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나의 제주, 나의 한국!

대한민국, 너와의 짧았던 데이트


꿈같이 흘러가 버린 1년 6개월. 

이정도면 충분히 긴 시간이겠지 싶었는데, 여행하는 동안 시간이란 것은 참 상대적이다. 1년 6개월이 1분 6초처럼 흘러버렸다.

안동, 원주, 통영 그리고 제주. 그 어느 곳에서도 지루할 틈 없이 볼거리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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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하늘하늘 설레임으로 가득한 금능해변이, 저녁이되면 온통 감성에 젖은 노을로 물든다 (근데, 빈티지 느낌나게 보정했더니 뭔가 황사 같이 나왔...-_-;)


아~요리봐도 조리봐도 참 잘난 우리나라. 봄마다 황사가 조금 괴롭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찬찬히 둘러보니 구석구석 예쁘지 않은 곳이 없더라. 



이번 일주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곳은 제주였는데, 사실 제주가 생각보다 꽤 큰 섬이었기 때문이다. 가로로 끝과 끝까지 이동하려면 한라산을 빙 돌아가야 해서 무려 2시간이나 걸린다는. 근데, 오이군은 여행갈 때 이동시간 한시간 이상 넘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조금만 나가도 대자연이 펼쳐지는 스위스에서 나고 자란 부작용인가? 어쨌든 그 때문...아니 덕.분.에 제주에서 10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근데, 1년이면 1년이지 어정띠게 10개월은 또 뭔가 하시겠지만 원래 우리도 깔끔하게 육지 1년, 제주 1년, 총 2년의 전국 일주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내게 뭔가 새로운 일이 생겨서 일정을 줄여야만 하게 되었다. 이유는 다음 포스팅에 공개하기로 하고...어쨌든 그 때문에 충청, 전라쪽은 지내볼 기회가 없었는데, 다음에 한국에 돌아가거든 그쪽에서도 두어달 머물러 봐야지. 이렇게 또 다른 한국일주를 기약하며, 우리는 짐가방을 꾸렸다.



   온세상이 너와 나의 정원



여행하는 동안 육지에서도 제주에서도 도심보다는 시골에 거주지를 잡았는데, 그래서 가장 좋았던 것은 집 앞이 바로 낭만 쏟아지는 우리만의 바bar가 된다는 것이었다. ㅋㅋ

사실 도심이든 시골이든 일 끝나고 맥주 한잔하기 좋지 않은 저녁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하늘빛 청순한 바다를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이 있는 제주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심지어 좋아하지 않는 맥주에서도 생명수 같은 맛이 나더라는 ^^; (우리는 맥주의 맥아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드카 베이스의 달달한 것들을 마셔왔는데, 요즘들어 입맛이 더더욱 중장년층으로 내달리고 있는 나는 단것을 진짜 못먹겠더라...위스키 베이스의 하이볼이 딱 좋은데, 동네 편의점에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애주가의 하소연.)


 모래사장은 역시 맨발이 제맛!


바닷가 시골마을들에 사니 편의 시설이 먼 대신 일년에 한두번 큰맘 먹어야 볼 수 있었던 모래사장도 바로 집앞이다. 맨날 보면 무뎌지지 않냐고 물으시는데, 천만의 말씀! 매일 보는 바다지만 그 모습이 매일 달라 매일이 새로운 감동이다. 


도시에서만,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곳에서만 살겠다고 다짐하던 내가 신난다며 모래사장을 뛰고 있다.

지그재그로 모래위를 마구 뛰고 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옆에 어떤 아기가 함께 뛰고 있더라. 조금 머쓱해져서 얌전히 오이군 옆으로 돌아와 앉을까 하다가 에라이~모르겠다. 곧 떠날 제주, 좀 미쳐보이면 어떠랴! 어차피 두번 만날 사람들도 아닌데. 므하하하~ 그냥 신나게 발까락 사이로 부드럽게 부서지는 모래의 감촉을 즐겼다.



저렇게 쿨(?)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바로 이녀석들 덕분(?).


