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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 일본/Japan | 오키나와, 이시가키
[이리오모테] 물위를 걷는 물소차 여행
2013. 4. 14. 13:31

이시가키에 내딛은 첫 발자국

 

사람마다 고유의 지문이 있듯 고유의 발자국이 있으면 어떨까? 나에게만 보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 어느 장소에 도착했는데, 내 발자국이 찍혀 있다. 이 곳에 와 봤다는 이야기다. 낯선 곳에 도착하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돌아왔을 때 처음을 추억할 수 있도록 내 발자국이 찍혔으면 좋겠다고. 또는 영원히 돌아올리 없겠지만 그저 내가 스쳐갔노라고 그자리에 기억을 심어두고 싶다.

 

 

이미 푸른 하늘과 야자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단번에 빠져버렸다. 쨍한 짙푸른 하늘이 처음 호주에 갔을 때가 생각나게 했다. 내가 항상 그림을 그릴 때 고르던 그 옅은 하늘색이 다른 장소에선 하늘색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곳의 하늘도 그런 진한 푸른색이다.

 

오늘의 첫번째 일정은 이리오모테섬에서 물소차타고 유부섬으로 건너가기.

오케이, 가자. 일단 옷좀 갈아입고오~

3월인데, 날씨가 이미 초여름이다. 잽싸게 반팔에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물소차를 타고 섬과 섬을 이동한다고? 이곳도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듯 물길이 생기나보지?

 

 

일단 이시가키섬에서 이리오모테섬으로 이동하기 위해 페리 선착장으로 왔다. 흐드러지게 핀 붉은 꽃, 사파이어같은 물 빛 그리고 오렌지색 페리. 매우 컬러풀한 풍경에 일단 넋을 좀 잃어주고, 페리를 타러 갔다.

 

 

 

 

 

투명한 물에 햇살이 깊숙히 들어 마치 물 안에서 빛이나는 것 처럼 보였다. 고산지대의 빙하가 녹아서 석회가 많이 섞인 물들에서 나는 그런 신비한 푸른 빛인데, 좀 더 따뜻한 느낌이랄까?

 

 

페리가 출발하니 항구에서 직원 두분이 배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신다. 일본 영화에 나오던 장면같다. 왜 기차같은게 떠날 때도 한쪽손은 뒷짐을 지고 흔들어주던데, 딱 그 자세. 나는 좀 낯간지러워서 손같은거 잘 안흔드는데, 저 두분이 하도 오랫동안 팔아프게 흔들고 있어서 결국 소심하게 같이 흔들어주었다.

 

 

이리오모테 섬까지는 페리로 40분이 걸리는데, 바다색이 너무 황홀해서 '이야~,키야아~, 크아아아~'만 반복하다 결국 잠이 들었다. -_-;

배 엔진소리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들리니까 나도 모르게 피곤해져서 잠이 들더라는. 왜 그 메탈음악 이어폰 꽃고 계속 들으면 어느순간 졸려지는 그런 경험이 없으신지? 비슷한 상황이었다. 풍경이 너무 예뻐서 열심히 구경하리라 마음먹었건만 열심히 앞 사람 의자를 머리로 찧어대면서 자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잠이 안오면 Korn 이나 Rage against the machine 같은 하드코어류를 이어폰으로 꽃아두고 잠을 청한다. 실제로 양 수천마리 세는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는. 잠 안온다고 양을 세면 나는 거짓말 안하고 천마리 넘어가더라. -_-;

 

 

이리오모테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직 외국인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아서 대부분이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동남아에서 혼히 보던대로 웅성웅성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요렇게 잘 정돈된 듯 기다리고 있어서 참 일본 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야생의 섬 이리오모테. 섬 전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 섬에 대한 소개는 다음편에서 같이 하기로 하고, 일단은 물소 이야기로 넘어가자.

 

 

야에야메 제도는 아열대성 기후이기 때문에 물소가 서식한다. 물소라고 해서 늘 물속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고, 호수나 늪 주변 초원의 건초를 먹고 슈렉처럼 진흙탕 목욕을 즐긴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벼 농사를 위해 많이 길러졌는데, 이 곳 역시 마찬가지인듯 하다. 대신 근래에는 농사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물소차를 끄는 것이 그들의 주요임무.

 

유부섬으로 가는 입구에서 우리를 압도한 거대한 뿔의 물소. 착해보이는 눈과 튼튼한 몸매, 우람한 뿔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더라. 물소는 날이 더울 때는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배차를 받기 전에 물로 흠뻑 적셔 체온을 내려 준다. 게다가 이렇게 잘 닦아줘서 그런지 무슨 소가 냄새가 안난다. 파리도 좀 붙고, 진흙같은 것도 좀 덕지 덕지 붙어있을 줄 았았는데, 깨끗한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그야말로 물소계의 훈남. 

 

 

물소차는 타케토미섬 전통 마을과 이리오모테섬 옆의 작은 섬인 유부섬에 갈 때 탑승할 수 있는데, 둘 중 한곳에서만 타겠다면 이리오모테섬과 유부섬사이를 왕복할 때 탑승할 것을 추천한다. 타케토미섬의 전통마을은 그 마을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물소차를 타고 나서도 다시 걸어 둘러보게 되는 곳이고, 유부섬은 이 물소차를 타지 않고는 건너갈 수 없는 섬이기 때문이다. 물론 걸어갈 수도 있지만 아쿠아슈즈를 준비하고, 가끔 물소의 분비물과 물안에서 맞닥들일 각오를 해야한다. 섬과 섬사이를 배가 아닌 물소차를 타고 이동한다니 환상적이지 않은가? 만조시 수심이 일미터도 되지 않는 곳이기에 부드러운 열대 바닷바람을 느끼며 물 위를 걷는 기분을 만끽해볼 수 있다.

