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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Seoul, Inchon | 서울, 인천
창덕궁 후원 자유관람, 봄,가을만의 특권
2013. 10. 27. 01:21

바쁜 당신도 단풍을 즐길 권리가 있다
가까운 곳에서 만끽하는 가을

 

푹푹찌는 여름을 몰아내준 기특한 가을 바람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겨울 옷을 끄집어 내고 있다.

매년 기별만 비치고 사라지는 가을처럼, 많은이들이 기다리는 단풍놀이도 길어야 2주, 조금만 어영부영하면 놓치기 십상이다. 매년 올해는 꼭 가고 말리라를 다짐하지만, 여차 저차 한주만 미뤄지면 그새 아름다운 단풍은 낙엽이 되어 사라지고, 우리는 또다시 내년에는 꼭...을 중얼거리게 된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창덕궁 입구. 창덕궁은 궁궐중 단풍이 가장 늦게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매년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10월말에는 바쁜 일이 많이 생겨 그 시기를 놓쳐버리고 만다. 올해도 이것 저것 일이 겹치는게 웬지 불안하다. 아파트 단지내 단풍도 예쁘지만, 뭔가 단풍놀이를 왔다는 느낌이 부족하고, 단풍과 한옥의 조화를 좋아하는데, 동네 뒷산이나 공원에서 그런 운치를 기대하기는 여렵다. 이러다 또 단풍한번 제대로 감상 못하고 가을을 보내는건 아닐까? 초조해하던 어느날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도심에 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푸르른 나무들이 한옥과 멋드러지게 어울려있던 곳이 생각났던 것이다.
창덕궁 후원, 바로 궁궐 비밀의 정원이 그 해답. 모든 갈증을 해소시켜줄 곳이 서울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다.

 

 

 

 

 

비밀의 정원에는 혼자 들어갈 수 없답니다
자유관람 찬스를 누려라!

 

 

어이없게도 내가 후원이 가이드를 동행한 제한관람제로만 운영된다는 것을 안 것은 스위스 침공단 (^^;)인 오이군의 친구들을 통해서였다. 작년부터 가을마다 한국을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오이군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이 정원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는데, 정작 한국인인 나는 매우 오래전 한번 가 본지라 이곳을 미리 예약해하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작년 가을, 한무리의 스위스 친구들이 서울 시내투어를 나갔다가 저녁에 녹초가 되어 투덜 투덜 들어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후원 투어의 현장분이 남아있지 않아서 결국 후원을 못는 바람에 시간을 떼우느라 서울 시내를 발길 닿는대로 헤메다가 들어왔다고 한다. 며칠 안되는 짧은 여행기간 중에 이렇게 하루가 틀어져 버려서 어찌나 미안하던지. 고궁을 예약해야한다고는 생각도 못해봤기에 미리 찾아볼 생각도 안했건만, 여러분,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창덕궁 후원과 종묘는 입장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미리 예약을 해 놓도록 합시다. ^^

 

그리고, 화려한 단풍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을 여유롭게 보고 싶은 이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행사 기간에는 후원 자율관람이 가능하다는 사실. 하루 15번 회당 100명씩 입장 가능하던 인원을 200명으로 늘리고, 후원내 영화당, 존덕정, 취규정, 농산정 4개의 정자에 각 200권씩의 도서를 비치해 둔다고 하니, 아름다운 단풍이 떨어지는 후원에서 책과 함께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창덕궁 후원 온라인 예매 홈페이지

 

 

 

 

자연, 정복하지 말고 더불어서
자연을 담은 정원

 

그러고 보니 오이군에게 창덕궁은 소개해 준 적이 없는 듯하여 나도 십 몇년만에 오이군과 함께 창덕궁으로 향했다.

