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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애완견 vs 길고양이. 누가 더 행복할까?
2014. 10. 24. 07:30

행복의 조건
토종감자 수입오이 번외편 : 까비와 길고양이

 

오늘의 주인공 : 감자,오이 블로그의 깨알 같이 등장하는 까비양

 

오늘의 까메오 : 카리스마 작렬 아기 길고양이

 

 

 

 

 

 

사건의 전말

 

 

화창한 어느 오후, 우리는 까비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 까비양의 삶의 이유는 오로지 밥과 산책. 16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까비에게 이제 그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큰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매일 조금이라도 바깥바람을 쐬주려고 하는데, 사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먹고 살다 보면, 고작 30분일지라도 강아지와 산책하기도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시간이 나도 비가 오거나, 날이 너무 춥거나, 덥거나, 지지리도 귀찮은 경우를 모두 제하고 나면, 일주일에 3-4번도 가기 어렵다. 어쨌든, 그날 오후도 까비의 간절한 눈빛에 미안함을 느껴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했다. 일하다 중간에 나온거라 멀리 갈 순 없어서, 아파트 단지내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결정. 까비도 밥을 주고, 우리도 맛나게 먹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니 아직 아기 테를 다 못벗은 작은 고양이 한마리가 우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게 아닌가. 먹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까비의 통조림 고기를 약간 나누어 주었더니, 오랜 경계 끝에 조심스레 다가와 허겁지겁 먹는다. 녀석, 좀 굶었나보네. 움직일 때 마다 튀어나오는 야윈 등뼈가 안스럽다.

 

이렇게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개와 고양이가 식사를 맛나게 하게 되었다. 둘다 먹는데 정신팔려서 아직 서로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울타리 위가 궁금했던 까비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와 동시에 서로의 존재 인식. 

잠시 움찔. 

그리고 정적.

 

고양이는 빈 캔을 핥짝거리다 화들짝 놀라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이 시커먼 넘이 저걸 넘어 오려나 말래나...

엄청난 경계의 눈빛을 보내면서, 까비를 탐색하느라 온몸의 털이 곤두서 보인다.

 

그러나 까비는 이제 방년 16살. 

사람에게는 방년 16세이나, 개나이로 치면 황혼기에 접어 들었으므로 그녀는 예전만큼 점프 실력이 좋지 못하다. 따라서 더이상 이런 턱을 올라오지 않는다. 작년만해도 가볍게 올라왔었는데, 올해 들어 몇 번 오르려다 넘어지고 나서는 이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게다가 까비는 고양이에게 관심이 없다. 너는 너. 나는 나. 까비가 싫어하는 동물은 세상에 개 뿐이다. 그 외에 그 어떤 동물이 다가와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할머니 개.

 

오늘도 경계 풀가동하고 있는 고양이는 안중에 없고, 먹을 것이나 더 내놓으라며 시위 중이다. 까비가 관심이 없는 걸 느끼자, 고양이는 조심스레 빈캔으로 돌아와서 핥짝이기 시작한다.

 

더이상 먹을게 없자 저 만치 물러서서 우리를 관찰하길래, 이번엔 남은 개 사료를 조금 줘 봤다. 고양이도 개사료를 먹을까?

 

무지하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처음보다 조금 빠르게 다가오는 아기 길냥이. 눈빛이 살아 있다. 아직 어리지만, 들짐승의 그것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음식 냄새를 맡고, 우리를 한번 똑바로 쳐다본다. 

꺄아악. 귀여워. 납치하고 싶다.

그런데, 너 개사료도 먹니?

마트에 가면 개 사료와 고양이 사료가 따로 있어서, 뭐가 어찌 다를지 궁금했었다. 캔도 비슷해 보이는데, 서로 바꿔주면 안먹으려나?

 

그 답변을 줄려고, 아기 길냥이가 입맛을 낼름 다시더니,

 

맛나게 먹는다.

고양이도 개사료 먹는구나.

잘 먹길래 더 줬는데, 이것도 정말 바람같이 먹어치웠다.

정말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 

 

그러나...

우리 복에 겨운 개 까비는 사료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우리가 먹고 있는 사람 밥에만 관심이 있을 뿐.

