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울에 몰려 사는 거야?

스위스산 오이가 느낀 안동의 첫인상


그래, 이 맛이야! 기대하던 안동 라이프 ^^


안동에 도착한 첫날밤, 3개월 동안 머무를 보금자리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우리는 그대로 침대위로 쓰러졌다. 한달동안 살림들을 처분하느라 은근히 받은 스트레스와 이삿날의 분주함이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합쳐지니, 1톤쯤 나가는 옷을 입은 것 처럼 온몸을 바닥으로 끌어 내렸기 때문이었다. 동향이라 아침부터 환하게 밝아지는 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랜만에 꿀늦잠을 자고 나니 드디어 새 동네로 왔다는 설레임이 두팔을 벌리고 우리를 끌어 안았다.

자기야, 일어나봐. 냉장고가 텅 비었다. 아침으로 먹을 빵사러 갈까?

괜히 혼자 설레여서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빵 핑계를 대고 오이군을 흔들어 깨웠다.



 사진좀 찍어달라고 포즈를 잡고보니 오이군 있는 곳이 진정 포토제닉. 급히 폰카로 맞사진 찍는 중 ^^


빵사는 김에 자전거 타고 동네나 한바퀴 돌까? 첫날이잖아. 일은...저녁때 하지 뭐 ^^

히힛. 역시 마음이 착착 통하는 오이군. 오이군도 새 동네가 궁금한 모양이다. 밤새서 일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새 동네를 탐색하기로 했다. 재택근무를 하면 일하는 시간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어영부영 사실상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데, 그래도 하루 일정을 마음대로 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이번달에 원고, 사진 청탁도 뜸하고, 한지공예품 판매는 전국일주 시작과 함께 잠시 접어두었으므로 시간이 여유로와 마음이 가벼웠다. 뭐 통장도 덩달아 가벼워지겠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돌아다녀보겠나. (그래도 주변에 여행 원고나 사진 필요하신 분 있으면 소개좀 해주세요. 취재요청, 스냅사진촬영요청 등등 일 가리지 않고 받습니다. ^^;;)



 눈부시다는 북미의 단풍 부럽지 않은 풍경


집주변만 슬쩍 둘러보려고 했는데, 아름다운 풍경들이 호기심과 합세해서 자꾸만 자꾸만 우리를 먼곳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마치 세이렌의 노래에라도 홀린 듯 낙동강물을 따라 안동댐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달렸다. 댐 가까이 다달았을때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은행나무들이 낙동강물에 은은하게 비친 모습을 감상하던 오이군이 물었다.

한국에 이렇게 좋은 곳이 많은데, 왜 다들 서울에 다닥 다닥 몰려 살아?


.



새로운 보금자리는 어떤 곳?

안동에 산다고 다 한옥집에 사는 건 아닙니다 ^^;


안동에 3개월을 머문다고 했더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묻는다. 

왜에? 그럼 한옥집에 사는거야? 서울에서 나고 자란 니가 시골 가서 살 수 있겠어? 

다들 안동하면 하회마을만 생각하고는 6.25사변도 모르고 지나갔을 산골마을로 들어가는 것처럼 불편할(?) 것에 대해 걱정을 한다. 그러나 안동은 이래뵈도 '시'다. 시내에가면 대형마트도 엄청 크게 들어와 있고, 웬만한 카페, 패스트푸드 체인들은 물론 여러 의류 브랜드들도 자리잡고 있다. 영화를 자주보는 야채커플에게 영화관도 빼 놓을 수 없다. 



보시라. 집밖에 나가면 왼쪽 사진처럼 6차선 도로가 촤악 펼쳐진다. 아니, 또다시 도심에 살거면 대체 뭐하러 안동까지 내려갔냐고? 

사실 뭐 꼭 그렇지는 않다. 오른쪽 사진의 도로의 반대쪽을 한번 돌아 보시라. 길이 뚝 끊어져있다. 그리고 그 넘어로 산과 들이 마치 포토샵으로 어설프게 오려 붙인 듯이 도로 앞을 턱 막고 있다. 언젠가 개발하면 이어갈 길인 듯 하지만, 현재 이 넓은 도로는 동네 주민들의 주차장일 뿐. 도로 가운데 있는 차가 지금 운행중이 아니라 그냥 저렇게 주차를 해 놓은 거다 ^^ 서울에서는 아파트 단지내에서도 차댈 곳을 찾아 몇바퀴씩 돌아야 했는데, 이 여유로움이라니. 



