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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 유럽/Switzerland | 스위스댁 이야기
러브스토리 시즌2. 달이 빛나는 뉴샤텔(뇌사텔) 호수위의 프로포즈
2016. 2. 3. 23:25

번갯불에 콩볶듯 준비한 프로포즈 이야기
대한사람감자 오이 러브 스토리 시즌 2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어느덧 감자양이 아름답게 콧수염을 붙이고, 오이군이 멋드러지게 작업복을 입고,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린지 9년이 되었다. 아직도 신상품(^^;)같이 느껴지는 남편이 벌써 9살이 되었다니 믿기지 않지만 오래전 사진들을 꺼내보니 앳된 남편의 얼굴에 새삼 놀라게 된다. (콧수염과 작업복이 이해가 안되신다면 지난 이야기 콧수염 붙이고 결혼한 여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차례로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너', '연애하던 시절', '허니문'

 

사진을 보며 추억에 참겨보니 우리도 친구와 연인사이를 걸트리며 간보던 시절이 있었고, 본격적으로 연인이 되서 불타던 시절가 있었으며, 깨소금 흩날리던 신혼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그중에서 러브스토리 시즌 2에 해당하는 연인시절,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을 찍었던 프로포즈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이집트로 갔다. 한국에서는 드문 허니문 장소라 우와~라고 하시겠지만, 스위스에서는 이집트가 한국에서 방콕/파타야나 세부가는 것 만큼 가장 저렴하고, 흔히가는 여행지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는 재정상태가 소박하기도 했지만 결혼을 마구 서둘러 하는 바람에 신혼여행을 여유있게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어릴 적 부터 꿈이었던 아프리카에가서 야생동물들에 둘러싸여 허니문을 맞이하고 싶었는데, 여행사에 가보니 각종 예방접종을 맞고, 비자에 어쩌구 저쩌구 뭔가 복잡해서 준비기간이 한달이나 걸린다는 거였다. 스위스가 무슨 서비스든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한달이라니...결혼날짜가 예약시점부터 3주가 조금 못되게 남아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야생동물은 포기하고, 인터넷으로 땡처리 상품 중 가장 저렴한 장소를 골랐다. 그것이 이집트. 어릴적 부터 이집트 신화에 관심이 많았어서 나름 좋은 차선책이기는 했다. ^^

 

그런데, 왜 그렇게 결혼을 서둘렀냐고? 사랑에 불타서? 그보다는 사실 행정적인 문제가 걸려있었다.  

원래는 스위스에서 1년쯤 어학연수를 했더니 돈도 떨어지고, 비자도 끝나가길래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었다. 호주에서는 어학연수생들 알바할 곳이 넘쳐났는데, 스위스는 알바자리가 거의 없어서 호주에서 3시간 자가며 알바뛰어 모아온 돈을 스위스에서 거의다 소진해 버렸던 것이다. 

 

 

 

 

내가 호주에서 알바뛰던 곳들. 10년만에 다시 찾아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한곳은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호주에서 어학연수할 때는 알바 3개를 동시에 뛸 때도 있었다. 그랬더니 한국에서 나름 대기업이라는 곳 인사과에서 정사원으로 받던 월급보다 알바로 받는 월급이 더 많더라는....^^; 호주에서는 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게 아니라 시간이 부족해서 더 일을 못했는데, 스위스로 건너가니 시간은 남아도는데, 도무지 일자리가 없더라

 

그런데, 여기서 오이군 마음이 조급해졌던 모양이다. 오이군은 취직을 해서 열심히 회사생활 중 이었으므로 해외로 이동이 불가능 했는데,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재취업을 해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가보다. 사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돈을 좀 모은 다음 다시 돌아오던지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또 모르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유령같은 장거리 커플이 얼마나 길게 갈 지는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어쨌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하고 이틀 뒤 이런 일이 일어났다.

 

고요한 스위스의 밤, 시계는 10시즈음을 가르키고 있었다. 

오이군이 어디선가 공수해온 고무보트를 등에 진 채 장바구니를 팔에 끼고 나타나 다짜고짜 오밤중에 호수로 가서 배를 타자고 했다. 무섭게스리 왜 오밤중에 배를 타냐니까 니가 그 매력을 몰라서 그런거라며 잔말말고 따라오라고 한다. 이렇게 공포영화가 시작하던데...라고 생각할만도 한데, 나도 그때 콩깍지가 두껍게 씌여서 마냥 재밌게만 느끼면서 쭐래 쭐래 따라 나섰다.

