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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Jeju | 제주도
태풍 차바가 쓸고 지나간 제주 협재해변
2016. 10. 6. 09:08

태풍의 한가운데서 보낸 하룻 밤
내 이쁜 협재는 어디로 갔나

 

태풍 차바가 한국의 남부를 아프게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저희는 지금 제주에 살고 있어서 그 재해의 현장에서 태풍을 겪었네요.

한국을 매년 괴롭히는 태풍, 어릴적 부터 익히 봐 온지라 어느정도는 익숙(?)하다 느꼈는데, 이번 제주살이 중에 만난 태풍은 그 익숙함을 송두리째 뽑아가 버렸습니다. 여지껏 서울살며 겪어왔던 태풍은 태풍이라는 이름도 무색한 그냥 센 바람이었더라고요. 정말 집이 통째로 뽑혀 날아가 저어~먼 오즈에 가 있다고 할 지라도 놀랍지 않을 엄청난 위력이었습니다. 이게 중급 태풍이었다는데, 대형 태풍은 어휴. 상상도 안가네요.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 제주 지인들의 소식이나 뉴스를 살펴보니 제가 살고 있는 협재쪽은 피해가 그나마 적은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서귀포랑 성산쪽, 제주시의 하천 근처는 범람으로 차들이 쓸려 다니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해요.

 

 

 

 

 

 

한달살기 중 겪은 무시무시한 가을 태풍

 

저희는 현재 협재 근처의 5층 건물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제 오이군이 이번 주중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싶다고 해서 투어를 예약하며 날씨를 보던 중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바람이 센 녀석이란 것과 제주를 직접 때리고 갈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다이빙은 취소를 했으나 그 '바람이 세다'는 부분은 그다지 눈여겨 보질 않았습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사는 동안 태풍이 세다고 미디어에서 하도 호들갑을 떨어서 창문에 테이프, 신문지 붙이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매번 창문 좀 덜컥거리고, 비 좀 뿌리다가 별일 없이 지나가고는 했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죠. 

 

밤새 바람에 얻어 맞고 납작하게 누운 잔디 위에 처량하게 떨어져 버린 방충망

 

오전에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협재 바다는 가슴 설레이게 푸르고 아름다왔어요. 오후에 빵사러 갈 때까지만 해도 구름이 좀 있었지만 협재는 여전히 흐린 날씨속에서도 그 청순한 빛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문이나 잘 닫아 주자며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밤을 맞이했습니다.

 

 

 

태풍의 서막

 

저녁 무렵부터 바람이 좀 불기 시작하더니 밤 9시쯤 부터 바람이 꽤나 세졌습니다. 그때도 별로 태풍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시, 11시쯤 되자 창문이 부서질 듯 덜컥거리고, 현관 틈에서 굉음을 내며, 집 전체가 우우웅 울어대는 것이 아니겠어요. 딱 서울에 살 때 겪었던 태풍의 바람이었습니다. 예보에 따르면 아직 제주로 태풍이 상륙했을리가 없는데, 왜 이렇게 빨리 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는 컴퓨터를 투닥거렸고, 오이군은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귀곡산장

 

그런데, 12시쯤 되자 창문 덜컹거리는 것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덜컹거린다는 표현은 약하고, 여러명의 사람이 밖에서 주먹으로 창문을 계속 쾅쾅 치는 것 같았달까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앞 베란다로 나가보았더니 그때 창밖의 방충망이 저절로 스르르륵 열리며 50cm쯤 이동하는게 보입니다. 흐익~. 소름이 쪼옥 끼칩니다. 저희집 4층이거든요. -_-; 하얀 옷입고, 머리 긴 여자가 창문열고 길물어 볼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데, 가만히 보니 방충망 두개가 지멋대로 완전히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네요. 평소에는 제가 좀 열어 보려고 해도 뻑뻑해서 잘 안열리는 애들인데, 바람의 힘이 저보다 훨씬 센가봅니다. 제가 한 팔힘하는데도 말이죠. 무섭다라고 느끼고 있는데, 그때 꺼놨던 형광등이 번쩍 켜졌습니다. 흐억. 혼자 펄쩍 뛰며 거실을 두리번 거렸는데, 당연히 아무도 없죠. 힝...정말 오싹합니다.

