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녕, 오늘은 짐 빼는 날

컴백, 길위의 감자와 오이


10월 6일.

4년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서울 생활을 마치고, 감자와 오이는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원래 2년 정도 살 예정으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래 저래 하다보니 서울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네요. 바로 우리 귀여운 할머니 개 까비씨 덕분인데요, 까비는 감자의 가족이 태어난지 3-4달 됐을 즈음부터 기르던 반려견이예요. 한국에 들어오며 감자와 오이가 맡아 기르게 됐는데, 나이가 많아져서 손도 많이 가고, 점점 의타적이 되어 사람 곁에 꼭 붙어있으려고 하는 녀석을 바빠서 늘 집이 비어 있는 부모님 댁에 다시 두고 떠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까지 서울에 머무르자 했는데, 건강하고 씩씩해서 스무살까지도 살것 같았던 녀석이 올해 5월, 17살의 나이로 갑자스럽게 훌쩍 우리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했던 날이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생각했건만, 막상 닥치니, 영원한 헤어짐 앞에서는 준비란 것이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것만 깨닫게 되더군요. 좋기만 하던 우리집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어요. 구석 구석에 녀석이 누워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왜 그렇게 건강하던 녀석이 갑자기 신장염에 걸렸을까...

며칠을 눈물로 침대에서 데굴거리며 생각해 보니, 아마 녀석은 느끼고 있었던가봅니다. 감자와 오이의 마음 한구석에 슬슬 방랑의 본능이 일고 있었음을. 이제 우리를 놓아줄 때가 다가 왔음을...

그렇게 녀석이 개껌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서, 저희도 '언젠가'로 예정되어 있던 여행길에 다시 오르기로 했습니다. 

2015년 10월 6일, 감자와 오이의 한국 생활 제 2막, 365일의 한국여행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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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나의 집, 신도림 안녕! 

벌써부터 추억이 방울 방울


이사가는 날 아침, 텅빈 집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곳에 이렇게 정이 들 줄은 몰랐는데, 4년이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알게 모르게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곳은 저희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침실입니다.



이곳에 들어오면 대부분 이런 풍경이 펼쳐 졌어요. 침대 위와 아래에서 나란히 데굴 거리는 사랑스러운 것들. ^^



동향이라 아침에 햇살이 격하게 우리를 흔들어 깨웠음에도 이를 악물고(?) 가족 모두가 늦잠을 자곤 했던 곳입니다. 



이곳은 즐거운 추억이 가장 많은 거실이예요.



이곳을 가장많이 점령하고 시끌벅적 웃음소리로 채워 줬던 곰파 친구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제가 해외로 나갈때 까지 2-3번 만났을까 말까 했는데, 귀국 이후로 급격히 친해져 저희들의 서울 생활을 활기차게 만들어 줬던 고마운 친구들이예요. 오이군에게 한국녀자의 저력(?)을 보여줬던 파워풀 곰파. ^^;;



가끔 가족들과 소박한 식사를 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가뭄에 콩나듯 급 번개 식사 미팅이 이루어 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평범한 일상을 스페셜하게 바꿔주기도 하는 곳이었어요. 각종 기념일과 크리스마스에 어두운 조명과 촛불 몇개 켜면 고급 레스토랑 따로 갈 필요 없죠. 여기가 바로 우리 둘만의 로맨틱한 식사 장소가 됩니다. 물론 까비양이 킁킁거리며 주변을 맴돌기는 했지만 말이죠. ^^ 경치도 17층이라 창밖의 아파트 불빛을 야경이라고 굳이 우기면 뭐 그렇다고 봐 줄만 했답니다. ^^;;



아, 이곳에서 맨날 파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희집은 파티하우스가 아니고 평범한 가정집이기 때문에 ^^;

대부분의 시간은 이런 모습이었어요. 저녁에는 오이군과 함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봤고, 그 옆에는 늘 까비가 자고 있었죠. 커다란 빈백 사이에 까비 사이즈에 맞는 작은 빈백을 마련해 주었건만 늘 가장 큰 빈백을 차지하고 자는 바람에 오이군이나 저 둘중 하나가 바닥으로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는...-_-; 욕심쟁이 까비 할머니. 개껌 행성에서는 개껌 쌓아 놓고, 그 위에서 자고 있을것 같네요. ^^



베란다를 빼 놓을 수 없어요. 