감자, 오이! 뭐 먹어? 거기에 고기 들었나? 나도 좀 주지? 난 고기만 먹을래. 밥은 됐어.

 

배고픈 길고양이는 이미 사료를 다 해치우고, 여전히 미련 남은 표정으로 캔을 노려본다.

맛나다, 맛나다. 마술 캔아, 개밥 더 나와라. 니아아아아옹.

 

시선이 온통 고양이에게 쏠리자 안달이 난 까비. 짖는 소리가 밥! 밥! 하는 것 같다.

 

어차피 까비는 먹지도 않는 사료, 고양이에게 더 줬더니 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까비는 남이사 개 사료를 먹던, 사진을 찍던 아랑곳 하지 않고, 오이군에게 고기나 달라고 사정사정.

까비! 너 쟤 않보여? 이렇게 같은 밥을 감지덕지하게 먹는 애도 있는데, 너 편식할랫?! 이게 배가 불러가지고, 그냥...

결국 그날 까비의 도시락으로 준비해 갔던 개사료는 전부 고양이의 입으로 들어갔다. 까비는 그렇다고 사람 반찬을 받지도 못했다. 연로하셔서 짠음식에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양이에 비해 너무 곱게 자라 음식 귀한 줄 모르기에 은근한 괴씸죄도 적용이 되었다.

 

 

 

 

 

 

에필로그

 

입맛이 고급이 된 까비의 관심은 오로지 사람 밥이다.

감자가 먹는 비빔밥이 맛있겠어. 나는 비빔밥 먹을래, 개밥은 고양이나 줘~

반면 고양이는 간만의 포식이 아쉬운 듯, 개밥을 더 주지 않을까 미련을 못버리고 있다.

냐앙. 안먹을거면 그냥 나 다 줘. 난 언제 또 밥먹을 수 있을지 몰라.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둘 중 누가 더 살면서 행복감을 느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먹을 것은 늘 풍족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애완견 까비. 그 좋아하는 산책을 하려면 꼭 주인의 허락이 필요하다. 주인이 데리고 나가주지 않으면, 그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다. 늘 아파트 방바닥에서 널부러져 잠자는게 그녀의 일상. 그나마 유일한 기쁨이 음식인데, 그렇다고 기본으로 주어지는 사료같은 걸로는 먹는 기쁨을 느낄 수 없다. 고급이 된 입맛은 늘 통조림과 삶은 닭가슴살을 찾는다. 기쁨의 기준이 너무 높아져 있다. 그러나 배깔고 자다 때되면 밥을 주므로, 몸은 편안하다. 간간히 맛난 고기와 뼈도 떨어진다. 어쩌다 밖에 나가도 만나는 이들마다 이쁘다고 아껴준다. 출신이 확실한 동물이니,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므로 아무도 경계하거나 쫓아내지 않는다.

 

반면 고양이는 자유롭다. 그녀가 원하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다. 허락도 필요없고, 비자없이 다른나라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기에 굶는 날도 많다. 늘 배고픈 상태이고, 다정한 사람도 많지만, 없애려드는 무서운 사람도 많다. 어디서 구르다 온 동물이냐며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이유없이 경계한다. 그렇지만, 따뜻한 햇살아래 뒹굴며 아무때나 일광욕을 할 수 있고, 나무나 지붕위에 올라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배고프지만 영혼은 한없이 자유롭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한번 쯤 고민해 보는 문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묶여있지만, 돈 많이 벌어서 좋은것 먹으며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배는 고프고 험난하지만, 영혼이 자유로운 삶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언제라도 결론이 잘 나지 않는 어려운 고민거리다. 늘 서로 반대쪽에 있는 사람을 은근히 동경하며, 끊임없이 마음 한구석을 방황하게하는 질문인 것 같다.

당신은 등 따수고 배부른 애완견이 되고 싶은가, 영혼이 자유로운 길고양이가 되고 싶은가?

 

난 등따수고, 배부르고, 영혼도 자유로울래~ 으하하핫! (집근처 안양천에서...)

 

나도 가끔 겨우 며칠 떠나는 여행지에서 내 영혼은 자유롭다 위로하며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곤, 매번 나의 따땃한 방바닥으로 돌아와 지붕위의 고양이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