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선비길 따라 봄빛 나들이

안동의 봄이 오는 풍경

하회탈춤 공연의 이매


안동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곳은 단연 하회마을일 것이다.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 세계인들도 많이 찾고,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다녀갔을 우리나라의 대표 전통마을, 하회마을. 그런데,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이 하나 숨어 있다. 하회마을과 가장 아름다운 서원이라 불리는 병산서원을 이어주는 선비길이 바로 그것이다. 차도 없던 그 시절에는 마을에서 서원을 방문할 때면 걷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오백여년 전 그 시간 속에 선비들이 보았던 풍경을 상상해보며 타박타박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걸어 보았다. 거리는 편도로 약 4km. 아주 넉넉하게 사진도 찍고, 중간 중간 쉬며 걸어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로 돌아올 때는 걷는 게 힘들다면,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Tip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로 가는 버스 46번은 하루 세 번 9:10, 12:10, 15:40에 있으니 시간계획을 잘 세우도록 한다.


  시작은 하회마을에서

선비길은 '선비이야기 길'과 '풍경소리이야기 길', 총 4km의 아름다운 길이다


선비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회마을에서 시작한다.

많은 분들이 하회마을에 다녀왔다고 이야기 하지만 대부분 두어 시간 마을길을 따라 돌아다니는 것으로 이곳을 보았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하회마을은 전통가옥이외에도 볼거리가 참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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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춤공연


2014년부터 탈춤상설공연장이 생겨 무료로 하회탈춤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월-12월까지 매주 수, 금, 토, 일 14시부터 한 시간 동안 하회탈춤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은 무료라는 것이 미안할 만큼 수준 높고, 재미있게 꾸며져 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박장대소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이 공연을 통해 비로소 그동안 전시장에서만 보아 왔던 양반탈, 부네탈, 각시탈, 이매탈 등이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부용대로 건너가는 나룻배


 하회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부용대


그리고, 이 마을이 왜 하회(河回)마을이라 불리는지 알고 싶다면 나룻배(3000천원)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보자. 강 건너편에는 누군가 툭하고 깎아 놓은 듯한 절벽, 부용대가 있는데, 마을을 등지고 오른편에 옥연정사를 지나 화천서원으로 가면 서원 오른쪽에 부용대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부용대에서 바라 본 하회마을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돌며 흐른다


부용대에 오르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낙동강과 나즈막한 산들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이 마을이 왜 하회, 즉 강이 돌아가는 마을인지 이해하게 된다. 낙동강이 둥그렇게 마을을 감싸 안고 흘러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하회마을은 예천 회룡포나 영주 무섬마을 등과 함께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 중에 하나이다.


  500년전 선비들은 어떤 풍경을 보았을까

 선비길에서 돌아 본 하회마을 풍경과 부용대


 하회마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하회마을을 구석구석 여유롭게 살폈으면 이제 선비길을 따라 천천히 병산서원으로 가보자. 선비길은 평평한 마을길에서 시작해 완만한 경사의 산길로 이어지니 걷기에 편안한 신발을 준비해야 한다.

열심히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그림같이 평화로워 보이는 하회마을이 자꾸 발걸음을 붙잡는다. 


 은은하게 봄이 다가오는 선비길


멀찌감치 보고선 안동은 아직 봄을 느끼기에 조금 이른가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곳에도 조금씩 봄의 입김이 닿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길에 파릇 파릇 인사하는 새싹들


 나뭇가지에도 어느새 싹이 돋고 있다


겨우내 발걸음이 뜸했던 선비길에 파아란 새싹들이 보송보송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 세상을 만난 잎사귀들을 밟을까 조심스러워 이리저리 피하며 길을 걸었다.


 생강나무 꽃, 가지를 비비면 은은한 생강향이 난다고 한다




 길가에 핀 이름모를 야생화들


드문드문 노랗게 봄을 이야기하는 생강나무 꽃이 객을 반겼고, 길가에 수줍게 피어난 야생화들이 조용히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오백여년 전 이 산을 넘던 선비들은 어떤 풍경을 만났을까? 지금처럼 잘 닦인 산길도 아니었을 것이고, 길을 잃지 말라고 세워둔 표지판도 없었겠지만 분명 그들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런 작은 꽃들을 보았으리라.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그 소소한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길을 걸었으리라.



 선비이야기 길과 풍경소리이야기 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표지판과 정자


길 중간 중간에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구나하고 안심하게 해 주었다. 사실 갈림길도 전혀 없어서 잃을 리 만무하지만 왠지 자꾸만 표지판을 보며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인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표지판 없이도 지형과 풍경을 보며 방향을 잡았을 것인데, 직접적인 정보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이런 것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 진다.