이곳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던 건 우리 까비양이네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지만 깨어있을때는 늘 저런 모습으로 창밖을 구경하곤 했답니다. 처음 왔을때는 저러다 짖기도 하고, 으르렁 거리기도 하더니, 나이를 많이 먹으니 그냥 코를 실룩거리며 구경만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게 원예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기도 했답니다. 햇살아래 쑥쑥자라난 각종 허브가 깨알재미를 선사해 주었고, 가구가 별로 없어 삭막한 저희 집에 화사하게 꽃을 피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죠. 가끔은 생각치도 못한 각종 버섯들이 자라나 신기하기도 했어요. 호주로 40일정도 떠났다 돌아왔더니 화분을 온통 점령하고 있었던 노오란 병아리 버섯들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나름 까페같이 꾸며놓고, 차도 마시고, 간식도 마시며 낭만을 즐겨보려하였지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서 그렇게 자주 이용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이랍니다.



사다리차 아래서 어머니가 가져갈 짐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희는 언제 다시 한국에 정착해서 살지 모르기 때문에 가구를 전부 처분하기로 했거든요. 어차피 한국에 들어올 때 여기 저기서 얻은 것들이라 지인들에게 다 나눠주고, 일부는 팔고, 일부는 버리게 되었어요. 새것은 아니지만 쓸만한 것들을 버려야 하니 마음이 아파서 창밖을 자꾸만 쳐다보게 되네요. 

창밖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노라니 3년전 여름이 떠오릅니다.



유난히도 천둥 번개를 무서워했던 까비. 비만 오기 시작하면 어디 숨을 곳이 없나 찾느라 반쯤 정신이 나갑니다. 그러자 어느날 오이군은 비가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해 줘야한다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까비와 함께 산책을 나갔어요 ^^;; 우산을 쓰고 나가면 좋으련만 까비 혼자 젖게 할 수 없다며 본인도 저렇게 생쥐꼴로 까비와 함께 아파트 주변을 돌아댕깁니다. 베란다에서 그 모습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하도 어이가 없고, 우스워 남겨 보았어요.


숨막히는 절경은 아니지만, 도심속의 아파트는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선물했습니다.

장대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날, 빗줄기가 떨어지는 모습을 감상하고나면, 가끔 이렇게 멋진 무지개가 창밖으로 펼쳐집니다.



가을이면 따로 단풍놀이 갈 필요없이 알록달록 화려하게 물든 화단의 나무들이 한들 한들 손짓했고요,



겨울에는 함박눈이 한들 한들 떨어지며, 저희를 추운줄도 모르고 베란다에 얼어 붙어있게 합니다.



그리고 건물 뒷쪽 저편으로 펼쳐지던 노을까지.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알게해줬던 창밖의 풍경들이 가끔 그리울 것 같네요.



저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건 각자의 방이예요. 재택근무를 하는 저희는 대부분의 낮시간을 각자의 방에서 보냈거든요. 아이들이 쓰던 방인지 군데 군데 삐뚤 빼뚤 그림이 그려져있던 방이 오이군의 사무실이었습니다. 오이군은 아침이면 잠옷을 입은채로 이방으로 출근을 했고, 까비는 겨울이면 당연한 듯 그의 무릎에 앉아 체온을 느끼며 잠이 들었습니다.



가장 작은 방은 제가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실로 사용을 했는데요, 워낙에 많은 재료들을 쌓아놓고 지냈던지라 늘 쑥대밭인관계로 사진한장 남아있지 않네요. 살림을 다 빼고나니 여기가 이렇게 깨끗한 곳이었나 싶어요. 이 블로그의 대부분의 포스팅도 다 이 공간에서 탄생했고요, 수십만장의 사진들도 다 이곳에서 보정되고, 작업되었습니다. ㅎㅎ



우리에게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해줬던 부엌을 빼놓을 수 없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어요 ^^



뭐 딱히 요리에 취미는 없는지라 음식은 보통 간단한 한그릇 음식이었지만, 모양만은 이쁘게.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잖아요. ^^;

까비양이 수시로 순찰을 돌고 다녔더랬죠. 구석 어딘가에 떨어진 음식은 없나. 식탁위에 먹다 남은 음식을 어떻게 떨어뜨려 볼 방법은 없나.



