의 절정에 이르지를 못하고 있었다. 나는 원하던 한국의 매력을 100%보여주지 못해서 무지 아쉬웠지만, 은행나무 길을 본 적이 없는 스위스 가족들은 다행히 이 나름대로 만족해 하는 듯 했다.

 

부석사가 인상적이었던 첫번째 이유는 다른 사찰들과 달리 단청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무색이 그대로 드러난 자연스러운 건물들이 오랜세월 빛이 바래, 따뜻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건물 모양 자체가 아름답고, 주변 건물, 정원수 들과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서 전혀 단조로운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신기한 나무가 하나 있다. 가족들에게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왔는데, 으잉? 웬 바나나 나무?

사찰 샘물 근처에 바나나 나무 같이 생긴 것이 몇그루 자라고 있는게 아닌가. 갑자기 동남아의 사찰같은 느낌이 확 들면서 잠시 나는 어디인가를 되네이며 멍해지게 됐다. 

여기가... 그래. 서울보단 좀 남쪽이긴 한데, 그래도 바나나 나무가 자랄 수 있는건가? 열매도 열리나? 스님들도 바나나 드시려나?

 

바로 그때, 내가 멍때리고 있을 때 사단이 시작됐다. 

약수물을 마셔도 된다고, 오이군이 가족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던 모양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조카 중 어린녀석이 바닥에 고인 물을 바가지로 퍼마시고 있는게 아닌가. 한국에 와서 애가 아팠다는 추억을 남겨 줄까 싶어, 깜짝 놀란 내가 '어머나 얘야, 그 물은 더럽단다. 위에서 바로 졸졸 흐르는거 받아 마셔.' 라고 했는데, 이녀석이 미운 일곱살인 것을 깜빡 했다. 뭐가 됐든 하지 말라면 삐지고, 싫어하는 나이인데, 맛나게 마시던 물을 못마시게 하니 갑자기 입이 댓발이나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리고는 땡깡을 놓으며 숙모랑은 절대 말도 안섞겠다며 투쟁에 들어갔다. 자주 보는 조카가 아니라 최대한 나긋나긋 하게 말했건만 소용이 없었나보다. 그냥 문장에 안돼가 들어있으면 게임 오버. 그때 부터 칭얼칭얼, 숙모가 나를 싫어한다며, 그래서 나도 숙모가 싫다며, 원래 여자들은 다 싫은데, 숙모는 여자라서 더 싫댄다. (너 이놈 사춘기때도 그 소리 하나 두고보자.) 이미 사과하기엔 늦었고, (왜 사과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겠지만) 울고 불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래면 더 화내고 그렇다고 안달래주면 다들 나에겐 관심이 없다며 또 칭얼칭얼. 

하아...아이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어찌나 정신이 사납던지 불교신자도 아닌데,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돌아가며 가족 사진을 찍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표정이 가식적이기 그지없다. 고요한 사찰의 낭만은 이미 저 멀리 푸른하늘 위로 날아갔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계단을 트랜스포머같은 파워로 씩씩하게 두개씩 날아 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이 탁트인 광경이 나타나자 다시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딱히 높은 위치에 있지도 않는데, 부석사는 수려한 전망을 가지고 있다.

 

 

입구에서 한눈에 전체를 볼 수 없는 형태로 배치된 부석사는 한단계 올라갈 수록 새로운 건물들이 나타나 숨은 아름다움을 뽑낸다. 맨 뒤쪽 자인당까지 올라가다보면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계단을 많이 올라야 하다보니 아이와 함께 구석구석을 둘러보긴 조금 무리인지라 시누이 가족들은 무량수전까지 구경하고, 안양루 앞마당에서 아이들도 잠깐 풀어 놓을 겸, 쉬기로 했다.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아이들이 아아주 어릴 때 부터 같이 장거리 여행을 많이 하는데, 가만히 보니 여행지에서의 상황은 딱히 다른 것 같지 않다. ^^;

 

시누이 가족들과 마당에서 놀다가 내려갈까 싶었는데, 우리 호기심 천국 오이군이 구석구석 보고 싶어 움찔움찔 하길래, 그와 함께 전광석화같은 스피드로 사찰을 살폈다.