 

이곳이 그때 그 생 토뱅St. Aubin 호숫가. 스위스는 한국보다 위도가 높고, 썸머타임도 있어서 여름에는 해가 길지만, 그래도 밤 10시에는 완전한 밤이 된다

 

첨벙.

보트를 물위에 띄우고, 오이군과 보트에 마주보고 앉았다. 나는 수영을 대단히 잘하는게 아니어서 보트가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지만 든든한 백기사같은 오이군이 물개같이 수영을 잘 하니 나를 구해주겠지...라고 그때는 순진하게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컴컴한 호수에서 누굴 구한다는 건 컴컴한 운동장에 떨어진 포도알 하나 찾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일텐데, 정말이지 콩깍지의 힘이 대단하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그날 밤도 대략 이런 느낌의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쨌든 무서울 줄 알았던 호수는 달도 안떴는데, 별빛 만으로도 의외로 환했고, 호숫가엔 가로등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어서 꽤나 로맨틱한 분위기가 났다. 

 

차라락, 차라락.

조용한 호수 위에 노젓는 소리가 전부. 

저 멀리서 또르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에선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든든한 물개같은 내님은 열심히 노를 젓고, 나는 기를 쓰고 안전 밧줄에 팔을 감고 있었지만 나름 로맨틱했다. 

 

스위스 마을들엔 호숫가에서 20-50m정도 떨어진 물가운데에 이런 평상같은게 있다. 보통은 수영으로 건너가 쉬는건데, 그날 밤은 이곳에 고무보트를 타고 갔던 것

 

물 가운데 평상에 도착해서 배를 묶었더니 오이군이 장바구니에서 돗자리를 척 꺼낸다. 웬일이래. 자연인 오이군은 그런거 취급 안하고 바닥에 털썩 털썩 앉는 편인데, 이날은 돗자리에 무릎담요까지 준비를 해온게 아닌가. 오~ 놀라워라. 소리가 절로 났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장바구니에서 축구공만한 둥근 것이 나왔다. 그것은 바로 수박. 그 뒤로는 샴페인 한병과 플라스틱 샴페인잔도 나왔다. 

저걸 다 들고 오느라 어깨가 빠질 듯 했을텐데, 내색도 안하고 잘도 여기까지 왔네...^^;;

그렇게 한밤중에 우리는 물 한가운데 앉아 수박을 쪼개고, 샴페인을 마시며 별구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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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기는 한데, 한시간쯤 지나니 조금 춥기도 하고, 슬슬 졸음도 온다.

그런데, 오이군이 가자는 소리를 안한다. 

분위기 깨기 싫어서 그냥 무릎담요 칭칭감고 계속 수다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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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술기운도 슬슬 오르겠다, 졸려서 수다를 떠는 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말도 점점 줄어든다.

그냥 오늘은 여기서 별보다 자는건가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뭐든 상관이 없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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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깜짝이야!

거의 잠이 들려는 순간 오이군이 벌떡 일어서서 내 손을 잡아 끄는 바람에 내지른 소리였다.

뭐지. 호수에 상어라도 나타났나 왜 이런데.

평상위에 당당하게 선 오이군은 잠에 취해 휘청거리는 나를 잡아 일으켜 세우고, 한쪽 무릎을 꿇더니 뭐라고 뭐라고 대사를 읊는다.

어마나, 이게 뭐셔. 지금 야가 나한테 뭐라는겨.

자다깨서 비몽사몽한 상태가 조금 지속되는 바람에 오이군이 뭐라는지 이해가 빠릿 빠릿 되질 않는다. 그래서 음...하면서 잠시 멍하니 서있었는데, 오이군의 눈빛이 마구 흔들리는게 보인다. 

뭔가 불안해 보이네. 왜저러지? 

가만히 그 눈을 쳐다보다가 이 사람이 뭐라고 했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 프로포즈를 받은거구나하는 깨달음이 왔다.

마음이 급해서 반지는 준비 못했다며 꽃한송이를 건네줬다. (나중에 결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스위스는 커플반지 맞추려면 샵에서 제작기간이 한달이 넘게 걸린다. -_-;) 아무래도 내가 한국으로 혼자 돌아가면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서 급작스럽지만 지금 붙잡아야 할 것 같다며, 결혼해서 비자 받고 편안하게 여기 눌러 살자고 했다. 거주 비자가 있으면 알바 말고, 진짜 직장도 구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지 않겠냐며 가지 말라고 했...던것 같다. (졸려서 다 못알아 들었다.)

