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꿀같았던 일상정리

꽃향기 가득했던 그곳의 기억

그날 나는 사랑에 빠졌다


봄바람 가득한 3월의 마지막 날 밤 도착한 통영. 

오이군이 한국을 비운 한달동안 나혼자 머물자고 숙소를 빌리기가 아까와서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다 오랜만에 집이라는 곳이 생기는 날이었다. 겨우 두달 머무는데 거길 집이라 부를 수 있냐 하겠지만, 나갔다가 그날 잘 곳을 찾아헤메지 않고 느긋하게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든 집이 된다. 그 기간이 얼마만큼이든 크기가 어떻든간에 말이다.



한달은 짧지만 또 빨빨대고 다니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해서 나는 해외취재와 국내취재 몇곳을 다녀오고, 오랜만에 부모님댁에서 아내가 아닌 딸로 돌아가 응석도 부려봤으며, 친구 남편이 출장간 틈을 타 친구 집에서 학창시절로 돌아가 수다로 밤을 새우는 달콤한 시간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두주는 십여년만에 나홀로 배낭여행을 떠나 남도 이곳 저곳을 유랑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들에 평범했던 그때 그 시절의 순간들이 참 소중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 또 평범하게 보내고 있는 이 순간이 언젠가는 소중하고 그리운 순간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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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밤 만난 통영 수로위의 야경


통영에 도착한 날은 전남 청산도에서 오후 1시 배를 타고 출발했는데, 통영 터미널에 도착하니 밤 9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완도에서 통영까지 직선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데, 연결 교통편이 없어서 이리저리 돌아서 오다보니 하루를 이동으로 다 보내버렸다. 원래는 배낭여행의 마무리답게 통영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두달간의 보금자리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8시간 넘게 배타고, 대기하고, 버스타고를 반복했더니 온몸이 뻐근하고, 당이 떨어져 손가락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터미널 앞에 대기하던 택시에 올라타고 있더라. 

아...나이는 못속이나보다. 이제 슬슬 배낭여행 접을때가 됬나보다. 그래도 내가 느끼는 여행의 참맛은 배낭여행인걸 어쩌나.


우리가 두달간 묶을 숙소는 통영 수로변, 충무교 근처에 있었다. 나는 집 위치를 자세히 설명할 능력이 안돼서 (나도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집이라) 택시기사에게 충무교 건너기 전에 내려달라고 말했는데, 아저씨가 충무교를 못알아 듣는다. 


충무교요, 충무교. 그 통영 수로에 가면 다리가 두개 있는데 작은게 충무교거든요.

태어나서 통영이라는 곳에 처음 와보는 주제에 통영 토박이같아보이는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네이버 지도를 열심히 힐끔거리며 아는 척을 했다.


뭐요? 뭔교...? 아~그 충무다리?

츄리닝바람에 택시를 몰고 있어서 정말 택시기사 맞나 의심스러워보이는 아저씨가 대답했다.


여기 사람들은 충무다리라고 하나부지...?

혼자 열심히 GPS를 힐끔거리며 제대로 가고 있는건가 눈알을 굴리고 있는데, 아저씨가 다시 물으신다. 


충무다리 왔는데, 이제 어데로 가요?

흠...생각을 못했다. 수로변길은 한강변길 처럼 다리 윗쪽과 연결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집들이 다리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거다. 저 아래까지 걸어서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차로는 어떻게 가는 지 몰라서 걍 대략 세울 수 있는 곳에 세워달라고 했다. GPS찍고, 어쩌고 하는게 더 복잡해 보여서...

결국 택시는 건너지 말아야할 다리를 건너버렸고, 나는 무거운 가방과 함께 터덜 터덜 다리를 되건너 왔다. 걸으면서 보니 아저씨가 충무교를 왜 동네 징검다리부르듯 충무다리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충무교는 차가 한대 지나갈 때마다 진동이 엄청나서 살짝 오버하자면 위아래로 흔들리다 하늘로 튕겨버릴 것 같은 작은 다리였던 것이다. 보행로도 좁아서 가방이 차로로 떨어지기라도 할까 싶어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를 무장해제시킨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이게 뭔가?