(광고 아닙니다. 협찬 아닙니다. 피땀흘려 번 쌈짓돈 건네주고 편의점에서 업어온 아이들입니다. ^^;; )



제주를 떠나기 한달 전부터 밀린 일거리를 정신 나간 듯 해치워야 했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노을과 해변을 집밖에서 즐길 여력이 없었는데, 문득 달력을 보니 떠날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더라. 

다행히 집 전망이 좋았지만 아아. 내가 이러려고 제주에 왔나. 자괴감이 들어서 급히 편의점과 치킨집을 거쳐 노을을 즐기러 나왔다.



요즘 거울 볼 때마다 점점 칙칙해져서 맘상하게 하는 내 얼굴이 (술병들고) 밖으로 나왔더니 환해졌다. 역시 사람은 가끔 바깥공기 마시며 정신줄을 살포시 놔줘야 한다.



   제눈에 안경


자유의 여신상이 맥주병 들고 있었던거 같은데...맞지? 카피 중 ^^


제주 다음에 가는 곳은 풍경사진을 촬영할 목적으로 가는 거라 몇달 고민하다 큰맘먹고 광각렌즈를 질렀는데, 에헤라 디야. 니가 돈 값을 하는구나. 이번생에 가져보지 못한 기럭지를 렌즈발로 승화하게 되었다. 테스트하면서 풍경은 물론 우리도 막 찍었는데, 어라? 웬 모르는 기다란 여자가 사진마다 웃고 있네. 그래서 요즘 인물사진에 심취해 있다. 특히 감자 위주로. ^^;; 오이군은 원래도 긴데, 머리가 심히 작아서 광각으로 찍어놓으니 사람같지 않고, 오히려 무섭더라. 모델리아니의 그림같이 찍힘 ^^;;

이녀석을 가족으로 영입하느라 나의 너덜너덜한 통장이 또 한번 치명타를 입었지만, 결과물을 보고나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푸하하. 진짜가 아니면 어떠라. 어차피 내 모습은 거울이나 사진 없으면 내가 보지도 못하는데...



거울은 오목거울, 렌즈는 광각렌즈.

사기인들 어떠하랴. 내마음만 행복하면

장땡이라 하더라.


어차피 내가 보는 이 세상이 남들에게 똑같아 보이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제눈에 안경이라 하였다. 

내눈에는 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하였다.

그거면 되었다.



   바다의 토끼



그리고 이건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의 마지막 노을. 

우리집 창밖 풍경은 늘 이러했다.

감사한 곳이었다. 



마지막 한달은 급히 일정에 끼워 넣는 바람에 찬찬히 집을 구할 시간이 없어서 작은 원룸 펜션에서 지내게 되었다. 한달살기용으로 렌트하는 집들보다는 아무래도 펜션이다보니 가격 쬐끔 더 비싸고, 좀 작았지만 어마어마한 통유리 창밖으로 늘 가슴설레이도록 푸르른 월령리 바다가 펼쳐졌다.

건물도 1년이 안된 새 건물이라 모든 것이 깨끗했고, 창밖 풍경이 내가 갖고 싶은 바로 딱! 그런 풍경이었다. 다음에 가족들과 제주에 내려간다면 꼭 다시 찾고 싶은 곳.

그리고 그 앞 바다에는 이녀석들이 살고 있었다.

바다의 토끼, 군소. 



대형 민달팽이 종류인 군소는 물속에서 보면 머리의 더듬이가 쫑긋해서 바다의 토끼라고도 불리고, 해조류를 미친듯이 먹어 치워서 물돼지라고도 불린다. 크기가 약 15-20cm에 달하는 이 녀석들이 월령리 바다에 가득했는데, 맛이 별로 없어서 아무도 안잡는다고 했다. 


재밌는 것은 이 녀석들의 알이다.

