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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Jeju | 제주도
달을 닮은 다랑쉬 오름, 오름의 여왕을 만나다
2015. 5. 23. 18:57

제주 아름다움의 완성은 오름
오름에 오르지 않고, 제주를 다녀왔다 말하지 말라!

 

다랑쉬 오름 동쪽에 있는 아끈 다랑쉬 오름

 

이번 제주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컷던 것이 바로 오름이다.

많은 이들이 오름에 올라야 진정한 제주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 했는데, 나는 지난 3번의 제주행에서는 오름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5년전 송악산에 오르긴 했으나 그날 날씨가 너무 습하고 더워서 제대로 된 기억이 별로 없다. 땀에 흠뻑 젖은 티셔츠와 좀비같이 걸어다니던 오이군이 송악산 기억의 전부 ^^;)

 

 

 

 

 

그래서 이번에는 여러 오름 중 정상에서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다랑쉬 오름에 오르기로 했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성산 일출봉과 제주 동부의 아름다운 바다를, 서쪽으로는 크고 작은 여러 오름과 그 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산 허리까지는 울창한 삼나무, 편백나무 숲이라 조금 어둡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향기가 코끗에 퍼지며 상쾌한 느낌이 온몸에 전해졌다

 

다랑쉬 오름은 비자림과 용눈이 오름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인기있는 곳이라 주변에 음식적이나 매점이 있을 줄 알았건만, 푸르른 제주 들판에 그야말로 자연미 넘치게 자리잡고 있다. 오름 등산로 입구에 안내소와 자연분해식 화장실이 근처에 있는 건물의 전부. 배가 고팠던 우리는 결국 오름까지 다 왔다가 온 길을 되돌아가 점심을 먹고 와야 했다. 산굼부리쪽에서 다랑쉬 오름으로 온다면, 차로 15분쯤 떨어져 있는 웅스키친이나 로터리식당이 근처에 있는 가장 가까운 음식점이니 참고하시기를.

 

나의 솥뚜껑만한 손 절반에 육박하는 철쭉

 

등산로는 처음에 계단으로 시작해서 멍석이 깔린 길로 이어진다. 산 사이로 마구 들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로 정확하게 길을 표시해 두었는데, 길을 따라 철쭉을 심어 놓아 마침 한창 물이오른 꽃들이 화사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나저나 여기 철쭉 크기가 엄청크네? 아파트 화단에 피어있는 꽃의 1.5내지는 2배까지 되어 보인다. 

 

10분 정도 오르면 보이는 풍경이다. 차례로 아끈 다랑쉬 오름, 은월봉, 식산봉 그리고 성산 일출봉

 

음...피톤치드가 쏟아져 나와 머리는 맑았지만, 뭐 저질 체력을 갑자기 고급으로 바꿔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새 숨이 턱에 차서 열심히 경치 구경에 집중하는 척 했다. 롱다리 오이군은 대충 걸어도 나보다 오르는 속도가 훨 빠르기 때문에 늘 앞서 걸으며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한다. 그럴때면 나는 못들은 척 뒤돌아 사진찍기에 집중한 척 넘어가는 숨을 고른다. ^^;

그런데 사실, 이곳은 힘이 든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와서 나도 모르게 자꾸 되돌아 보는 것도 있었다. 정말 소소한 노력으로 얻는 보상이 너무 커서 미안할 정도.

 

오름의 남쪽으로는 작은 오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풍력 발전기들이 보인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노오란 꽃이 잔뜩 매달린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이날은 옅게 구름이 낀 날이었는데도 제주의 푸른 하늘은 그 빛을 잃지 않고, 노란 소나무 꽃과 대조를 이루어 도시의 회색빛에 물든 오이와 감자의 눈을 황홀하게 위로해 주었다.

 

사방에 송화가루가 날려 가여운 거미들은 요즘 장사하기 힘들어 보인다

 

소나무들이 점차 사라지고 억새숲이 보이기 시작하면 정상이 가까와 왔다는 신호다. 조금만 더 힘을!

