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전체가 연분홍빛, 진달래에 파묻히다

봄이 완연한 강화도 풍경


우리나라의 봄을 대표하는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개나리와 진달래가 아닐까?

요즘엔 벚꽃이 위상을 떨치며 전국민을 사로잡고 있지만, 사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벚꽃보다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먼저 인사를 건네며 봄을 알리곤 했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옆에 있어서인지 개나리와 진달래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지난번 응봉산 개나리 축제에서도 언급했지만 색도 어딘가 촌스럽다 느껴져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올해 그 두꽃의 숨은 매력을 한번 제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개나리 노란 응봉산 이야기를 보시려면 클릭



물론 오이군에게 가장 한국적인 봄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국 토종꽃인 진달래가 그득한 산수화 같은 풍경. 그래서 4월 넷째주에 사실은 나조차도 달력에서나 봤지 실제로 본적은 없는 고려산 진달래를 찾아 강화도로 향했다. 



2015 고려산 진달래 축제


기간 | 4월 18일 - 30일 (13일간)

장소 |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광장부터 고려산 정상 진달래 군락지까지

가는 법 | 영등포 신세계에서 88번, 신촌 아트레온 극장앞 3000번, 일산 호수공원 96번, 인천 터미널 70, 700, 800번, 부평역 90번 타고, 강화터미널에서 하차 후 1, 14, 33, 35, 36, 38번 버스를 타고 축제장으로 간다. 


버스가 자주 있지 않으므로 강화 터미널에서 시간표를 확인한다. 특히 집에 돌아오는 버스 시간표를 꼭 체크해 둘 것. 평일엔 되돌아 오는 차를 고인돌광장 근처에서 타기를 추천한다. 그 이 외의 등산로 아래는 버스가 정말 드물게 다닌다. 주말에는 특별편이 운행된다고 하나 이것도 꼭 터미널에 문의해 시간을 체크해 두자. 우리는 버스가 오지 않아서 히치하이킹을 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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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한발 늦게 오는 강화도 산길따라

이곳은 아직도 벚꽃이 한창


고인돌 광장의 축제 행사장. 먹거리 장터를 제외한 행사와 체험시설들은 주말에만 운영된다


사실 길을 나서면서도 살짝 반신 반의 했었다. 4월 말에 아직도 진달래가 있단 말이야? 서울은 이미 벚꽃은 물론 진달래, 개나리까지 내년을 기약하고, 철쭉이 동네 방네 피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철쭉도 예전엔 색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이군이 이꽃이 뭐냐며 신기해 하고 좋아해서 갑자기 나를 뿌듯하게 해주는 꽃이 되었다. 가지와 잎이 보이지 않도록 빽빽하게 피어나는 철쭉을 처음 본 오이군은 그 화사한 모습에 마음을 뺐긴 모양이다. 자주 찍지 않는 사진까지 찍어가며 스위스의 가족들에게 자랑질을 한다. 하긴. 흔해서 잊고 살 뿐 나도 다른 나라에 놀러가서 처음 빽빽하게 피어난 철쭉을 봤다면 호들갑떨며 사진기를 들이댔겠지.



영등포에서 12시쯤 버스를 타고, 강화 터미널에 도착했더니 시계가 1시 40분을 가르킨다. 평일이라 막히지 않았는데도 워낙 먼거리를 구석 구석 돌아 돌아 와서 시간이 많이 걸렸네. 주말엔 나들이 인파로 막히기까지 한다 하니, 축제장을 찾으려면 일찌감치 준비해서 나와야 하겠다. 강화터미널에서 고려산 등산로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축제장에 도착했더니 오후 2시 15분. 벌써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올라가는 사람보다 많은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마음이 급하다 급해.



그러나,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산로 초입부터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들이 많다. 사실 오늘 급작스레 산행을 결정해서 출발도 늦었고, 점심도 못먹었다. 한끼쯤이야 간단히 삼각김밥으로 떼우고, 저녁에 푸짐하게 먹으려 했더니 장터에 군침도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거냐. 에라 모르겠다. 일단 먹고 보자. 


