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떠나는 아빠 딸 낚시 여행

낚시는 내 취미가 아닐지언정...


지난 며칠 진정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섰는지 날씨가 엄청나게 화창했다.

오이군은 스위스에 있고, 까비도 우주여행 갔고, 이번달엔 한지 주문도 없고, 기사 요청 들어온 건 친정집에 가서 써야겠다며 낼름 노트북만 챙겨들고 친정으로 피난을 왔다. 왜 피난인고 하니, 집에 있으면 구석 구석 까비가 보여 혼자 청승떨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니 서울에서 그리 많이 떨어진 곳도 아닌데, 벌써부터 향기가 다르다. 푸른 하늘과 녹음이 짙은 산에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게 피어 동네 방네 은은한 향기가 퍼져나간다. 오랜만에 누가 해준 밥 먹으면서 꽃향기 날리는 곳에 앉아 차분히 글쓰니 좋구나. 

아, 뭐 사실 그렇게 차분하지는 않았다. 제일 늦게 가족에 합류했으면서 왕노릇하는 토란이(친정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오랜만에 낮에도 사람이 있으니 신이 나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놀아달라며 공을 물어 오고, 무릎에 앉아있고, 주변을 맴돌며 뛰어다녀서 은근히 뭔가 분주했다. 어쨌든 뭐 청승맞은 것 보단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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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두창 저수지의 가마우지와 왜가리


그리고 아버지가 쉬시는 날엔 오랜만에 아빠와 단둘이 낚시도 다녀오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오랜세월 자타 공인 낚시 매니아신데, 여전히 휴일엔 꼭 혼자서라도 낚시를 가신다. 따라서 나는 걸음마 보다 낚시를 먼저 배웠을 만큼, 어릴적 사진을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에도 낚시터에 앉아 있다. 부모님은 새벽 4시에 자고있는 나를 들쳐업고, 낚시터로 향하셨다고 하니 그 열정이 옛날부터 대단했던 모양이다. 



 두창 저수지 낚시터. 인당 1만 5천원의 입어료가 있는데, 낚시를 하지 않는 사람은 내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게다가 날씨도 좋으니 아버지께서 쉬는 날을 그냥 넘어가실리가 없었다. 어릴적엔 전국의 낚시터로 매주 끌려 다녔지만, 요즘엔 부모님 얼굴뵙기도 하늘의 별따기라 낚시갈까 하고 물으시는 아버지의 질문에 두말않고 OK. 친정에서 가까운 용인의 두창저수지로 향했다.

이곳은 크지 않은 저수지로 물이 딱히 맑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주변 풍경이 나름 괜찮아서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와도 좋을 법한 곳이다.



 물 가운데 있는 수상좌대에 앉아 쉬고 있는 왜가리


물가에 앉아 낚시를 하거나 물가의 좌대를 빌려도 되지만, 조금 더 편리하게 낚시를 하고 싶으면 수상좌대를 이용할 수 있다. 낚시할 수 있는 발코니와 밤낚시를 할때 따뜻하게 쉴 수 있는 전기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에는 TV, 에어콘, 냉장고가 있고 가격은 2인 기준 10만원. 낚시하는 사람이 한명 추가될 때마다 입어료 1만 5천원이 추가된다. 낚시를 하지 않는 사람이나 아이들은 입어료가 없으니 가족단위 여행으로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물가의 좌대에 자리를 폈는데, 장비를 펴는 동안 이런 불상사가 발생했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그만 퉁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푹 빠져 버린 것.

꺄울. 이 물에서 그다지 수영하고 싶지 않은데 이를 워째! 



 어우. 나도 저 왜가리처럼 이 흑탕물에 발을 담그고 건너가야 하는건가? 생각만해도 오싹...


나는 놀라서 우리는 이제 물위에 갇혔다며, 배를 부르든 119를 불러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아버지는 느긋하게 물에 좌대를 고정하느라 박아둔 쇠파이프 기둥을 뽑아 오신다. 바람도 부는데, 그러면 더 물 가운데로 떠내려가는 것 아니냐며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그걸로 바닥을 짚으며 노를 저어 좌대 전체를 다시 물가로 끌고 가셨다. 베테랑의 여유와 노하우 ^^



다시 물가로 돌아와서 주변에 무너져 있던 판자(간이 다리의 잔해들)를 얹어 다시 다리를 완성했다.

이런, 우리 아부지 너무 든든 하시네 ^^ 이렇게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하시다니~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는 재난 영화에서 다시 평화로운 낚시 방송으로 전환. 나는 텐트를 치고 누워 하늘을 보며 신선놀음을 했고, 아버지는 낚시 삼매경에 빠져드셨다.