 도로가 끊어진 곳으로 다가가면 바로 싱그러움 가득한 자연을 마주하게 된다



끊어진 도로는 분위기를 급 전환하며 농가로 이어진다. 집뒤에 이런 풍경이 펼쳐지다니, 어릴적 생각 나네. 고등학생때, 심지어 대학때 까지만해도 서울 변두리에 논, 밭이 많이 남아 있어서 쉽게 이런 곳으로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전부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섰다. 

그런데, 이곳은 그냥 시골마을이 아니라 입구에 분위기 좋은 노천테라스가 있는 카페가 하나 위치하고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스타일리쉬한 게스트하우스도 하나 있어서 느긋하게 앉아 시골의 정취를 음미할 수 있다.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곳 안동, 벌써 부터 그 매력에 푸욱 빠져들기 시작한다.



코스모스 한들 한들, 동네 산책 중. 

첫날부터 우리 양파(자동차)가 낑낑대면서 싣고온 자전거가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조금 더 들어가자 묘목을 재매하는 곳이 나왔는데, 길이 아예 비포장 도로로 바뀌어 버렸다. 묘목에는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작고 붉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었다.



빠른 포기. 비포장 도로에 산으로 가는 오르막인데, 어떻게 할까 라고 묻는 듯 나를 바라보는 오이군의 눈빛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망설임 없이 휙 뒤돌아 왔던길을 되돌아 나왔다. ^^;

길이 여기만 있나. 산악자전거도 아닌 시티자전거를 타고, 객기부릴 필요 없지. ^^;



뽈뽈뽈 왔던 길을 되돌아 와 이번엔 낙동강변으로 향했다. 있던 곳에서 한 5분도 안되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강물. 그 시원한 풍경에 나모 모르게 와~소리가 튀어 나왔다.

농암종택이 있던 상류에서만 봐서 낙동강은 작은 강인줄 알았더니 안동시내쪽은 무지하게 넓구나.


감자와 오이가 안동에 반한 이유 농암종택 이야기 보기



선비의 고장, 안동 답게 다리 중간에 커다란 갓이 턱 세워져 있다



다리 아래로 내려왔더니 낙동강 종주 자전거 길이 깨끗하게 뻗어 있다. 근데, 신기한건 이 잘 닦인 도로에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 서울에는 평일에도 한강은 물론, 지방천인 안양천변에도 사람이 그득했는데, 여기는 5km가 넘게 달리는 동안 마주친 사람이 5명도 안되었다. 덕분에 서울에선 오이군과 나란히 달리면, 아무리 한쪽 구석에 딱 붙어 달려도 뒤 쫓아 오던 사람이 추월하며 한줄로 다니라고 빽 소리를 쳐서 즐거운 나들이 길에 위장장애를 남기는데, 여기서는 둘이 왔다갔다 자전거 묘기를 해도 불만을 가질 사람이 전혀 없었다. 너무 사람이 없으니 세기말 영화나 좀비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전거 라이딩의 쾌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좋더라.



물줄기가 안동댐이 있는 낙동강 상류와 임하댐이 있는 반변천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안동댐 방향으로 이어갔다. 길이 차가 다니는 지방도로와 합쳐 졌지만, 자전거 도로도 잘 닦여 있고, 차도 그리 많이 다니지 않아서 여전히 상쾌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드디어 저편의 안동댐과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나무 다리라는 월영교가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그런데, 월영교 앞, 물가운데 있는 황토색 땅은 뭘까? 올해 2015년은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했는데, 특히 경상도가 많이 가물었다고 들은 것 같다. 그 실체가 드러난 걸까?



가뭄으로 생긴 작은 섬 덕분에 물새들은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쉴 곳이 생겨 좋은 모양이다. 그 위에 백로와 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천하태평하게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있었다. 