결국 등산 입구에 오르기도 전에 주저 앉아 밥부터 주문했다. 배부르면 무거워서 힘들텐데...라며 머릿속의 이성이 빈약한 소리를 질렀지만, 식탐이 늘 우세하다. 잔치국수와 묵밥한그릇을 주문하고, 인삼튀김까지 곁들이고 나니 잠시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인삼 막걸리까지 무지하게 땡겼지만 그러면 정말 꽃은 콧베기도 못보고 먹자 파티로 끝나겠지? 이성아, 힘을 내봐. 식탐을 밀어내봐~ 휴우...힘들다 힘들어. 있다가 집에 가는 길에 인삼 막걸리 두병 꼭 사 가야지. 


그나저나 인삼튀김은 처음 먹어보는데, 이거 은근 감칠맛나네? 식감은 감자튀김같은데, 익은 인삼이 달달하면서 인삼향이 은은하게 풍겨 생각 이상으로 맛있더라. 어찌보면 살짝 쌉쌀하기도 한데, 수삼 자체의 달달한 맛과 기름의 고소함이 곁들여져 별미다 별미. 오이군도 배부르지만 맛도 좋고, 몸에 좋은 인삼을 한톨도 남길 수 없다며 꾸역 꾸역 다 먹어 치웠다. 이제 산에 오르려면 진짜 큰일났구나.



고인돌 광장에서 백련사쪽으로 오르는 길엔 아직도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와~ 이미 다 끝난줄 알았던 벚꽃을 다시 보니 시간을 되돌아간 느낌이 드네. 강화도엔 4월 넷째주에도 벚꽃이 남아있구나.



씨뿌릴 준비를 마친 곱게 갈린 밭의 황토 흙이 벚꽃과 어우러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흙이 또 이렇게 이쁘게 보일 줄이야. ^^

그리고 등산로 길목 길목에 강화도 특산품, 쑥, 인삼, 나물, 순무김치, 인삼막걸리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도 요 막걸리를 팔아야 할텐데...




벚나무가 멋드러지게 늘어진 곳 아래에는 어김없이 간식거리를 판매한다. 쑥과 함께 찐 오리알도 있고, 향긋한 커피도 있다. 평소 같았으면 오리알도 하나 집어 품었을텐데, 오늘은 사실 뱃속에서 묵밥과 인삼튀김이 소화될 시간도 없이 걸어다닌다고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에 혹하지 않았다. 그래도 저 곱게 매놓은 알꾸러미는 하나 업어 오고 싶네...가방에서 깨져 봄햇살에 오리알 오믈렛이 되어 있을까봐 참는다.



잔디가 무성한 들판에 그림같이 앉아 쑥을 캐는 아주머니.

그러고 보니 어릴적에 엄마랑 쑥캐러 참 많이 다녔는데, 안가본지 오래됐네. 오이군에게 쑥캐는 즐거움을 가르쳐 줘야 겠다. 다음주엔 논가로 나물이나 캐러 가볼까나.




아직 오르막이 시작되기 전에 분위기 괜찮아 보이는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앞에서 직접 카페를 제조해 판매하고 계신 바리스타님이 매우 인상적이다. 뭔가 장인의 포스가 흘러나오는것이 커피맛도 궁금했는데, 오늘은 무리다 무리.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대체 등산하기 전에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폭식을...



다시한번 벚꽃길




백련사 근처에 오자 석가탄신일이 가까왔음을 기념하는 연등이 대롱 대롱 매달려 분위기를 더했다. 연두빛 새싹과 하얀 벚꽃과 알록 달록 연등이 봄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싱그러운 숲. 역시 산은 봄산이 제일이지~




이미 끝난줄 알았던 산수유도 이렇게 광채를 뿜으며 자리잡고 있었다. 따뜻한 4월 말의 햇살덕에 온몸으로 자체발광하고 있는 듯 보이네. 어찌나 강렬하게 빛나는지 멀리서 보고 나무에서 불이 나오는 줄 알았다. ^^;



계속해서 산을 오르자 이제 매화가 아예 개화 조차 안했다. 엄청나게 많이 올라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리듬이 다르구나. 그 1-2도의 미묘한 온도차이에도 개화속도에는 큰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드디어 진달래가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아~고지가 가까왔구나!



무거운 배를 이끌고 한참을 씩씩거리며 산 중턱에 이르렀더니 드디어 눈앞에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오오오오오~

이거 포토샵 아니었구나! 진짜로 진달래가 이렇게 산에 가득하게 피는구나!

