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진 거야!
아키타의 초록빛 늪에 빠져들다
아키타 여행의 마지막 날,
가와라게 지옥을 구경하고 숙소인 모토유 클럽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해가 기울어 가서 다른 유명 여행지를 찾아가기에는 좀 애매한데, 숙소로 바로 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잠시 고민하다 길목에 뭔가 눈에 띄면 그냥 가보기로 했다. 역시 여행은 렌트카나 자전거로 떠나는 자유여행이 최고인 것 같다. 패키지 여행이었다면 요런 짜투리 시간을 의미없이 숙소로 가서 무료하게 떼워야 했을텐데 말이다.
그렇게 계획없이 만나게 된 곳은 아름다운 숲속의 호수 케타쿠라 누마와 코케 누마였다. 누마는 늪으로 번역된다는데, 그 늪이라는 개념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양이다. 우리가 만난 것은 늪지대가 아닌 푸른 하늘이 담긴 호수였으니 말이다.
발길 닫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렌트카의 GPS가 영어로 나오기는 했지만 일본어를 소리나는대로 읽을 수 있다고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여행지는 대략 그림으로 선택했다. ^^;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무라는 마을이고, 야마가 산이라는 건 알겠는데, 누마는 뭐래? 나중에 알고보니 늪이란 뜻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그림만 보고 호수나 연못이라고 짐작했었다. 어쨌든 물주변은 대부분 예쁘니 여기로 가보기로 결심.
이때는 5월 말로, 6월로 넘어가기 직전이라 산아래는 이미 여름 분위기가 나고 있었는데, 산위는 기온이 훨씬 낮은 모양이다. 이제서야 벚꽃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게 아닌가. 다 끝난 줄 알았던 벚꽃을 다시보니 시간을 거슬러 가는 느낌이 들었다.
대충 숲속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물이 느껴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 전체에 우리만 있는 듯 고요했으나 이 인적 없는 호수도 관리를 하는건지 다른 곳 보다 풀이 짧은 산책로가 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싱그럽게 늦은 봄꽃을 피우고 있었다.
숲 곳곳에 가득했던 이 식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푸짐한 꽃이 예뻐서 열심히 사진으로 담아왔는데, 이날 저녁 숙소에서 제공되었던 요리에 이녀석이 떡 얹혀 있었다. 데친 것도 있고, 초절임 한 것도 있고.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모토유 클럽이라는 온천료칸인데, 지역 특산물들로 준비된 가이세키 요리를 선보인다고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식물만은 이 지역에서 나는 자연산임이 확실해 보인다. ^^;
아, 고사리들도 팔을 쭈욱 뻗으며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는데, 이들 역시 이날 저녁 식탁위에서 발견되었다. ^^
세상을 가득 품은 케타쿠라 늪
초록으로 가득한 길.
쭉쭉 뻗은 나무들은 하늘 위로 양팔을 번쩍든 채 어서오라 맞아주는 것 같았고,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들은 반갑다며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밝고, 맑은 느낌이 드는 아름다운 숲을 지나자 드디어 생각보다 커다랬던 호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 그대로 담긴 듯 하늘빛으로 빛나던 케타쿠라 누마의 시원한 풍경.
주변으로 등산로가 나 있어 어렵지 않게 다다를 수 있다.
이 호수에는 하늘도 담겨 있고, 숲도 담겨 있고, 나무도 담겨 있다.
세상을 가득 품은 산속의 호수 케타쿠라 누마, 이곳이 바로 숲의 심장이 아니었을까?
육지가 되고 싶었던 늪, 코케 누마
케타쿠라 누마 맞은 편에 또하나의 작은 늪이 GPS에 보였다. 코케 누마라고 하는데, 멈춘 김에 이것도 보고 가기로 했다.
이곳은 정말 이름 그대로 늪이 맞는 듯 하다. 수면이 온통 이끼로 덮혀 있어 물이 보이는 곳이 거의 없었다.
이 누마는 아무도 찾지 않는 숲속의 작은 연못쯤 되는 줄 알았는데, 나름 유명한지 입구에 설명도 있었다.