여기가 바로 통영이구나.

통영 수로 위로 아름답게 빛나는 불빛과 통영대교의 반영이 단번에 나를 사로잡아버렸다. 밤중에 홀로 낯선 동네의 다리 위에 있다는 두려움도 무거운 배낭의 무게감도 발밑에 흐르는 바닷물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그렇게 한참을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통영과 사랑에 빠졌다.



하늘 하늘 벚꽃잎의 환영인사


두달간의 숙소는 언덕비탈 단독주택들 사이에 우뚝 솟은 오피스텔이라 나름 전망이 좋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앞에 수로가 보이고, 물건너 저편으로 화사하게 벚꽃이 피어 있었으며, 그 사이로 사찰이 하나 보였다. 

주택가에 웬 사찰이지? 궁금한건 못참아. 오늘은 동네 구경이나 좀 해야겠다.

31일까지라고 당당하게 적혀있는 원고독촉메일을 읽으면서도 나는 눈 앞에 보이는 사찰이 궁금해 컴퓨터 화면을 과감하게 꺼버리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이날 밤엔 다음날 아침 동이 틀때까지 원고를 붙들고 씨름을 해야했다. -_-; )



밤중에 로맨틱한 야경을 자랑하던 다리를 건너 맞은편 미수동으로 향했다. 

남도에는 벚꽃이 참 많다. 

전남을 돌아다닐때도 길가의 가로수는 죄다 벚나무더니 경남에 와도 별다르지 않다. 진해 볒꽃축제를 가야하나 고민했었는데, 막상 통영에 오니 벚꽃을 찾아 어디론가 갈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 도시며, 산이며, 언덕이며 온통 벚나무 천지.




충무교아래 벚꽃이 가득 피어 있길래 잠시 구경을 내려왔더니 그 아래 정자가 있었는데, 어라 웬 책가방이 이렇게...



책가방의 주인공은 바로 요 옆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달려나온 듯한 아이들. 삼삼오오 벚나무에 올라 앉아 봄을 즐기고 있다.

세상에. 이게 얼마만에 보는 풍경인가. 

서울에 사는 4년 동안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파트 단지내에 커다란 놀이터가 몇개나 있었건만 언제나 찾는이 없는 그네만 처량하게 흔들릴 뿐.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대신 쓸쓸하게 구르고 있는 맥주캔과 담배꽁초들만 그 밑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엔 아이들이 살지 않나 싶었는데, 어쩌다 등교시간에 아파트를 나서게 되면 학교가는 아이들이 잔뜩이다. 아이들이 없는게 아니라 모두 학교 끝나고, 학원이다, 방과후 교실이다 무언가에 메여 바깥에서 뛰어놀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벚꽃이 환하게 핀 나무 아래서 신나게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내 기억속에 통영이 뭔가 여유롭고,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이 아이들도 한몫한 듯하다.



그리고 뭔가 칙칙한 느낌이 든다 생각했던 다리밑엔 이렇게 운치 있게 누가 소파를 갖가 놓기까지 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는 공간인 듯. 나도 반들 반들 광이 나도록 헤어진 소파위에 슬쩍 앉아보니 방금 전까지 칙칙하다 느껴졌던 다리밑이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피한잔 들고 오는 건데...



낡은 소파에 앉아 봄바람을 느껴보니 옛날 다리밑에 거지들이 현대의 일상에 쫒기는 사람들보다 가난했을 지언정 은근 더 운치있는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생각들을 사방에 뿌리며 사찰에 도착했다.