까비양과 함께 사용을 해서 하루에도 세번이상 청소하 해야했던 욕실. 청소하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녁에 샤워를 하며 행복한 나의 집 노래를 흥얼거리게 했던 곳입니다. ^^



아파트단지 곳곳에도 추억이 가득 묻어있어요. 날이 좋을때면 햇살 좋은 뒤뜰로 나가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피크닉을 했고요, 아파트 정자에서 소박하게 생일파티를 연 적도 있네요. 아파트 화단을 가장 좋아했던건 다름아닌 까비예요. 구석 구석 돌아다니며 정성스레 순찰을 돌았죠. 까비가 떠난지 몇달이 지난 지금도 아파트 땅속 어딘가에는 까비의 흔적이 남아있을거예요. ^^;



여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바깥활동이 많지 않은 저희가족에게도 계절의 변화를 가르쳐 주기도 했답니다.




조금 멀리 나가 감자, 오이, 까비의 단골 나들이 장소 안양천도 빼놓을 수 없죠.

뚜벅이 커플이라 이곳이 까비를 데리고 가장 멀리 나갈 수 있는 자연이었어요. 조금이나마 넓은 들판에서 뛰놀게 해주고 싶어서 한달에 한두번 정도 데리고 갔었는데, 떠나기 이주전까지도 씩씩하게 혼자서 이 먼길을 걸어갔던 할마씨의 엉덩이가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생각해보면 이때도 몸이 많이 안좋았을텐데, 나들이 간다는 즐거움에 열심히 느릿느릿 끝까지 제발로 걸어갔던걸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 집니다. 동물들은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참 안타까와요. 그렇게 아픈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많이 좋아하는 곳들을 자주 데려가 줬을텐데...



네번째 사진 by 그린데 ^^;


나간김에 조금더 멀리 가서, 울 동네까지 술한잔 기울이자며 찾아와 준 여러 친구들과 인생을 논했던 신도림역, 언제봐도 어제본듯 정겨운 어릴적 친구와 우쿠렐레들고 목요일마다 웃음꽃 만발했던 목동역, 시공을 초월해서 나이를 잊게 해 줬던 홍대앞, 마음껏 침튀기며 여행이야기와 먹방으로 밤을 불태웠던 종로앞...이제 또 언제 돌아와 이 모든 것을 즐기게 될까요. 지금은 실감이 안나는데, 몇년 후 이 사진들을 들춰보며 서울의 기억을 그리워 하겠죠.



출발! 대한민국 전국일주, 그 첫번째 목적지는 안동

엘컴 투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옛이야기하며 향수에 젖었더니 조금 분위기가 쳐졌죠?

사실 이삿날 아침은 좀 더 활기차고 의욕과 기대에 넘쳐있었답니다. 남은 짐을 차뒷자리와 트렁크에 가득싣고 룰루랄라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인 안동으로 출발했어요. 저희가 일을 다 때려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속 돌아다닐 수는 없고, 단기 월세로 작은 집을 빌려서 한 도시에서 2-3개월씩 머무르기로 했는데, 그 첫번째 목적지는 안동이었거든요. 오래전에 오이군과 이 주변을 여행하고 낙동강 주변의 풍경과 농암종택, 도산서원, 하회마을의 절경에 홀딱 반해서 한번쯤 길게 머물러 보고 싶었습니다. 더없이 아름다웠던 청량산과 주산지로 유명한 주왕산이 가까와서 가을 단풍놀이 가기에도 좋을 것 같았고 말이죠.