평소같으면 나도 낚싯대를 하나 폼으로라도 펴 놓는데, 오늘은 웬지 떡밥도 만지기 싫고, 그냥 한없이 게으르고 싶다. 그래서 그냥 경치를 구경하는데, 바로 옆에 왜가리 두마리가 나란히 앉아있네? 이들도 낚시를 하는건지, 아님 나처럼 멍하니 먼산을 보는건지.



잠시 한눈을 팔다가 같은 자리를 돌아보았는데, 왜가리가 고양이로 변신을 했다. 

오. 영험한 동물이로다.



물고기가 많은가?

낚시대엔 전혀 입질이 없는데, 수면에서 웬 고기들이 이렇게 첨벙 첨벙 뛰는지. 어릴적에 아버지가 뛰어 오르는 고기는 잡히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물에 사는 고기들이 전부 뛰는 중인가보다. 오늘 우리는 구경도 못한 물고기를 왜가리는 가볍게 한마리 낚아채 유유히 날곤했다. 아버지는 은근히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시고... ^^;

그나저나 왜가리가 어찌나 많은지 왜가리의 다양한 포즈를 담아보네.



두창저수지 주변 풍경

나른한 초여름의 어느 오후


 원래 여기까지 물이 차면 이곳이 명당 포인트라는데, 수위가 엄청 낮아져서 물에 잠겨야할 부분이 땅위로 한참 올라왔다


텐트에 누워 잠시 잠이 들었다가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에 깼다.

뭐냐...어제까지 푸른 하늘이 눈부시더니 이게 웬일이람. (이 다음날부터 또다시 맑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사실 비가 조금 온다고 딱히 문제될 건 없었는데, 아버지는 파라솔을 펴야하나 접고 집에 가야하나를 두고 고민을 하신다.


에이, 비 좀 맞는다고 우리 안녹아. 옷은 좀 젖겠지만, 사람은 생활방수는 되, 아부지. ^^

허허. 얘가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니더니 느긋해졌네.

그런가? 예전에도 맨날 비맞고 돌아다녀서 엄마한테 혼났던거 같은데... 하긴. 우산쓰기 싫어하는 오이군 영향도 좀 있고 ^^ (우산을 쓰지 않는 남자 읽기)


어쨌든 그렇게 잠이 깨서 저수지 주변을 좀 돌아보기로 했다.




물에 잠겼어야할 부분이 드러난 곳에 있는 마른 수초들이 푹신해서일까? 자세히 보니 군데 군데 고양이들이 나른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녀석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일세. 도시 길고양이들보다 팔자가 열배는 더 좋아보인다.



저수지 둘레를 따라 걷다보니 석탑이 하나 나온다. 두창리삼층석탑이라는데, 신라후기나 고려초기때의 유물로 추측하고 있다. 뭔가 낚시터에 이런게 있는 것이 생뚱맞게 느껴져서 한컷.



아카시아.

어릴때 초등학교 뒷산에 많이 피어서 향기를 맡으니 여러가지 향수가 몰려왔다. 한국을 떠나있었던 7년, 그리고 돌아와서 도심에 사는 3년 반, 근 10여년간 이꽃을 잊고 살았다. 어렸을 때 엄마따라 쪽쪽 꿀도 빨아먹곤 했었는데. 언제봐도 꽃이 핀 모습이 참 푸짐하다.



이건 처음 보는 꽃인데, 꽃이 새끼손톱보다 작다. 가까이서 찍어 보니 꽃잎이 참 신기하게 생긴 녀석일세.





꽃들의 향연. 




그리고, 낚시터 주인이 키우는 개 두마리. 한녀석은 사진기를 꺼내는 순간 이유없이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다.

이녀석들은 들고양이들처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뭐...좀 가려울 것도 같지만, 자유롭게 뛰어놀며 자란다. 동물은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아파트에서 자라 마음껏 뛰놀지 못한 까비가 또 마음에 걸리네. 지금은 어딘가 개껌으로 만들어진 행성에서 날아다니고 있으려나...




왜가리는 정말 원없이 보고 간다. 다양한 포즈는 물론, 다양한 배경으로. 늘 멀리서만 봐서 잘 몰랐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실제로 엄청 큰 새였다. 보통 80cm에서 1m 정도라고. 사진을 찍으려고 조금 가까이 다가갔더니 도망가 버렸는데, 날개를 쫙 펴니 위협적일만큼 크더라는.



그...그래. 워낙 흙바닥, 풀밭에서 데굴거리니 가렵기도 하겠다 ^^;



오잉?! 이게 뭐시래?