 

트레킹 하기에 좋은 계절, 4, 5월.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덕에 가벼운 옷차림이 가능하고, 멈춰서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피로를 풀어준다. 거기에 제주의 맑은 공기까지 합세하니, 숨은 조금 차도 걷는 한걸음 한걸음에 콧노래가 절로 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이 가까와진 모양. 주변에 나무가 사라지고, 억새가 한들 한들 손짓을 하기 시작한다.

 

 

 

 

 

 

오름의 여왕에 반하다
정상, 산이 주는 선물

 

오이, 다랑쉬 오름에 오르다. 셀카찍는 남편 도촬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싱그러운 자연에 푸욱 빠진 오이군도 기분이 꽤 좋은 모양이다. 안찍던 셀카를 다 찍는 것을 보니. 푸른 하늘과 연둣빛 땅, 거기에 적색 계열의 티셔츠는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

 

위 셀카의 결과물

 

 

요즘들어 살이 더 쪄서 그렇게 긴 등산도 아니었는데, 어찌나 힘이 들던지. 약 30분이면 충분히 오르는 거리지만 사진을 엄청나게 많이 찍었더니 40분쯤 걸린 것 같다. 길이 꽤나 가팔라서 오를때 발목도 많이 꺾어지다보니 뒷다리도 땡긴다. 정상에 도착하니 느므 느므 반가와서 기쁨의 점프샷 한 컷.

 

 

다랑쉬 오름은 깊게 패인 분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 둘레가 1.5km에 깊이는 110m로 백록담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 분화구에 전해져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는데, 거신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쌓아 나르며 한줌씩 뿌려 놓은 것이 오름이 되었는데, 다랑쉬오름은 쌓아 놓고 보니 너무 높아 혼자 도드라져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낮아지라고 주먹으로 한대 퍽 친것이 패여서 이렇게 깊은 분화구가 생겼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은 꽤나 터프한 신이었던가보다. ^^;

 

오이군은 매끈하게 빠진 분화구를 보더니 안쪽으로 썰매타고 내려가고 싶다며 기웃 기웃 난리가 났다. 그걸 보는 나는 또 개구장이 아들을 둔 엄마의 마음으로 조마 조마 하다. 정말 등에 맨 배낭이라도 깔고 미끄러져 내려갈 기세. 아놔, 진짜, 애도 없는데, 남편 (한국)말 가르치랴, 말썽 부릴까 조마 조마 하랴 아들둔 엄마가 하는 건 다 하게 되는 듯 -_-;

 

 

산을 오르는 내내 어찌나 나비가 많던지 요정의 숲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오르자 마치 천국 입성을 환영하는 축하단처럼 수많은 나비들이 우리 주변을 맴도며 화려한 군무를 선보였다. 정말 환상적인 기분이이었는데...사진속엔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그냥 날벌레로 보이기에 앉아있는 녀석으로 대체 ^^

 

 

오름의 정상은 비탈을 타고 올라온 길 끝이 아니라 거기서 북쪽으로 분화구 둘레를 타고 조금 더 걸어야 한다. 분화구 둘레를 한바퀴 비잉 돌아 볼 수 있는 길 나 있는데, 한걸음 한걸음 전진할 때마다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이번 여행도 사진 정리하느라 며칠밤 새겠구나 싶었었지만, 셔터는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돋오름과 그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비자림

 

저 오름들 사이로 한라산이 웅장하게 보여야 하는데, 아쉽게도 옅은 안개가 끼어 있어 상상속의 산처럼 보이지를 않았다

 

아래를 찬찬히 내려다 보니 특이하게 생겨 눈에 띄었던 제주도의 묘지. 무덤주위를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 놓았다

 

 

 

 

 

 

달을 닮은 다랑쉬 오름
추석 달맞이는 다랑쉬 오름에서

 

 

옅은 안개때문에 한라산이 안보여서 아쉬운 대신 원근감이 확실하게 살아나서 매우 입체적인 사진이 나왔다.