 

 

 

시한폭탄

 

그제서야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저희는 한달살기 중 아닙니까. 물론 두달씩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렌트 하우스에 테이프 같은 것은 없고, 저도 테이프를 들고 이사를 다니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신문지라도 적셔 붙여보려했는데, 방랑자의 집에 신문지가 있을리가 만무하죠. 그럼 비닐봉지라도 잘라 펴서 붙여보자며 비닐을 가지고 베란다로 갔는데, 창문에 손을 대는 순간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안쪽으로 팽팽하게 부푼 유리. 그런거 처음 봤어요. 창틀이 미미하게 휘어지면서 창유리가 집 안쪽으로 곧 폭발할 듯 팽팽하게 부불어 있습니다. 순간 창문가에서 떨어져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닐 붙인다고 물뿌리고 괜히 자극주면 창문이 터져버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창문은 운명에 맡겼습니다. 최대한 틈 없이 창을 닫고, 고리 잠그고, 거실에서 베란다로 나가는 창문도 다 닫고, 뒷 베란다도 마찬가지. 온집안을 꼭꼭 걸어 잠그고 저는 화장실 앞, 창문에서 가장 먼 곳에 쭈그리고 앉아서 스맛폰을 투닥거렸습니다. 오이군은 신기하게 그렇게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코골며 신나게 자네요. 재능입니다. 참, 사진백업한 외장하드랑 카메라, 메모리 등등 지퍼백에 두번씩 싸서 집 안쪽에 숨겼어요. 만약 창문 터져서 걔들 물맞으면 걔들과 함께 제 심장도 수장될지 몰라요.

 

 

 

내 인생의 기네스 북

 

12시를 기점으로 저는 평생 본적없는 최고의 강풍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매 시각 갱신됩니다. 계속 세지더라고요. 언제 지나가나 싶도록 길고 긴 끝나지 않는 강풍 공격. 창밖으로 어슴푸레 빗줄기가 불규칙하게 사방을 때리는게 보입니다. 비도 주륵 주륵 오는 것이 아니라 소방차 물대포 처럼 불규칙한 리듬으로 쫙쫙 끼얹듯이 오네요. 바람소리가 너무 커서 천둥소리는 안들리는데, 번쩍번쩍 하는 것을 보니 천둥 번개도 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천둥소리를 커버할만큼 격한 바람과 빗소리. 건물이 쿵쿵 거리는 소리.

 

 

 

잠자는 기계

 

3시쯤 되니 창문 뿐만 아니라 집 벽도 쿵쿵 얻어 맞는 듯 굉음을 내며 진동이 와요. 건물 헐려고, 크레인에 쇠공 매달아서 때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예보에 따르면 이때 즈음이 태풍이 섬으로 상륙하는 시간이었으니 드디어 올것이 왔나봅니다. 실제로 3시-4시 반 정도에 제주 성산쪽에 중심부가 지나갔다고 하더군요. 

하도 심하게 집이 진동을 해서 안방 창문 근처에서 자고 있는 오이군이 걱정됩니다. 안방 창밖은 베란다지만 그래도 베란다 창문 나가면 안쪽 창문도 못버티고 바로 다 터질 것 같더라고요. 오이군을 최대한 창문에서 먼 벽쪽으로 굴리려고 했더니 자는데 깨운다고 짜증내네요. 세상에. 니가 사람이니? 대체 어떻게 이렇게 잘 수 있는지 놀랍고 놀랍습니다. -_-;

 

그러나 결국은 저도 침대에 누웠습니다. 자다 깬 오이군이 지금 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그냥 자다 창문이 터지거든 나오라고 해서 강제로 침대로 끌려갔습니다. (음...?)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긴 한데, 뭔가 이대로 자기는 많이 불안합니다. 