그런데, 뚜벅이 커플에게 무슨 차냐고요?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무래도 이동이 많으면 자가용이 필수이겠다 싶어 새로운 가족을 영입했습니다. 저희 양파 소개드릴께요 ^^ 실내가 넓어 짐싣기도 좋으면서, 경차라 실용적인 레이가 선택되었답니다. 처음 산날 이름을 뭘로 지어줄까 고민하며 차에 올라탔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이 흘러나오는게 아니겠어요? 이건 운명이다 싶더군요 ^^; 그렇게 야채가족에 합류한 양파. 앞으로 잘 부탁한데이~ ^^



여행에 자전거가 빠질 수 있나요. 뒤에 거치대를 달았는데, 안동까지 튼튼하게 매달려 있기는 했지만 윗 고리 부분에 코팅이 벌써 벗겨졌더군요 ㅠ_ㅠ 이건 해결방법을 찾아야 할 듯.



저희의 여행 첫날에 대한 기대는 그랬습니다. 

우쿠렐레를 딩가 딩가 퉁기며, 휴게소에 들러 고소한 통감자로 배를 채우고, 기분좋은 가을햇살아래 웃음꽃을 휘날리며 달려가는 안동가는 길.


그런데, 현실은 이랬습니다.

아침에 남은 짐 마저 싣고, 전셋값 빼려고 약속시간에 부동산에 갔건만 새로 이사오는 사람이 한시간 늦게 도착하고, 전세값도 집주인과 세입자가 나눠 입금해주는 바람에 은행을 왔다갔다 했으며, 일정한 거주지가 없어지는 관계로 경기도에 계신 부모님 댁에 들려 주소 이전했는데, 아버지 도장이 필요하대서 다시 집에 가야 했고, 오이군은 외국인이라 동사무소가 아닌 시청으로 가라해서 시청에 들리고 나니 저녁 6시가 다 되었더군요 -_-; 

뭐...예상보다 많이 늦긴 했지만 그래도 귀찮은 일 다 끝났다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김밥을 사들고, 안동으로 향했습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자전거가 잘 실려 있나 조마 조마 쳐다봐야 했고, 짐이 다 실리지 않아서 무릎에는 무거운 상자하나가 놓여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즐거웠어요. 아~이제 진짜 떠나는구나. 그런데, 그 즐거움도 잠시. 배고파서 허겁지겁 김밥을 먹다가 네비게이션이 떠드는 소리를 못들은거 있죠. 어느새 우리는 엉뚱한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서울로 향하고 있더군요. -_-; 네네. 저는 길을 잘 모르고, 오이군은 한국말로 떠드는 네비게이션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렇게 한시간을 헤메다 진짜 안동으로 출발한 시각은 저녁 7시반. 화창한 가을 햇살은 이미 저편 유럽으로 넘어갔고, 네비게이션이 예상한 도착시간은 10시 20분. 그것도 쉬지 않고 달렸을 때 말이죠.

이미 잔뜩 지쳐버린 우리는 휴게소에 들려 통감자를 먹는 대신 잠시 쪽잠을 청했습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안동에 도착한건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우쿠렐레는 짐 어딘가에 박혀 오는 동안 건드려 보지도 못했네요. 로맨틱한 드라이브대신 피곤에 쩔은 오이군과 잠깨는 껌을 질겅거려가며 겨우 겨우 도착했습니다. 나이는 못속여요. 옛날에는 밤새 놀아도 다음날 멀쩡하게 정색하고 출근했었는데, 이제 10시만 되면 온몸이 굉음을 내며 삐걱 거립니다.


어쨌든 이렇게 파란만장한 저희의 국내 거주 여행이 막을 올렸습니다. 이제 3개월동안 안동주변과 경상북도 이곳 저곳의 여행지들을 차근 차근 소개해 드릴께요. 앞으로 1년동안 이어질 감자, 오이 그리고 양파의 국내여행이야기 많이 사랑해 주세요. ^^


※ 다음 이야기 부터는 원래대로 일기체로 바뀝니다.^^;

※ 이곳에 초상권 동의 없이 등장하게 된 모든 가족, 지인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억울하시면 놀러오세요. 찜닭으로 퉁치게...^^;;


길위의 감자, 오이 그리고 양파

여행날짜 | 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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