푸흣. 그말해놓고, 내가 뜸들였더니 거절하는 줄 알고 불안해 하는게 어찌나 귀여운지.

이렇게 로맨틱하고, 귀여운 남편을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 오이군.

난 반지따위 좋아하는 여자도 아니고, 튕기는 타입도 아니라서 대답은 단번에 오케이. 

그래~! ^^

...라고 나는 기억하는데, 오이군이 나중에 해준 얘기로는 대답하는데 무지 오래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거절하는 줄 알았다고. 아마 졸려서 암호같이 들렸던 문장들을 해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던 모양이다. ^^;

 

 

한참 뒤에, 그날 왜이렇게 뜸들여서 나를 재워놓고 프로포즈를 했냐고 물으니까 로맨틱하게 달이 떠오르면 달을 소재삼아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날 밤에 달이 늦게 뜨는 날이었다고. ^^; 집에 돌아올 때 새벽 1시가 훌쩍 넘어 있었던 걸 보면, 달이 밤 12시 반도 훌쩍 넘어서 떴던 듯 하다. 내 외국이름이 루나(달이란 뜻)여서 그걸 인용해 뭔가 멋진 문장을 만들었던 모양인데, 나는...그때 반쯤 자다깨고, 놀래서 그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가 그렇게 기다렸던 달은 조금 빨개서 무섭기도 했지만, 휘엉청 밝고, 해만큼 커다란 보름달이어서 지금도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산넘어 산, 부모님을 설득하라!
두번째 프로포즈, 감동의 인형극

 

일단 우리는 결혼하기로 해 놓고 나니 신이 났는데,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난감했다. 오이군의 아버지는 이미 사귈 때 부터 그냥 빨리 결혼해 버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 괜찮았는데, 나의 부모님이 걱정이었다. 외국인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리만으로도 노란머리에 파란눈은 안된다고(푸흡...^^;) 펄쩍 뛰셨는데, 다짜고짜 결혼한다고 전화로 알리면 심심한 충격이실 것이 분명했다. 사실 외국인이 더 바람둥이고 어쩌고 할 이유가 없는데, 어른들은 아무래도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계시기 마련. 결국 고민하다가 일단 오이군을 한국에 데리고 들어가기로 했다. 오이군은 첫인상이 아주 착하게 생겼으므로 (사실은 똥고집 드럽게 센데! -_-;) 보시면 마음이 놓이시겠지. 그리고 내가 말하는 것 보다 오이군이 말하는게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오이군에게는 한국에서는 둘이 좋다고 결혼을 그냥 막 하는게 아니라 일단 양가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한데, 보통 남자가 여자의 부모님께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해버렸다. ^^; 스위스에서야 그냥 둘이 좋으면 가족 친지에게는 통보하는 식이지만 한국은 허락을 받는게 사실이니까. 오이군이 한국말을 못하고, 부모님은 영어를 못하시지만 알아서 준비하라 하고, 일단 나는 한달먼저 한국으로 들어왔다. 부모님과 시간도 좀 보내고, 분위기 조성도 잘 해놔야 했기 때문에...^^;

 

한달 뒤.

번개같이 시간이 흐르고, 오이군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날이 되었다. 처음엔 한숨쉬시던 부모님이 오이군 올 때쯤 되니까 오히려 분주하게 손님맞이 준비하시며 두분이 모두 공항에 마중을 가시겠다고 하셔서 다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 되었다. 부모님은 오이군이 외국인이니까 반갑다는 표시로 포옹을 하며 맞아줘야겠다고 만반의 준비를 하셨고, 오이군은 동양인은 포옹을 하지 않으니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왔던 것이다. 양쪽 다 나에게 미리 조언을 구했더라면 좋았을 것을...옆에서 지켜보니 오이군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린채 서있고, 부모님은 그런 그를 아주 어색하게 꼭 끌어안고 계셨다. 그런데, 사실 스위스에서는 그렇게 꼭 끌어안는 포옹을 하지 않는다. 가볍게 어깨를 잡고 볼을 맞대는 정도인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 그를 아주 격렬하게 꼬옥 끌어안고 계셨던 것이다. 오이군이 화들짝 놀라 고목나무같이 얼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 부모님은 두분다 키가 작으셔서 그 모습이 커다란 뽕나무를 안고 계신 것 같아서 어찌나 웃기던지. ^^;