 

눈을 떠보니 저는 황량한 툰드라의 숲에 있습니다. 바위와 이끼로 뒤덮힌 들판에 반쯤 불탄 나무들이 굉음을 내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딛힙니다. 잠시 여기가 어딘지 갈피를 못잡다가 생각하니 당연히 여기는 옐로우나이프입니다. 저희가 지난주까지 2주간 캐나다의 옐로우나이프에 있었거든요. 아. 당연하다고 느끼며 들판을 걷는데, 대낮이었던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며 오로라가 나타납니다. 근데, 지난주에 봤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뭔가 무섭고 위협적인 모습이예요.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와 우리를 뒤덮어 버릴 것 같은...소리도 나네요. 우르릉 쾅쾅 굉음을 내며 하늘에서 오로라가 무너져 내립니다. 너무 놀래서 흐헉하며 눈을 떴더니 꿈이군요. 집이 지진온 듯 진동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바깥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납니다. 드디어 올것이 왔나? 창문이 터졌나보다며 벌떡 일어나려는데, 마음과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네요.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내가 안자고 대기하려고 했는데...자면 대처를 못한다니까...

 

 

 

18호 태풍 차바가 남긴 상처

 

 

아침에 창밖의 화창한 햇살에 밀려 눈을 떴습니다.

시간은 오전 10시. 허헉 소리를 내며 거실로 달려 나왔는데, 멀쩡하네요. 그 우당탕 소리는 뭔지 모르겠지만 저희 집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창밖에 푸른 하늘이 어이가 없어서 베란다 창을 열었는데, 아래를 보니 방충망이 하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것도 저희 집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저흰 두개 다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치 밀려있는 방충망을 다시 닫으려는데 뻑뻑해서 잘 안닫혀요. 헐. 대체 바람은 이걸 어떻게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한거야.

 

 

이번엔 뒷쪽 베란다로 가 봤더니 뭐가 잔뜩 떨어져 있습니다. 내려가 봤더니 아파트 지붕이었요. 지붕의 일부가 뜯겨 내려가 옥상 나무 난간과 함께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 아래 늘 차가 주차되어 있는데...제가 늦게 일어나서 못봤지만 아래 주차 공간상 두대는 저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침에 얼마나 암담했을까요. ㅜ_ㅜ

 

 

바람이 제일 무식하게 때렸던 건물 앞쪽으로 가 봤더니 헉. 꼭대기 층 모서리 집이 박살이 나 있었습니다. 앞 베란다 전체 창문이 다 깨졌고, 그 위의 지붕까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떨어져 나가버렸습니다. 베란다 공간이 테라스처럼 변해버린...

진짜 너무하네요. 저기 모서리라 전망 좋겠다며 제가 부러워 하던 집이라 더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아파트는 근처에서 유일한 높은 건물이라 바람을 더 격하게 맞은 듯 합니다. 5층밖에 안되지만 협재근처에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거든요. 게다가 아파트 옥상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없는데도 비잉 둘러 나무 펜스가 쳐져 있습니다. 갈 수도 없는 곳에 펜스를 왜 둘러놨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사방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반쯤 부서진 채 매달려 있어서 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아슬아슬 익스트림 스포츠가 됐습니다. 남은 것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 아파트 현관에서 나갈때 최대한 달려나가야 하거든요. -_-; 아직도 보수가 안된 듯. 

 

대롱 대롱 매달려 바람에 흔들 흔들하는 나무 펜스. 6층 건물 옥상인데, 지나가는데 떨어질 까봐 불안 불안

 

아파트 앞에 새로 짓고 있던 카페입니다. 완공된 것 같았는데, 장사 시작하기도 전해 이런 난리가.

테이블 의자는 물론, 세탁기, 철제 가구들까지 사방에 흩어져 쓰러져 있었습니다. 여긴 수해가 나지도 않았는데, 순수한 바람의 힘으로 철제 가구들이 밀려다녔더군요. 