서광사라 불리는 이 사찰은 가까이서 보니 콘크리트로 지어져 단청만 칠한 아주 현대적인 3층짜리 건물이었다. 암자가 있는 옥상층으로 올라가면 전망이 조금 있을 법도 했는데, 닫혀있었던 건물 현관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 듯 해서 포기했다. 아랫층에서 보면 그냥 네모 반듯한 건물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어 딱히 전망도 없고, 정말 종교적인 역할만 하는 절인 듯 하다.



시큰둥해져서 건물 주변을 뱀돌다가 절 대신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을 발견했으니 바로 이 자주빛의 커다란 꽃이 핀 벚나무가 그것이었다. 한참 보다보니 이게 벚꽃인지조차도 확실치가 않다. 꽃크기는 일반 벚꽃의 두배나 되고, 색도 자주빛이 도는 신기한 녀석이다. 서광사 뒷뜰에는 이 특이한 벚나무가 세그루 심겨있었다.



평범하다 느껴졌던 사찰 건물도 꽃과 함께 담으니 포토제닉이 된다. 꽃의 마법이다. 꽃은 함께하는 대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 자신도 아름답게 빛날 뿐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것들의 가치도 높여주는 꽃.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혼자 잘나려고 아둥바둥하지 말고, 다른 이들의 가치도 함께 높여줄줄 아는 삶. 

(오이군없이 혼자 돌아다니니 자꾸 도닦는 소리 하게 된다. 여보 빨리와. 나 신선할머니 되서 날아가겠어!)



다시 둘


나의 외침을 들었는지 어쨌는지 다음날 오이군이 도착했다. ^^;

정렬적인 붉은 장미꽃 한다발을 품에 안고서.

사실 나는 그가 장미꽃을 품에 안고 왔는지는 잘 모른다. 오이군이 도착했을때 수퍼마켓에 가 있는 바람에 집 현관문 번호를 모르는 오이군이 문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는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달려왔기 때문. 한술 더떠서 그가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뒤에 매달고 오던 자전거를 잃어버렸다고 만우절 개그를 하는 바람에 얼마나 마음 졸이며 달려왔던지. -_-; 아니 왜 4월 2일에 도착하면서 1일날 끝마쳤어야 할 개그를 하는거냐고. 그것도 생각만해도 대형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농담을...



 보통 렌트하우스에 꽃병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일단 급한대로... ^^;


어쨌든 십년이 지나도 언제나 한결같이 꽃을 선물하는 낭만적인 내 남편.

고맙고, 예쁜 사람.

하나 둘 늘어가는 주름살이 하회탈 처럼 위로 싱긋 올라간 웃음 주름만 생기도록 늘 웃긴 마누라가 되어 줄께. 언제나 우리만 공감하고 자지러지는 별나라 개그로 ^^



소소한 통영의 일상 풍경


통영에 사는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집 앞이 바로 바다라는 점이었다.

사실 수로는 바다라기 보다는 강줄기 같은 느낌이었지만 바람불면 집안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다 냄새가 일상을 여행으로 만들어 주었다.

재밌는 것은 배가 많이 다녀서 별것 없을 것 같은 이곳에 늘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냥 지방천 같은 느낌인데, 여기서 굴, 조개 양식도 하고, 어부들이 고기도 잡는다. 마치 안양천에서 굴양식하는 느낌이랄까.



 집앞에는 참새대신 갈매기가 지저...꽥꽥거린다



조금만 저쪽으로 돌아가면 커다란 배가 다니지 않고, 더 깨끗한 갯바위도 나오는데, 왜 차다니고, 배다녀서 시끄러운 (그래서 고기도 별로 없는) 항구 주변에 이렇게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은건지. 매번 뭐 잡으셨냐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마리도 못잡았어요. 인데 말이다. ^^;