이 지역에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절벽들이 무너져서 호수가 많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 호수들이 점점 말라 가고 있으며 이 코케 누마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육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늪 주변의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데, 저 쪽에 낡은 집 한채가 보인다.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폐가인 듯 했는데, 그 앞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무슨 집일까 궁금해서 다가가 보려다가 우물을 보니 갑자기 등줄기가 오싹해져서 발걸음을 반대로 돌렸다. 왜 그 순간 딱 링의 사다코가 생각이 났을까. -_-; 그러자 지금까지 낭만 가득하게 느껴졌던 모든 풍경이 공포영화로 바뀌어 버렸다. ^^;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늪 풍경을 한번 더 돌아보고 차로 발걸음을 돌렸다. 밤에 산속을 운전하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자꾸만 저 편에 보이는 우물이 거슬렸기 때문에 ^^;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같은 곳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도 공포 영화한장면으로 느끼는 것도 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 그래. 그렇다면 평범한 하루 하루를 아름답게 느끼는 것도 다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매일 삶의 긍정적인 부분만 바라보자고 다짐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사다코가 뒤쫓아 오나 차 뒷편을 힐끔거려가면서… ^^;
취재지원
이 포스팅은 아키타현 한국 코디네이터사무소에서 항공권, 숙박비, 교통비를 지원받아 블로거 본인이 자유롭게 여행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여행날짜
2014.05.23
‘링의 사다코’ ㅎㅎ 그 영화 3D로도 나왔다고 하던데….
우워어…3D면 사다코가 진짜로 TV에서 기어 나오겠네요. 생각만해도 이미 기절할 것 같습니다…옛날엔 공포영화 잘 봤는데 요즘엔 한해한해 심장이 약해져서… ㅋㅋㅋ
사진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감수성이 아름답게 묻어나 있습니다.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
멋진 자연이 숨겨져 있던 감수성을 끌어 내 주네요 ^^
편안한 하루 되세요 ^^
아,,, 뭔가 숨겨진 비밀의 정원에 몰래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들어요.
특히 노을,, 너무 아름답네요.
꼭 한 번 직접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루요^^
세상엔 정말,, 아름다운 곳들이 너무 많네요!!!ㅎ
역시 방쌤님의 풍부한 감성.^^
정말 그런 기분이었어요. 알려지지 않은 어떤 보석같은 곳을 찾을 기분.
그러나 길이 그렇게 잘 나있었던 것을 보면 뭐 저만 아는건 아닌가봐요 ㅋㅋㅋ
세상엔 멋진 곳이 너무 많아서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집니다. 부지런히 다녀야겠지요 ^^
아키타의 늪이 멋지게 눈에 들어오네요
설명이 없었다면 멋진 풍경으로만 보엿을텐데
석양이 드니 을씨년 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ㅎㅎ 그러게요. 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그렇게 멋지기만하던 풍경이 말이죠 ^^
편안한 저녁되세요, 드래곤포토님 ^^
어머! 완전 좋네요 : ) 요즘따라 여유로운 자연을 즐기고 싶었는데 이키카의 풍경보니 마음이 사르르 녹네요! 사진 찍을대 풀벌레의 존재를 모르셨다니~ 나중에 정말 소름 돋으셨을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어머 하긴 했는데, 다행히 벌레가 작은 녀석이어서 심장마비 오지는 않았어요 ㅎㅎㅎ
날이 조금만 덜 더우면 산으로 들로 가고 싶은데, 요즘 너무 덥네요. ^^;
렌터카 타고 여행하는것도 아주 즐거울것 같습니다^^
넹, 아무래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보니 가장 편하고, 기동력도 좋은 것 같아요. 자전거 여행도 좋지만 산을 오르기엔 조금 힘이들어서요 ㅎㅎ
오~~~신록이 짙게 물든 일본의 명소로군요..
기회되면 가고픈데..언제나 그날이 올런지…ㅎㅎ
제주도 생활은 재미있지요?
멋진한주 되시고요^^
그날이 정말 원하신다면 오겠지요 ^^
제주 좋아요. 별거 하는건 없는데, 아침에 날씨 좋으면 가까운 해변에 가서 한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돌아와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답니다. 그게 참 좋네요. 자연과 혼연일체된 삶 ^^
아키카의 여름 풍경이 정말 근사하군요.ㅎㅅㅎ
숲의 모습이 그림같고요. 요새 숲의 매력에 다시금 감탄하게 되네요.
감자님의 글과 사진이 여행기에 정점을 찍어줍니다.^^
저도 어릴적 몰랐던 숲의 매력에 한해 한해 푸욱 빠져갑니다.
예전에 50-60대 어르신들은 카톡 프로필이 죄다 등산 사진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웃었거든요. 근데, 저도 그럴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이…요즘 벌써 숲과 산이 좋아져서요 ㅋㅋ
편안한 저녁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