 

 

마을 길이 사라졌습니다. 온통 부러진 나뭇 가지로 가득.

 

 

아아...밭들이 다 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쁘게 열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ㅜ_ㅜ

 

 

부러진 나뭇가지 위로 얄미우리만치 파란 하늘이 빛납니다. 야속하네요. 습하고 덥기까지 해요. 다들 복구하려면 힘들텐데, 땀나게 스리. -_-;

 

 

해변쪽은 피해가 더 심할텐데 싶어 가보니 여기 저기 바닥에 유리 조각이 가득합니다.

 

 

으아. 이뻐서 왔다갔다하며 눈여겨 보던 집인데, 2층에 유리 펜스가 전부 떨어져 박살이 났어요.

 

 

집 2층 테라스를 비잉 둘러 쳐져있던 건데 거의 남아있지를 않네요. 

 

 

헉. 부러진 야자수. 뽑히는 것은 그렇다 치는데, 부러지기까지. 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이집 정원수였던 모양인데, 바람 방향이 집쪽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부러져서 집위로 떨어졌더라면 피해가 더 컸을텐데 말입니다.

 

 

여기 저기 자동차 유리의 잔재들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여기 저기 부러져 날아온 것들에 맞아 유리 깨진 차들이 많은가봅니다.

 

 

어떤집은 대문이 빠져 쓰러져 버렸습니다.

 

 

 

작은 바닷가의 집들 중에는 지붕이 날아간 곳이 많네요. 그런데, 신기하게 돌담은 전부 멀쩡합니다. 얼기설기 쌓아 놓아서 발로 툭 차면 무너질 것 같은데, 바람에는 건재합니다. 몰랐는데, 오랜세월 선조들이 이어온 지혜의 산물이었던가봅니다.

 

 

 

 

 

카라반 하우스 야외 화장실도 처참하게. -_-;
이 와중에 정화조로 연결된 호스는 어떻게 된걸까가 궁금.

 

 

그리고, 가장 놀랐던 것은 협재바다의 색깔입니다. 완전한 흑탕물.

 

 

평소에 이런 곳인거 아시죠. 흰모래와 검은 돌이 그림같은 곳인데, 대체 이 붉은 흙들은 어디에서 쓸려와 바다를 이지경으로 만들었을까요.

 

 

씁쓸하네요.

오늘 생긴 걱정...버리고 싶은데, 버리기엔 충격이 너무 큽니다. 

 

 

보고 또 봐도 믿기지 않는 물색. 

수면에서도 고기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훤히 보이는 곳인데, 저렇게 된장국이 될 줄이야. 하루 전날 이 앞을 지나며 흐린 날에도 물색이 이쁘다며 감탄했는데, 정말 기분이 너무 착찹하더군요.

 

 

저기가 제주에서 가장 사랑받는다는 협재해변입니다. 제주 어디를 가도 푸른 빛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쯤 바다가 정상으로 돌아올까요.

 

 

이미 시간이 11시를 넘어가고 있어서 열심히 복구가 진행중인데도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그나마 여긴 범람할 하천이 없어서 그렇게 비가 쏟아졌음에도 땅이 거의 말라가서 복구가 수월한 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하천 범람으로 수해까지 났던 다른 지역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모를 상황이라던데. 

 

우울한 입맛을 쩝쩝 다시며 집으로 발결음을 돌리는데, 바닥에 오이군이 왔다갔다 하며 탐냈던 호박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길가에까지 뻗어나와 탐스럽고, 이쁘게 매달려 있어서 오이군이 서리해가겠다며 탐냈거든요 ^^; 그런데, 그 누구도 먹을 수 없도록 바닥에서 생을 마감했네요. 가여운 호박.