 

 

저 멀리 나무 한그루가 독야청청하게 서 있기에 오이군이 그 나무 아래 서 있으면 멋진 장면이 연출될 것 같아서 먼저 가서 포즈를 취해 줄 것을 부탁했다. 거리가 멀어서 무지 큰 나문줄 알았는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오이군보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는 ^^;;

 

분화구 아래 누군가 쌓아 높은 돌탑 덕분에 더욱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다랑쉬 오름은 굼부리(분화구의 제주도 방언)가 둥근것이 달을 닮아 달랑쉬 오름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민간 어원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던 정말 분화구가 둥근 것만은 틀림없다. 한자 차용 표기로 지도에는 월랑봉이라 표시해 놓은 경우가 많은데, 순수 우리말로 다랑쉬 또는 도랑쉬오름이 원래 이름이라고 한다.

언어학자들은 다랑쉬의 다는 높고 고귀하다는 뜻으로 어원이 사실은 달과 전혀 관계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어쨌든 요즘엔 추석에 다랑쉬 오름 아래서 달맞이 행사가 열린다. 제주도의 맛난 고기국수와 흑돼지 바베큐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니 추석연휴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찾아볼만하다.

 

X자로 심어 놓은 삼나무가 인상적인 손지봉. 마치 보물을 묻어 놓은 곳의 위치를 표시해 놓은 것 같다

 

 

그런데, 손지봉 옆을 보니 땅위에 뭔가 신기한 자국이 나 있다. 제주도에도 미스터리써클이 있나? 어찌보면 비행기 활주로 같기도 한데, 잔디가 잔뜩 자라 비행기가 달리긴 무리인 듯 하고, 이건 대체 뭘까?

나중에 들으니 이곳에 온천이 나와 송당온천관광지로 개발되기로 했던 모양인데, 10년간 분쟁이 휘말려 결국 백지화 됐다는 듯 하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그곳을 계획했던 업체에게는 미안하지만, 안도의 숨이 나왔다. 다랑쉬 오름 주변은 온통 자연이 푸르르고 아름다운데, 여기에 떡하니 온천장과 관광호텔, 테마파크따위가 들어서면 그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자연은 자연으로 남아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송이라 불리는 분석이다. 화산이 폭발할때 생기는 2-4cm크기의 작은 돌로 구멍이 많고, 산화된 철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색이 붉거나 검다고 한다. 오름 바닥을 자세히 보면 온통 이런 돌들로 가득하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때 보다 훨 수월했다. 오름이 워낙 가파르기때문에 길을 지그재그로 내 놓았는데, 매번 길이 꺾어지는 모퉁이마다 올라오던 사람들이 가쁜 숨을 고르며 서서 말했다. 

거의 다 왔나봐. 이번 길만 꺾어지면 정상인 것 같아. 

푸흡. 우리도 올라오며 매 포인트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아직 절반도 못 올라왔다는 불편한 진실 ^^; 그래도 희망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구태여 오지랍을 발휘하며 그들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다음 길 모퉁이에 서서 그들은 또 말하겠지. 

이번이 마지막 고개인것 같아. 조금만 더 힘내!

 

다랑쉬 오름 가는 길에 보이는 아끈 다랑쉬 오름과 갯무꽃. 노오란 유채를 기대했는데, 생각치도 못한 갯무꽃이 가득 피어 청순미를 발하고 있었다

 

이번 오름행으로 우리는 새롭게 제주의 아름다움에 풍덩 빠져들었다. 사실 매번 올 때마다 북적이고, 관광지 냄새 퐁퐁나는 제주에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날씨까지 좋은 적이 없어 제주에대해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서야 새롭게 그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한참이나 뒤늦게 제주에 살고 싶어라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살그머니 동참해 본다.

 

아~감자와 오이도 제주에 살아 보고 싶어라.

 

 

 

       

제주 여행의 꽃은 오름인개벼

여행날짜 | 2015.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