작년에 처음 제주에 와서 곽지해변에서 놀고 있는데, 물살에 비빔면 뭉치 같은 것이 쓸려 해변으로 올라온 것이 보였다. 처음엔 진짜 라면인줄 알고, 누가 디럽게 라면을 먹다 버리고 갔노. 하며 한숨을 쉬었는데, 생각해보니 라면이 바닷물에 불지 않고, 저렇게 가지런히 뭉쳐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이상해서 자세히 바라보니 저 얇은 튜브 같은 것 안에 작은 알갱이가 가득했다. 분명 어떤 녀석의 알인 듯 했다.

그 궁금증은 올해 월령으로 가서 풀리게 되었는데, 군소가 득실득실한 포구에 날이 좀 풀리자 갑자기 이 라면 뭉치들이 잔뜩 생긴거다. 오호~이게 늬들 알이었구나.

굵기가 딱 비빔면 같아서 건져내 고추장 양념해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기도 한데, 참았다. 쟤들도 따지고 보면 뉘집 자식들인데, 잡아먹는 다는 것이 탐탁치 않았고, 결정적으로 군소는 삶아 먹어도 알을 먹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 

목숨은 늬들 것도 내것도 다 소중하니까. ㅋㅋ


아직은 긴팔에 긴바지가 더 친근한 4월 초 어느 날


그런데, 우리 오이군. 4월에도 맨날 춥다고 스웨터를 껴입고 다니는데, 군소들을 보자 궁금하다고 움찔움찔하더니 차가운 봄바다로 뛰어들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속담이 있다며 감기 걸린다고 웨트 수트도 없는데, 가지 말라고 말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용감하게 고프로를 한손에 들고, 준비운동도 없이 한방에 첨벙! 매는 빨리 맞아야 한다며 뜸들이면 더 춥다고....

그...그래도 준비운동 쯤은 해주라. 심장이 놀랜다. -_-;;


큰 아들이 말을 참 안듣는다. 이래서 내가 애가 없지. 둘 셋이 저렇게 말 안들으면 난 감당이 안될 듯. ㅋ



   피날레


또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며 마지막 밤의 불꽃놀이. 근데, 바람이 뒤로 불고, 카메라 촛점 못맞추고, 불이 잘 안붙고 총채적 난국 ^^;;


마지막 밤이었다.

마침 연휴의 첫머리였던 토요일 밤이라서 여기저기 축제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펜션도 만실이라고 했다. 고소한 바베큐 냄새가 공기를 가득 매웠고, 사방에서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내 마음을 더욱 섭섭하게 했다. 

아~ 제주야, 한국아! 떠나려니 섭섭하구나!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많고, 우리의 인생은 한정되어 있어서 한곳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건만, 세상의 모든 곳이 너무 좋아서 매번 떠나기가 참 아쉽다. 특히 이번에 제주를 정리하면서 오이군과 함께한 한국생활 5년 6개월도 함께 정리하는거라 더욱 그랬다. 나의 조국이니 당연 종종 돌아오겠지만 인생의 또 한장이 끝나는 것 같아서 뭔가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제주에서 보낸 10개월을 기념하며! 올해는 우리의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이자 세계여행을 떠나는 해!


나의 인생의 챕터를 돌아보면 이렇다.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기 까지가 한 챕터, 

직장 때려치고 호주로 간 것이 두번째 챕터, 

오이군과 만나 결혼해 스위스에 살 던 것 까지가 세번째, 

오이군과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 네번째 

그리고 다섯번째는 세계 여기 저기의 길 위에서 써나갈 예정이다. 


별이 총총 맑은 밤하늘. 제주 역시 미세먼지의 안전지역이 아닌데, 이날은 웬지 밤하늘이 더없이 맑고 별이 밝았다. 감탄하며 보고 있는데, 비행기랑 헤깔릴만큼 환한 별똥별이 번쩍 지나갔다.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 던 것과 별 다를 바 없이 2-3개월 단위로 옮겨다닐 건데, 이제 나의 나라 한국, 오이군의 나라 스위스가 아닌 제 3의 국가에서 옮겨다닐 계획. 대부분의 국가에 무비자 또는 관광비자로 3개월 정도 머무를 수 있으므로 도시가 아니라 나라를 3개월 마다 옮겨야 하는 것이 다른 점이랄까. 근데, 일과 병행하며 틈틈히 구경을 다니는거라 한나라를 2-3개월만에 주말여행으로만 다 구경하기에는 무리고, 그냥 한 두도시에 머물며 그 주변을 구경하게 될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루트도 없고, 기간도 정해진바 없이 언제나 그래 왔든 일단 던져보는 계획. ㅋㅋ 