라고, 오이군이 말했다. ^^;

그러나 아직 갈길은 멀다. 저 풍경은 힘을 내서 어서 마저 올라오라는 응원쯤 되는 것 같다. 



열심히 오르는 길에 이런 우물같은 것이 하나 눈에 띄었다. 원래 고려산 정상에는 오련지라 불리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고구려시대에 인도의 천축 조사가 이 산에 사찰을 지을 곳을 정하기 위해 연못에 핀 다섯가지 색 연꽃을 꺾어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백련이 떨어진 곳에는 백련사를, 적련이 떨어진 곳엔 적련사를, 흑련사, 황련사를 같은 방법으로 지었는데, 아쉽게도 청련이 떨어진 곳은 조사가 원하던 지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의지가 굳은 사람이었던지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청련사를 짓고, 구태여 자신이 원했던 자리를 그냥두지 않고, 원통하다며 원통암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 이름도 고려시대에 강화도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오련산이었다고 한다.

이 작은 연못은 현재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정상의 오련지를 실크기로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복제 연못에는 연꽃대신 개구리만 가득하다. 맑고 이쁘게 관리를 했더라면, 오련지 이야기가 더 신비롭게 다가올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진감래를 온몸으로 실감

연분홍빛 고운 산, 이맛에 산을 오르나보다


드디어~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으니 아까 올려다 보이던 연분홍빛 정상과 시선이 어느정도 평행해졌다. 마지막 부분은 정말 어찌나 가파른지 약간 오버해서 발등이 정강이에 닿을 것 같더라. 어쨌든 오늘 종아리 스트레칭은 제대로 했네 ^^



정상에 다다른 감흥을 표현할 길은 역시 사진밖에 없다. ^^ 너도 나도 인증샷 남기기에 바빴는데, 그러다 어떤 단체 등산객이 오이군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오이군이 한국말로 하나, 둘, 셋을 외쳐주자 자동으로 모든 이들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가득.

와하하하하~ 한국말 잘하시네요 ^^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고, 정상의 감동은 주저리 주저리 쓰는 대신 사진으로 대체.

약간 안개가 끼어 있는데다가 우리가 위치한 곳이 오후에는 역광인지라 사진속의 공기가 조금 푸르게 보여서 아쉬울 따름이다. 진정 우와 소리가 연신 나오는 풍경이었는데. 

따라서 백련사방향으로 오르시려거든 아침 나절에 가야 화사한 사진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시길.




 왜 이 꽃길을 걸으면서 게임을 하는건데 -_-; 자연을 보라고, 자연을...



고려산 진달래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탐스럽게 핀 고려산 진달래 가지로 꽃 방망이를 만들어 앞서가는 여성의 등을 치면 사랑에 빠지고, 남성의 머리를 치면 장원급제 한다고 한다. ^^ 맘같아서는 커다란 꽃 방망이를 만들어 사랑을 기다리는 싱글녀들과 고시준비하는 남정네들의 등짝을 사정없이 때려주고 싶지만 진달래 꺾는다고 경범죄+상해치사죄로 신고당할까봐 꾹 참았다. ^^ 



끝없는 진달래에 취해 걷는데, 가만히 보니 산책로를 기준으로 오른쪽엔 진달래가 왼쪽에는 쩔쭉이 자라고 있었다. 자생이라고 들었는데, 이럴수가 있는 건가? 이렇게 명확하게 경계가 나뉘어 있는것을 보니 일부러 심은 것 같기도 하고...어쨌든 진달래가 떠날 때 쯤이면 다시 철쭉이 바톤을 이어받아 등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줄 것임은 확실하다.





산책로를 모두 지나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니 드디어 역광이 아닌 화사하게 빛나는 진달래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흔하다고 무시했던 진달래가 어느새 마음속에 가득히 들어와 청순하고, 어예쁜 꽃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어디서든 진달래를 보면 이날의 감동이 되살아 나겠지.