여기 저기 둘러보다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경치좋은 화장실. 순간 중국인 줄 ^^; 

화장실을 교체하는 중인가본데, 이렇게 칸막이만 수거하고, 아직 아랫 부분이 남아 있어서 아카시아 꽃향기와 어우러져 오묘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우리 아부지는 예나 지금이나 꼭 화장실 근처에 낚시할 자리를 펴신다. 내가 어릴적엔 그것 주변에 고기가 모인다는 이론을 펼치셨는데, 아내와 자식들의 거센 항으로 포기하시는 듯 했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낚시할 자리를 펴고 보면 주변에 화장실이 있는거다. 가끔은 알고 그러시겠지만, 정말 몰랐다 하더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어김없이 숨겨진 화장실이 발견되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유료 낚시터를 와서도 이렇게 화장실이 지척에 있는 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 -_-;



 강태공, 나의 아버지. 오늘 어망은 텅 비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운 하루다



 이녀석들은 오늘 물고기들이 막 튀어서 수확이 꽤나 좋다. 왜가리가 부러울 줄이야...



아빠와 화장실

낚시는 똥통 옆이 잘되는거야!


한참 이리 저리 낚싯대를 던져 보시더니, 결국 아버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여긴 포인트가 아닌가봐. 옮기자!



다른 포인트를 찾아 저수지 둘레를 돌기 시작했다.

사방에 싱그러운 초여름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녹음이 짙어진 산, 그 위를 하얗게 뒤덮은 아카시아, 연둣빛 이끼가 잔뜩 낀 늪. 생명력이 넘치는 풍경.




사실 나의 사진 중독증은 아빠에게서 내려온 것이다.

엄마도 동생도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빠만큼은 어딜가도 제일 먼저 포즈를 취하시고, 우리에게도 어서 자세를 잡으라며 재촉하신다. ^^; 싱그러운 길과 탐스러운 꽃이 예뻐서 셔터를 누르고 있었더니 어느새 저만치 가셔서 혼자 포즈를 취하시는 아버지. ^^

사진엔 주인공이 있어야지~ 자, 찍어봐 ^^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사진찍기를 무척 좋아셨던 것 같다. 필름 카메라라 현상비가 비쌌을 텐데도 여행지에서는 사진을 아낌없이 찍으셨다. (앨범에 꽃혀있는 사진 수를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나와 아버지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찍는 것이 좋고, 아버지는 찍는 것과 찍히는 것, 둘다 좋아하신 다는 점.

아침에 부스스한 채로 나오는 바람에 별로 찍힐 몰골은 아니었는데, 아빠의 황소고집에 밀려 나도 어정쩡하게 자세를 잡아보았다. 요렇게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니 나는 아빠를 참 많이 닮았구나.



아버지는 결국 저수지를 반바퀴 비잉 돌아 인적이 드문 찻길 아래로 포인트를 고르셨다. 뭔가 살짝 으슥한 곳을 고기들이 좋아한다고 옛날부터 아버지는 늘 이런 곳에 자리를 잡곤 하셨는데, 사실 이런 곳을 좋아하는 부류가 또 있었으니...

바로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곳 주변엔 간이화장실이 놓여있거나 그것이 없다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자연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닫게 된다. 고기도 화장실가는 사람도 인파를 피해서 모이게 되는 것. 

흠...예전엔 늘 그랬는데, 여전히 그러려나?

그러나 두려워서(?) 주변을 세세히 둘러보고 싶지는 않다.



풍경이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데, 그런 걱정일랑 떨쳐버리고 경치 감상이나 하자.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쪽에서 콰르르릉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이번 비는 지나갈 모양이 아닌 듯 하네.

결국 다시 자리를 편지 한시간도 채 못되어서 제법 굵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향해 투덜거리며 낚싯대를 접고 말았다. -_-;

에잇, 매일 날씨가 화장하더니만 꼭 맘먹고 나오면 이러더라.



아버지와 세트로 궁시렁거리며 차로 달렸는데...앗?!

이것은...바로 그 아버지와 함께하는 낚시의 징크스, 퍼세식 화장실!

아까 내려올 땐 보지 못했던 화장실이 돌아가는 길에는 눈에 확 띄었다.

그것도 무슨일인지 초토화가 되어 위가 뻥 뚫린 녀석으로.


그럼 그렇지, 화장실이 빠지면 아빠와의 낚시가 아니지~

오늘도 그렇게 아빠는 몇개 되지도 않는 화장실 포인트를 동물같은 감각으로 찾아내셨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오늘은 고기통이 비었다는 것.



암~화장실이 없으면 낚시할 맛이 안나지! 

그런데, 거기서 고기를 잡으면 먹을 맛이 안나지 -_-; 

여행날짜 | 2015.05.19



INFORMATION


두창낚시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호수로 105 두창낚시터매점 

031-339-3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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