그러고 보니 지금 어릴 때 부터 꿈꾸던 세계여행을 시작하는 건데 그에 비해 참 덤덤하네? ㅋ

남들은 뭔가 준비할 것이 많던데, 우린 이미 살림도 처분한 상태고, 가방만 들고 옮기면 되는거라 딱히 준비할 것이 없어서 그런가. 그나마 못버리고 쟁여 놓고 있던 것들도 이번에 눈 질끈 감고 이별을 했더니 정말 가방이 간단해 졌다. 각자 바퀴달린 여행가방 하나에 배낭하나. (부모님 댁 상자에 쌓아 둔 것은 일단 생각 안하기로 한다. ㅋㅋ)



   여행의 끝


뿌우연 하늘 너머로 한라산이 잔잔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침일찍 양파를 몰고 제주항으로 향했다. 정들었던, 제주를 사랑하게 했던 모든 것들에게 안녕을 외치며 제주항으로 향했다. 


안녕, 군소!

안녕, 파란 바다!

안녕, 풍력발전기!

안녕, 당근케익!

안녕, 곽지해변!

안녕, 김녕바다!

안녕, 몬스터버거!

안녕, 웨이브버거!

안녕, 우도!

안녕, 가파도!

안녕, 비양도!

안녕, 청운아! (이건 오이군이)

안녕, 오드아이!

안녕, 일순이!

안녕, 벤!

안녕, 말들!

안녕, 따라비 오름, 다랑쉬 오름, 아부 오름!

안녕, 동백터널!

안녕, 겟무꽃!

안녕, 노을!

안녕, 노랑고기들!

안녕, 마노르블랑!

안녕, 헤이브로!

안녕, ....(너무 많아서 중략...)

안녕...

안녕, 제주도!


남들은 한달살기만 해도 한번쯤은 본다는 제주의 돌고래를 우리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가는 길목에 마중을 나와 주지 않을까 눈여겨 봤으나 아쉽게도 끝내 돌고래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Live long and prosper!


두둥. 10개월만에 돌아온 완도항. 정말 이렇게 끝인가요?


당당하게 전진하라!


뭔가 끝나는 것 같아 마구마구 감성적이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해상왕 장보고의 늠름한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뭐가 끝이란 말인가! 이제 시작이다! 당당하게 전진하라!

라고 그가 내게 외치는 것 같았다.

그래, 그가 활약했던 실크로드 뿐만아니라 전세계를 넘나들어 주겠어! 응원 감사합니다, 장보고 할아버지 ^^



서울로 가는 길에 엄마, 아빠가 애정하시는 해남을 거쳐갔는데, 제주와 마찬가지로 유채가 가득하고, 한들한들 청보리가 바다보다 아름다운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 남쪽 동네는 풍경이 어딜가도 어쩜 이렇게 온화하고 부드러울까.



서울로 올라오는 길. 제주 바다 위 노을 못본다 아쉬워 했더니 산 위로 지는 노을 또한 아름답구나. 하긴 이 세상 어느 곳의 노을이 아름답지 아니할까!



이렇게 우리의 전국일주는 끝이 났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멋진 풍경들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포스팅 몇번 못하고, 시간이 흘러 버렸다. 데일리 포스팅의 야무진 계획은 갈매기들과 멀리멀리 날아가버렸고, 수많은 추억을 담은 풍경들은 타임캡슐이 되어 외장하드에 잠들었다. 그래도 정말 좋았던 곳들의 이야기는 틈틈히 꺼내어 들려드릴 수 있기를. 부모님께서 좋은 것은 늘 나누라 하셨으니. ^^;


다음 이야기는 새로운 여행지에서 이어집니다.

그동안 전국일주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도 모두 꿈을 이루며 사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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