고려산에 와서 낙조봉을 안보고 가면 섭하지

강화 8경중 하나라는 낙조봉의 일몰


대부분의 등산객은 진단래 군락지가 있는 곳 까지만 오르고, 백련사 방향으로 되돌아 내려가거나 맞은편의 청련사로 내려간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 가동이 걸리면 잘 멈추지 못하는 스타일. 등산도 마찬가지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진달래의 군무에 반해 계속해서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 부근에서 뒷다리에 쥐오를 것 같았던, 힘든 기억은 말끔히 잊어 버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가고 싶은 생각만 남았지 무언가. 그래서 계속해서 산 능선을 타고 적련사가 있는 낙조봉을 향해 걸었다.

군락지를 벗어나도 역시 군데 군데 진달래가 있는데,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좀더 은밀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낙조봉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는 고천리 고인돌군이 있다. 이곳의 20여개의 고인돌은 해발 200-300미터 위에 위치한다는 점이 독특하여, 산 아래 고인돌군과 함께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서 고인돌이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전혀 감도 못잡을 듯. ^^;



 자연의 친구 오이군은 오늘도 열심히 등산객들이 남긴 쓰레기를 주웠다


오늘은 다른 것 보다 바닥에 생수통이 많이 눈에 띄어서 아쉬움을 남겨줬다. 자신은 건강하고자 산에 와서 왜 산은 병들라며 생수통을 버리고 가는지. 그 중에는 2/3이상 물이 가득 찬 병도 많이 떨어져 있어 두배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게 했다. 아까운 물도, 돈도 낭비하는걸로 부족해 자연까지 파괴하는 사람들. 언젠가 그들도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을 날이 오려나...

나는 사실 사진찍느라 온통 정신이 팔려 진달래 군락지에 다다를 때 까지 오이군이 생수통을 줍고 다닌다는 것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가방에 발로 밞아 부피를 줄인 생수병이 40개쯤 들어있었다. 이럴땐 정말 내 남편이지만 존경스럽고, 기특하고, 사랑스럽다는 (^^;)



나는야, 파워 오이! 석양을 향해 달려가는 쓰레기 짊어진 오이군



낙조봉도 마지막 부분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아까 그렇게 힘들어 놓고, 왜 또 여기와서 삽질인걸까 잠시 정신이 들어 후회하다 뒤를 돌아 보았다. 그때 저어~멀리 능선 끝에 하얀 점처럼 보이는 고려산 정상. 내...내가 언제 이만큼이나 걸어 왔단 말인가? 굽이 굽이 펼쳐지는 능선을 보니 순간 힘든 기분대신 뿌듯함이 가득 몰려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뒤돌아 보지 말고, 즐겁게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조차 놀랄만큼 발전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매일 매일 뒤를 돌아보고 산다면, 순간 순간이 느리게 느껴지고 지겨울 수 밖에 없다. 이러나 저러나 시간은 흐르기 마련.



그리고 짜잔.

이것이 바로 깔딱고개가 안겨주는 선물이다. 마지막 힘든 봉우리 끝을 헥헥대며 오르고 나니, 너무 감동적이어서 우와소리도 안나오는 풍경이 펼쳐졌다. 때는 마침 해가 질 무렵이어서 낙조봉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 바다로 지는 황홀한 오렌지빛 태양과 그 빛을 받으며 은은하게 빛나는 진달래까지. 완벽한 역광에 배터리가 방전되서 마음에 쏘옥 드는 사진은 못남겼지만, 대략 그때의 감동을 상상해 보시기를 ^^




낙조봉을 지나 적련사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기도하는 곳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또 기가막힌 절경을 자랑한다.



저 쪽의 고려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삼방이 시원하게 뚫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득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예전에 어른들이 우리나라의 모든 산의 경치좋은 곳에는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하셨는데, 매번 그 말에 공감하게 된다. 여긴 또 어쩜 이렇게 시원하고 멋진 풍경을 가지고 있을까나.



마지막 내려오는 길까지 살갑게 밝혀주는 진달래와 눈맞추며 고려산+낙조봉 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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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면 이야기가 너무 심플하지?



생각치도 못한 한밤의 히치하이킹

용기를 내 길에서 밤을 샐 것인가, 용기를 내 히치하이킹을 할 것인가

신나게 산행을 마치고, 밤이 되기 전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고 좋아했는데, 딱 거기 까지였다. 정류장엔 36, 38번 버스가 선다고 분명 쓰여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는거다. 음...뭐지? 모바일로 버스 검색을 해보니 배차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정류장에 안내 번호가 찍혀 있어 전화해 봤더니 ARS응답기가 차고지에서 대기중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식은 땀이 주륵...