 

 

앗. 그런데, 호박 옆에 다른 녀석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참새들이 바람에 휩쓸려 다친 모양이예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습니다. 어릴적에 병아리 키울 때 녀석들이 아프면 저렇게 잠이 들다 죽는 것을 봤기 때문에 녀석이 심하게 다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어쩔줄 모르며 옆에 앉아 있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뭘 보나 쳐다봅니다. 그러더니 그냥 자는거 아닌가? 하며 손가락으로 녀석을 툭 치는 거예요. 놀랜 참새가 마지막 에너지를 짜내어 푸드득.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릴 새도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넘 놀래서 '참새가 왜 여기서 잠을 자겠어요. 다친거잖아요!' 소리치고보니 여기다 이 아이를 그냥 놓고 갈 수가 없습니다. 누가 와서 또 건드릴까봐 조심스레 안아들고 집으로 데려오는데, 바로 그때 그 옆에 다른 참새 한마리가 눈에 띄네요. 그러나 녀석은 이미 간밤에 생을 마감한 듯 합니다. 차갑게 식어 처량하게 누워 있습니다. ㅜ_ㅜ

 

 

들어올리자 잠시 눈을 떴던 녀석이 저항도 하지 않고, 다시 잠이 듭니다. 추운지 부르르 떨었는데, 손 안에 있으니 떨림이 멈추고 그냥 계속 자더라고요. 손바닥에 느껴지는 약하고 작은 심장 박동. 희미한 호흡. 녀석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어쨌든 일단 아저씨 때문에 흥분해서 애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이군이 뭘 가져오는 걸까 보더니 놀라서 순식간에 침대를 만들어 옵니다. 수건 넣으라니까 자기 면 반바지가 더 따뜻하다며 본인의 잠옷을 넣어서요. 

천같은 것은 무거울까봐 휴지로 살짝 덮어줬는데...결국 20분도 버티지를 못했어요. 예쁜 울음소리를 두어번 내더니 조용히 들썩이던 가슴팍이 움직임을 멈춥니다.

 

 

에효. 동물들은 태풍 같은 것 오면 잘 숨어 피하는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네요. 태풍은 사람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끼치지만 동물들에게도 생명을 위협하는 재해였군요. 아까 그 자리로 가서 옆에 이미 긴 잠에 들어있었던 녀석을 거둬와 함께 뒷산에 묻어줬습니다. 둘이 함께 있었던 것을 보니 커플이나 가족인 것 같아서요. 동네 고양이가 신나게 가져갈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뭐 그것 또한 자연의 섭리이니 하는 수 없고요. 그나저나 길고양이들은 괜찮은 건지. ㅜ_ㅜ

 

 

 

 

 

조촐한 장례식을 마치고, 배가 고파서 음식점으로 향합니다. 길에는 보수공사가 한창입니다. 제일 바쁜 것은 인터넷 회사 케이블 보수공사 하는 사람들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저기 얼기설기 이어놓은 케이블들이 이런 강풍을 버텨낼 리가 없지요. 제주 전역에서 신고가 빗발칠텐데, 다 가서 고쳐주려면 하루로는 택도 없겠네요. 

어쨌든 밤에 잠도 하나도 못자고, 정신적으로도 지쳐 있어서 밥은 사먹자며 음식점에 갔는데...

 

 

음식점도 대부분 문을 닫았어요.

전기 안들어 오는 집. 일부가 부서진 집. 재료 공급을 못받은 집.

ㅠ_ㅠ

 

한국에 살면서 매년 보는 태풍이지만 이렇게 태풍이 직격탄으로 때리고 간 지역에는 처음 있어봤는데, 정말 어마무시 하군요. 그런데, 협재를 포함한 제주 서쪽 지역은 제주내에서도 피해가 가장 적은 지역이라 뉴스에는 언급도 되지 않을 정도 입니다. 바다에서 걸어서 5분 걸리는 곳에 사는데, 어떻게 해일이 안올라 왔는지 그저 감사할 뿐. 제주시, 성산, 서귀포와 부산과 울산등 남해안 곳곳에 더 큰 피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피해 입으신 분들 어서 복구가 이루어 져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