 정자에서 내려다본, 온화한 느낌의 낙동강


정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풍경을 감상했다. 연둣빛이 짙어지는 소나무들 사이로 모래사장이 곱게 깔린 낙동강이 눈에 들어왔다. 낙동강은 어쩌면 이렇게 포근한 느낌을 줄까. 안동에서 이름 높은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런 온화한 자연 속에서 수련하고 공부하여 그 자연을 닮은 성품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풍경소리이야기 길


 병산서원 근처로 오면 낙동강변에 갈대 숲이 무성해진다


 시간을 걷는 길


나 홀로 정자에 누워 바람을 느끼다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내리막이라 걷기도 훨씬 수월하고, 길옆으로 강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눈도 더욱 즐겁다.

병산서원이 가까워지자 낙동강의 모래사장은 강아지의 털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갈대밭으로 변했다. 그 사이를 느긋하게 산책하는 부부가 더없이 다정해 보인다. 


(사진을 찍고 보니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달려가 이메일 주소라도 물어보고 싶은데, 그들만의 평화로운 시간이 깨질까 선뜻 다가서질 못했다. 사실 낯선이에게 말을 잘 걸지 못하는 내 성격도 한몫했다. 그렇게 낯선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며 사는데도 나에게는 여전히 낯설음의 벽을 깨는 것이 쉽지 않다. ㅠ_ㅠ)


 산위로 올라가는 길


 갈대밭을 가로질러 가는 길


마지막 부분은 길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어떤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계단을 오르면 낭만이 우수수 쏟아지는 갈대밭을 위에서 조망할 수 있고, 오르막이 싫다 하는 사람은 갈대가 기분좋게 사각거리는 갈대밭 샛길로 가면 된다.


 일단 계단을 오르면 산 윗길도 평평하게 이어져서 딱히 힘들지는 않다


 산위에서 내려다 본 강가 풍경


나는 산위로 가는 길을 택했는데, 일단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길이 수평으로 나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다. 

강가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어딘지 아프리카 사바나의 풍경을 떠올리게 해서 저 나무들 사이로 기린이 긴 목을 쳐들어 올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병산서원으로 가는 마지막 부분은 낭만 그득한 오솔길이다. 오솔길을 지나 어떤 풍류를 아는 농부가 두었는지 소파 두개가 놓인 길이 나타나고, 이를 지나면 드디어 드디어 조선시대에 세워진 서원중에 가장 아름답다 칭송받는 병산서원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 병산서원

 병산서원 전경


병산서원은 고려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던 풍악서당을 서애 류성룡이 1572년에 지금의 병산기슭으로 옮기며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도 보호되며 소중히 여겨졌다.


 매화가 곱게 핀 병산서원 안뜰


 자연과의 절묘한 조화로 인정받은 만대루


특히 현대에 와서 이 서원이 더욱 유명해진 이유는 풍수지리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건물 배치가 조화롭고, 미적 감각도 극대화 해 놓아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이라 손꼽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원을 보는 순간 크고 화려한 것을 기대하고 왔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찬찬히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모습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만대루에서 바라보면 낙동강과 병산이 마치 7쪽 병풍의 그림처럼 나뉘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원 내에는 꽃나무 하나도 신경 써서 심어 두었다. 동재와 서재 앞에 매화 한그루 씩이 대칭을 이루며 심겨 있었는데, 서재 쪽이 더 따뜻했던지 꽃이 먼저 망울을 터트렸다.


 산수유가 곱게 핀 서재 뒷편


 머슴들이 이용하던 달팽이 뒷간


심지어는 화장실조차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운치를 가지고 있다. 달팽이 모양으로 생겨 그 가운데가 화장실이라 바깥쪽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유생을 뒷바라지 하던 머슴들이 이용하던 것으로 그 위쪽에 꽃이 드리우도록 매화까지 심어 놓은 센스를 발휘 했다. 짙은 매화 향기가 천연 방향제 역할을 할 것 같다 ^^; 이정도면 조선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서원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은가.

 

 병산서원 앞 낙동강의 드넓은 모래사장


 서원 앞 낙동강에 반영된 하늘


서원 앞의 낙동강 모래사장은 다른 곳 보다 더욱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앞으로 잔잔하게 흐르는 낙동강. 그리고 그 위로 반영된 하늘. 유생들이 학문을 연구하다 머리가 답답해지면 이곳을 거닐며 탁해진 머릿속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런 곳에서라면 정말 세상사에 방해받지 않고, 학업에만 매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렇게 선비길을 통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함께 천천히 둘러보았다. 예전에 바람같이 와서 하회마을의 전통가옥들만 콕콕 찍고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선비길을 걸어야 비로소 하회마을을 다 보았다고 하던 이야기를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하회마을을 보고 싶다 한다면 꼭 이 선비길도 함께 걸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 이 글은 경상북도 관광공사의 블로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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