어쨌든 화기애매하게 오이군 맞이가 끝나고 함께 집으로 왔다. 집에서 맞아주던 동생의 첫마디는 안녕하세요라든지 헬로우 등의 인삿말이 아닌 헉. 얼굴 진짜 조그맣다였고. ^^; 

 

처음엔 어디가서 사위 외국인이라고 어떻게 말하냐고 하셨는데, 지금은 슬쩍 슬쩍 우리 사위가 스위스 사람인데, 아주 검소해...뭐 이런 깨알 자랑도 하신다는 소문이 ^^;

 

그렇게 가족의 환대속에 평화로운(?) 일주일이 흐르고, 대망의 결혼발표 시간이 왔다. 일주일동안 조금 친해진 다음에 말씀드리는게 분위기상 좋을 것 같아서 나름 고심한 타이밍이었다. 그랬다가 거절하시면 남은 일주일을 어떤 분위기로 보낼까 싶기도 했지만 뭐 사실 딱히 거절하실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내일모래면 서른인 딸래미 시집간다는데. ^^;

나는 오이군에게 맡기기는 했지만 의사소통이 안될 것을 알았기에 통역을 해주면서 부드럽게 살을 좀 붙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오이군이 걱정말라며 혼자 말하겠다고 가족들을 식탁에 둘러 앉혔다. 오잉? 한달사이에 한국말 마스터라도 한걸까?

나는 쑥스러움에 얼굴이 근질 근질해서 안절부절하고있는데, 오이군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 주섬 꺼낸다. 그가 식탁에 펼쳐 놓은 것은 손수그린 심플 세계지도와 종이로 만든 감자와 오이 인형. 그는 말이 안되니 바디랭귀지의 일종인 인형극을 선택한 것이었다. 우리 사진을 오려붙여 만든 인형들을 번갈아 들어가며 호주, 스위스, 한국을 넘나들었던 감자오이의 러브스토리를 표현해 냈다. 

어머나 세상에. 이남자는 이렇게 하나 하나 모든게 감성 취향저격일까. ^^; 

두번째 프로포즈를 받는 듯 감동이 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길래 슬그머니 잠시 화장실에 갔다왔는데, 와서 보니 만년 소녀감성을 가지신 어머니가 웃으면서 울고 계신다. ^^; 뭐 더이상 대답 들을 것도 없이 엄마는 OK하신 것 같고, 아버지가 남았는데...오이군이 감자와 오이얼굴을 전통혼례복 입은 커플사진 위에 붙여놓고, O/X카드를 만들어 아버지 앞에 펼쳐 드렸다. 아버지께도 오이군의 마음이 잘 전달이 되었던지 그래, 너희들 마음이 그렇다고 하니 잘 알았다. 결혼을 한다는 건 말이다....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을 늘어 놓으셨지만 어쨌든 첫문장에 OK를 하셨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가 연설내내 O 카드를 골라주시지 않았던 것. 한 10여분 결혼과 부부의 삶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동안 오이군 표정을 살폈는데, 뭔가 씁쓸한 것이 잘 안됐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아버지는 매우 진지한 중저음으로 단 한번도 미소를 짓지 않고 긴긴 말씀을 이어가셨기 때문이었다. 오이군은 당연히 전혀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중간에 끊고 통역을 해 줄 수도 없는 분위기라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

드디어 긴긴 조언의 시간이 끝나자 오이군이 슬픈 표정으로 날 쳐다 본다. 그래서 싱긋 웃으면서 이제 결혼 날짜 잡으면 되~ 라고 했더니 어? 진짜? 우와. 난 나 혼자 집에 가야되는 줄 알았는데? 라고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9년차 부부의 결혼기념일 식사의 포스 ^^;

 

이렇게 우리는 결혼에 골인했다. 어제가 그 생난리를 친지 정확히 9년이 되는 날. 이제 결혼기념일 파티로 동네에서 열리는 5일장에서 데이트를 하는, 노련함을 갖춘 아홉살 부부다. ^^

이제 1년만 더 있으면 우리도 틴에이저, 십대부부가 되는건가? ^^ 

올 한해도 신나게 보내고, 내년에도 행복한 이야기 가득 풀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알았지 남편? 응? 응??

어어어어. 아, 뭐야. 나 죽었네....(옆에서 수퍼마리오 게임하느라 내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