 

왼쪽 끝 건물인 자인당 내부에 있던 세개의 불상. 금불상을 생각했는데, 특이하게 석상이다. 

양쪽에 위치한 석조 비로자나불은 원래 부석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부석사 동쪽 폐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두 불상이 거의 같은 모양으로 같은 작가에 의해 조각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가운데, 석불좌상 역시 동쪽 절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9세기의 신라 불상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 끝 건물인 조사당 앞에는 웬 나무 한그루가 철장에 갖혀있다. 이것은 1300여년동안 살아왔다는 전설의 선비화인데, 그 나이를 믿기 힘들만치 가늘고, 작은 나무다.

 

부석사를 건축한 의상대사가 천축으로 떠나기 전 평소 쓰던 막대기를 땅에 꽂고, 이것에서 줄기가 돋고, 잎이 자랄 것인데, 이 나무가 살아 있는 한 나도 살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얼마 후 나무에서 잎이 돋았는데, 늘 한결 같이 지팡이 만한 크기로, 높아지지도, 굵어지지도 않으며 그 모습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이런 가는 지팡이 같은 모습인데, 나이는 1300년이 넘었다. 그럼 전설에 따르자면 의상대사는 아직도 살아 있고, 그 역시 나이가 1300살이 넘었다는 소리? 그러나 한때 이 잎을 따서 끓여 마시면 아들을 임신한다는 이야기가 도는 바람에 나무가 너무 많이 훼손되어 이렇게 철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배흘림양식의 기둥과 주심포양식의 지붕받침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부석사의 유명한 무량수전이다. 

신라시대에 지어셨다가 고려 중기 왕명으로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건할 때 고쳐 지은 건물이었는데, 아쉽게도 화재로 소실되어버렸다. 현존하는 건물은 1376년에 재건된 것으로 그 나이가 확인된 목조건물 중 두번째로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딱 보는 순간 엄청난 연륜이 느껴지는데, 화려한 단청없이도 그 건물 자체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 가까이 된 건물인데도 가까이서 보면 여전히 매우 견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배흘림양식 | 기둥 아래가 굵고 위는 가늘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있는 느낌을 준다. 조선시대에는 위아래 굵기가 같은 민흘림양식이 쓰인다.

주심포양식 | 기둥 위에 지붕을 받치기 위한 부분을 포라하는데, 심플하게 기둥 위에만 올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들어가 장식적인 효과를 내는 다심포양식이 쓰인다.

 

범종각. 원래 천장에도 화려한 그림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빛이 바래 있다. 보수공사를 거쳐 너무 화려하게 단청을 한 사찰보다 그 세월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육중한 지붕이 인상적인 일주문.

일주문은 1980년대 부석사를 재 정비하며 세운 것인데, 기둥 굵기에 비해 엄청나게 큰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굉장히 화려하긴 한데, 위에서 본 천년 된 목조 건물들 보다 뭔가 조화가 부족하고, 그렇게까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지붕에 짓눌려 다리가 부러 질 것 같아서, 이게 다른 건물들 처럼 천년을 버틸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조화와 안정감이 매력인 부석사에 조금 동떨어진 건축물인 것 같다.

 

내게는 거의 거인같아 보이는 오이군 가족들

 

가족들과 원하던대로 노오란 단풍잎 길을 함께 걷지는 못했고, 생각만큼 차분하고, 고요한 산사의 정서를 느끼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내게 부석사는 청량사, 불국사와 함께 가장 예쁜 사찰로 기억에 남았다. 그들에게도 한국의 예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어린 조카에게는 나쁜 숙모가 바닥에서 물도 못퍼마시게 한 곳으로 남겠지만. ^^;

 

 

 

 

       

스위스 가족 부석사 나들이 fin.

여행날짜 | 2013.10.14

 

 

 

부석사


홈페이지 : www.pusoksa.org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전화번호
: 054-633-3464
관람료
: 어른 1,200원 /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800원 / 주차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