 

 

샤워를 마치고, 능력에 따라 배차를 받는다. 우리가 봤던 소는 큰편이라 이 차보다 큰 18인승을 배정받았다. 

 

 

 

 

 

우리 일행은 인원이 작았으므로 작은 소가 끄는 마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소 한마리에게 이렇게 큰 마차와 우리들 모두와 마부(우牛부?)까지 모두 끌게 하니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정작 소들은 서로 빨리 물속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다. 이유인 즉슨, 소들이 물속에서만 화장실에 가는 습관이 들어서 빨리빨리 물로 데려가 주지 않으면 배가 불편하신 모양. ^^;

우리소도 열심히 끌다가 갑자기 물길 한가운데서 멈춰섰다. 그러자 센스넘치는 마부는 잽싸게 나무판을 들어 소의 뒤를 가린다. (이것도 역시 일본인스럽다. ㅎㅎ) 소들이 모여있는 장소와 해변가가 매우 깨끗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여기의 소들은 물밖에서는 실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나도모르게 반사적으로 물위을 두리번 두리번 찾아 보니 정말 드문드문 그것이 있었고, 나는 그 위에다 셔터를 팍팍 누르고 있었다. '왜 X사진을...?' 이라는 동행인의 질문에 생각해보니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센스쟁이 마부는 지역 전통악기인 산센 (三線) 을 꺼내들고 민요까지 불러준다. 이 멜로디가 이시가키 어디에 가나 들려와서 집에 돌아올때 쯤엔 나도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더라. 물소차를 모는 이의 편안한 음색을 배경음악으로, 푸르른 이리오모테의 아열대림과 푸른하늘을 바라보며  물위를 걷는 기분이란. 이곳에 오면 꼭 느껴 보아야 할 이시가키만의 여유다. 

 

 

저어 쪽 맞은편 유부섬에 대기하고 있는 물소차들이 점점 가까와진다. 나즈막한 전통가옥과 열대숲 그리고 색색의 물소차들이 너무 평화로와 보인다. 

 

 

이 물소는 오늘 비번인가보다. 축복받은 인생, 낙원같은 곳에서 대접받으면서 사는구나. 이곳에서 물소는 인도처럼은 신격화는 아니어도 매우 사랑받는 존재이다.

 

 

이녀석들, 족보도 있다. 우리가 타고 온 소는 '야에'라는 이름의 암소 였다. 그래서 속눈썹이 더 길고 예뻤나보구나. 그런데, 무슨 여자가 이리 힘이 센가. ^^;

 

 

일을 마치고, 화장실도 잘 다녀오면 또 이렇게 샤워로 보상을 받는다.

보고 있자니 집에 오이군과 남겨진 까비양이 생각이 났다. 저렇게 물뿌리면 세상에 종말인듯 난리치는데...까비는 14년을 목욕당해도 여전히 적응을 못하는데, 물소는 완전 반대다. 물 뿌리는 방향으로 머리를 들이대고, 눈도 안감는다.

 

 

유부섬에서 이리오모테 섬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 할아버지가 물소차를 몰아주셨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 매우 신기해 하신다. 아직은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이 이곳 토박이이신지라 통역해주시던 분도 사투리를 알아듣기 힘들어 여러번 물어야 했고, 할아버께서 귀가 잘 안들리셔서 우리도 여러번 대답해야 했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어떻게 하냐고 물으셔서 열심히 대답해 드렸는데, 단어가 길기도 한데다가 잘 못들으셔서 미션임파서블. ^^

센스쟁이 물소차남과는 또 다른 구수한 느낌이 기분좋은 물소차 할아버지. 물소도 느릿느릿 걷고, 할아버지도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움직이신다. 모든것이 이렇게 느리고 평화로와서 물소의 눈도 할아버지의 표정도 그저 맑은가보다.

 

 

돌아오는 길에는 물이 더 많이 들어와 있어서 정말 물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저쪽에 보이는 물소차와 물그림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물소의 발은 발 모양이 진흙에서도 잘 걸을 수 있도록 적응되어 있어서 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도 푹푹 빠지지 않고, 잘 걷는다. 

 

 

 

 

 

돌아오고나서 가이드 아저씨의 강력한 권유로 찍은 기념사진. 

저 큰 뿔을 가지고도 다가오는 낯선이가 위협을 느끼지 않을만큼 느긋하게 맞아주는 물소. 이녀석의 애교없는 거친 털이 참 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직하고, 가식이 없는 소처럼 털도 다른 동물들의 보드라운 털과 달리 투박하고 뻣뻣한, 참 솔직한 털이다.

 

물소차로 섬 사이를 느릿느릿 건너는 것이야 말로 이곳, 오키나와 이시가키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 일본인들이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는 1위 지역이 이시가키라는데, 이해가 가더라.

 

 

취재지원
이 포스팅은 겟어바웃 트래블 웹진, 하나투어에서 여행경비(항공권, 숙박비, 교통비, 식비)를 지원받아 블로거 본인이 여행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여행날짜
2013.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