서호시장 횟골목 맞은편에는 통영항으로 들어오는 그날 그날의 신선한 해산물과 생선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보고 있노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해산물들이 포획되는데, 그게 전부 팔려서 어디론가 간다는 것이 신기하다. 바다 생물들은 유통기한도 그리 길지 않은데, 매일 잡히는 저 엄청난 양이 모두 소비가 된다는 말인가? 음식이라지만 저것들도 생명인데, 필요이상으로 다 소비하지도 못할 양을 과하게 잡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어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통영에는 벚꽃 이외에도 동백과 종려나무가 많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보기드문 동백은 남도 어딜 가도 많은데, 나무를 동글 동글하게 다듬어 놓아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책 그림속에 나왔던 여왕의 정원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통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던 종려나무. 통영은 사방에 횟집이 늘어서 있고, 사찰이 많아서 매우 한국적인 느낌인데, 거기에 외국 또는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종려나무가 주르륵 늘어서 있다. 한국색과 이국적인 식물들이 오묘하게 섞여있는 통영의 매력.



그리고 햇살은 또 어찌나 밝은지. 맑은 날은 서울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화사하게 빛나는 햇살이 남국의 어느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진주에 살고 있는 친한동생이 놀러와서는 진주도 이렇다며 남쪽의 햇살은 늘 이렇게 화사하게 밝다고 했다. 햇살만은 캘리포니아라고. 그녀도 나도 오이군도 가본적 없는 캘리포니아건만 우리는 모두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



온동네가 우리의 식탁


 착량묘 입구, 외삼문


통영에 더욱 빠져들수 밖에 없었던데는 계절도 한목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싱그럽게 피어오르는 봄에 도착해서 더위가 발목 잡기 바로 전 초여름까지 머물렀으니 모든게 좋아보일 수 밖에 없겠다. 그 계절을 잘 이용해 우리는 종종 편의점 도시락을 사들고 점심 나들이를 다녔다. 전에 포스팅했던 남망산을 비롯해서 이순신공원, 통영항, 수로변 그리고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착량묘까지.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이 순국하신 다음해에 공과 함께했던 수군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세운 사당이다. 처음엔 초가집으로 세웠던 것을 19세기 말에 부임한 통제사가 기와집으로 고쳐짓고 착량묘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이런 의미 깊은 곳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볼 것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곳을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덕분에 우리는 설렁설렁 걸어 이곳에 가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 고요하고 조용한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당안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사당 앞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사당 바깥채에 앉아 평화로운 시간을 음미하곤 했다



착량묘에 가면 라이브 수채화를 한폭 볼 수 있는데, 안뜰에 서서 문 바깥쪽을 내다보면 시끄러운 도시의 번잡함은 모두 가려지고, 붉은 동백과 그 뒤로 통영 수로의 푸른 물만 보인다. 가끔 여기서 나룻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있어 한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이렇게 보면 마치 저 문밖이 바로 바다일 것만 같은데...



 사실 문밖은 계단 ^^;



한들 한들 양귀비의 배웅


 통영 수로주변과 미륵도 오른쪽 해안도로는 자전거 타기에 좋다


통영의 두달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개인적인 일로 거의 매주 서울에 올라가야 했고, 해외 취재도 몇번 있었는데다가, 통영에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고, 들어가면 하루를 잡아먹는 작은 섬들도 잔뜩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결국 보고자 했던 것의 절반도 다 못보고 온 듯 하다. 한달 더 머물러 볼까 싶었으나 대한민국, 나름 큰 나라라서 다음 여행지가 또 손짓을 한다. 그래.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라도 아니고, 몇년 후 또 찾아오면 되지. 그때는 이곳이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벚꽃잎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했는데, 가는 길은 고혹적인 새빨간 양귀비가 배웅을 해 주었다.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끝맺는 통영.

통영 일상의 단편을 쓰려고 했는데, 어째 글이 통영예찬으로 간 것 같네. 그만큼 이곳에 우리가 반해버렸다는 증거겠지.

언젠가 꼭 다시돌아와 조금 더 긴 시간을 보내보고 싶은 매력덩어리 통영,

두달동안 고마웠어. 다시만날 그때까지 잘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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