아직은 단풍에 살짝 이른 시기였지만 짙은 녹색이 빠져나가고 노란물이 들기 시작할 무렵의 연두색 나뭇잎이, 단풍이 든 몇몇 나무들과 어울려 화사한 매력이 있었다. 마치 봄이 되돌아 온것 같다고나 할까? 봄에 보던 그런 연두빛 나무에 새빨란 꽃이 핀 듯한 모습이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또박또박 잘 깎인 정원이나 자연을 축소해 놓은 모습의 일본식 정원을 상상하며 왔다가, 전혀 색다른 모습의 정원에 신기해하는 오이군. 

 

그렇다. 후원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한국의 색이 스며 있다. 

유럽식의 정원들도 아름답긴 하지만 보고 있으면 어딘가 로보트가 생각난다. 인위적으로 모양을 낸 버섯모양의 나무들과 열맞춰 심겨있는 꽃들. 재미있긴 하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 자연속의 휴식보다는 인간의 지구 정복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일본식 정원도 자연의 모습을 축소하여 담아 놓았다지만, 그 때문에 역시 인위적인 미니어쳐 마을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그런데, 후원을 보고 살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에는 어딘지 투박한 모습에 이것을 정원을이라 부르는가? 싶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정원이라기 보다는 작은 숲이었기 때문이다. 숲 사이에 길이 나 있고, 작은 정자들이 놓여 있다. 군데, 군데, 한옥들이 지어져 있는데, 그 주변에 심긴 나무들은 시골의 숲에서 보던 그것들과 다를바 없이 편안(?)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만히 앉아 주변을 바라보니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내가 산골에 들어와 있는지 서울 한복판에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자연을 정복하고,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와 그것들과 어울려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 정원의 모습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던 우리 선조들의 조화로운 마음이 아니었을까?

 

 

문.

한옥에 은밀한 매력을 더해주는 것이 바로 이 문이다. 열고, 열고, 또 열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양파같은 한옥. 반투명한 창호지에 비쳐, 언뜻 언뜻 보이는 내부의 실루엣. 사람도 이런 사람이 매력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곳에는 조금 특이한 문이 하나 있다. 후원 내의 불로문이 그것인데, 왕의 무병 장수를 기원하며 커다란 돌을 깎아 만든 문이라고 한다. 그 노력이 애틋하기도 하고, 부질없게도 느껴졌지만, 어느새 건강하게 오래 살아보겠다며 그 아래를 지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인간이란 그런존재인가보다.

 

 

이 연못을 보니 뭐가 떠오르나요?

가이드의 질문. 잠시 침묵. 그리곤, 어떤 외국인의 조심스러운 대답. 

남한과 북한을 합친 모습이요.

그렇다. 나라면 그냥 우리나라요! 라고 했을텐데, 남북한을 완전히 다른 나라로 보는 외국인들은 그렇게 대답했다. 뭔가 서글프다. 

 

 

 

 

 

창덕궁과 창경궁
궁궐 미로 속으로

 

 

후원관람을 마치고, 오이군과 둘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보러 들어왔다. 어릴적엔 관심 없이 봤던 궁들이 어쩌면 이렇게 멋지고, 화려한지. 그중에도 창경궁은 다른 궁들과 그 구조가 많이 달라 인상깊었다.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궁을 미로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 창경궁을 보니 그 영화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것 같았다. 다른 궁들은 모두 넓직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창경궁은 넋놓고 다니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좁은 골목이 많고, 비슷한 건물들이 다닥 다닥 붙어있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덕에 화려한 모습임에도 어딘가 서울 산동네의 골목길을 떠올리게 했다. 

 

 

아직도 화사함을 자랑하는 이름모를 꽃들과 막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잎, 그리고 화려한 단청이 한데 어우려져 가을의 궁궐은 그 자체로 축제장 같았다. 예전에는 기와가 검은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수많은 색들이 검은 기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돋보일 수 있었을까?

 

만약 올 가을 먼곳으로 단풍놀이를 가기에 시간이 벅차다면, 가까운 고궁 단풍놀이를 노려보자. 생각지도 못한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일상을 힘차게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하게 될테니.

 

 

 

       

등잔밑의 보석부터 줍기

여행일자 :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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