잔잔한 수면위로 비친 월영교와 안동 민속촌의 고택들이 은은하게 물들어 가는 단풍과 어우러져 수묵담채화에서 막 튀어 나온 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아~그래. 바로 이맛이야! 안동에서 기대했던 것이 바로 이런 거다. 멋진 풍경을 2-3시간의 드라이브가 아닌, 집 근처에서 아무때나 가볍게 즐기는 것. ^^

풍경에 취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그때 오이군의 배에서 그래 이맛이야는 뭘 먹고 외치라고 항의라도 하는 듯, 꼬르륵 소리가 격하게 들려왔다.



맛집 찾는다고 조금 헤메기라도 하면 오이군이 오이소박이로 변해 짠물을 튀겨댈 것 같길래 월영교 근처에 있던 음식점으로 급히 들어갔다. 아무래도 월영교가 지역 관광 명물이다보니 음식점들 가격이 관광지 스러웠지만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커플 관계의 존속이 걸린 문제인데, 지금 가격이 무슨 상관이랴.


음식점은 관광객들의 관심사에 맞춰 안동 간고등어, 헛제사밥 그리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중 헛제사밥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헛제사밥은 평소에 그냥 제사밥을 해 먹는다고 해서 헛제사밥이라 불린다. 그중에서도 월영교 앞의 맛50년 헛제사밥은 원조집 격으로 제사밥을 일반 식사 메뉴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한다. 1만원짜리 기본 헛제사밥을 주문했더니 돔배기(상어고기)를 포함한 전류와 나물 비빔밥, 소고기 무국 그리고 안동식혜가 나왔다. 상어를 사랑하는 오이군은 그 멋진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에 움찔했지만, 중국처럼 지느러미만 떼고 몸통은 다 버리는 게 아니고, 몸통도 낭비하지 않고 먹는다는 사실에 안도(?) 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주문할 때 이슈가 되었던 상어고기야 사실 뭐 그냥 가시 없고, 식감 좋은 생선이라 특이할 게 없었는데, 먹으면서 진짜 이슈가 되었던 건 바로 이 붉은 색의 안동식혜. 이걸 식혜라 부르다니, 나에게도 심심한 문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무가 발효되어 동치미 같기도 하고, 생강맛이 나서 칼칼한게 차가운 생강차 같기도하고, 매콤한 고추가루가 들어 있어 열무국수 같기도 하며, 달달한 밥풀이 동동 떠 있어 식혜같기도 한 이 음식을 안동지방에서는 식혜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하얀 식혜는 감주라고만 부른다고 했다. 맛이 호불호가 심할 것 같은데, 이미 우리 식탁에서도 의견이 양분되었다. 나는 개운한게 은근 마음에 들었건만, 오이군은 이게 밥반찬인지 후식인지 애매하다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것이다.



어쨌든 든든하게 배가 채워지니 다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여유롭고 화기애애해 졌다. 동네산책이고, 전국일주고, 세계일주고 뭐가 됐든 배가 불러야 풍경도 아름답고, 같이 있는 사람도 이뻐보이는 것 같다. 오래된 커플이 계속해서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선결 조건은 바로 든든한 뱃속에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아 안동댐으로 향했다.



아~ 상쾌해! (아~ 배불러서 기분 좋아~)


댐 넘어서 안동호까지 가볼까 했는데, 길이 오르막인데다가 자전거 도로가 댐에서 끝나버렸다. 아쉬웠지만 다음을(내일을?) 기약하며 댐을 따라 안동민속촌 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안동민속촌 이야기가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


유유자적 안동에서는 생활이 신선놀음

여행날짜 | 2015.10.07


하트를 꾹~눌러 집없는 커플, 감자, 오이의 여행을 응원해 주세요! ^^

신고

©

모든 사진과 게시글 내용은 포스팅 URL 링크 공유만 가능합니다. 스크랩, 복제, 배포, 전시, 공연 및 공중송신 (포맷 변경도 포함) 등 어떤 형태로도 토종감자 수입오이의 세계여행 블로그 소유자, 심상은에게 허가를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허가 신청방법은 다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용허가신청방법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