서울에서 나고 자란 뼛속까지 도시뇨자인 나는 가끔...사실은 자주 시골에선 버스가 2-3분 간격으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호주에서 아침에 그렇게 버스를 놓치고도, 스위스에서 그렇게 학교와 알바를 1시간씩 늦고도 아직도 버스가 시간표에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에 익숙해 지질 않는거다. ㅠ_ㅠ 그래. 사실 그건 핑계고, 강화도는 서울에서 가까와서 그런지 별로 시골이라 느끼지 못했던 잘못이 더 크다. 강화도라면 그래도 버스가 자주 다닐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날벼락. 오늘 버스는 끊기기라도 한걸까?


그때 다행히 어떤 아저씨와 약간 단순한 마인드를 가진 여자아이가 지나가기에 아저씨에게 여기 버스오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느긋한 말투로, 그럼 오지이~근데, 몇시에 오는지는 아무도 모르지이. 때되면 오긴 올거야. 근데, 자주는 안와. 언젠가는 오겠지. 라는게 아닌가. 그 득도한 듯한 말을 듣고 잠시 맨붕에 빠져있는데, 단순한 마인드의 여자아이는 오이군을 보고, 헬로, 왓? 하우 아 유~, 헬로, 헬로~ 난리가 났다. 아까는 오토바이타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멈춰서서는 헬로라고 하며 싱글 벙글 웃더니, 이 여자아이도 오이군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말시켜보고 신기해 한다. 와우. 여기 진짜 시골인가벼. 어릴적 생각 나네. ^^; 오이군이 헬로라고 답례하자 왓? 왓? 하며 깔깔거리더니 아저씨를 따라 쪼르르 달려갔다. 이 상황 뭔가...굉장히 영화스럽다.


어쨌든 우리는 지나는 차를 붙들어 세우느냐, 강화읍내까지 6km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느냐 아니면 여기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냐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그러나 해가 뉘엿 뉘엿 져서 밤이 되니 오싹 오싹 날씨가 추워지네? 안되겠다. 오이군, 긴다리좀 쓰자. 걷어 붙여! 차좀 세워주세요오~섹시한 긴다리 있어요. ^^; 바지 걷고 있을땐 아무도 안서더니 바지 내리고 얌전하게 손흔들었더니 바로 차가 앞에 섰다. 그런데, 운전자 아저씨는 창문도 안내리고 그냥 타라며 손짓하네? 이렇게 나 막타도 되는거? 창문에 살짝 썬탠이 되어 있어 앞에 탄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안갔는데, 뭐여 홀린듯 그냥 냉큼 줏어 닸다. 뭐 오이군도 있으니까...^^; 추워서 닭살이 쫙쫙 돋는데, 내가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리게 생겼어. 다행히 느긋한 말투의 인상 좋은 아줌마 아저씨가 어디까지 가냐며 물으신다. 휴우~긴장이 풀리니까 졸음이 오네. 


정말 운이 좋게도 이 농부 부부는 강화에서 농사를 짓는데, 집이 우리집 근처였다. 거기를 매일 출퇴근 하시는건가? 아니면 가끔 내려오시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물어봤는데, 뭔가 동문서답이 나왔던 듯) 어쨌든 덕분에 생각치도 않게 너무 편하게 집에 올 수 있었다. 두분은 우리가 뒤에 탔다는 것도 잊고 계셨는지 매가 자꾸 병아리를 물어가서 우리에 지붕을 만든다는 둥, 주말에 소를 잡을거니 옆집 사람한테 부탁해야한다는 둥, 까치가 널어 놓은 곡식을 쪼아먹어서 울타리를 친다는 둥 하는 대화를 나누시다 그냥 집으로 가실 뻔 하셨다는. 그러다 아주머니가 아참, 어디서 내려드려요? 하고 묻자 아저씨는 아~뒤에 사람 있었지. 하시는게 아닌가. ^^;; 워낙 반응이 느긋하시길래 히치하이커들을 이렇게 종종 태워주시냐고 묻자, 매번 그 길을 지날때 한두명씩 태워다 준다고 하셨다. 와~ 이게 바로 그 훈훈한 시골 인심이라는 거구나. 

산도 아름답고, 음식도 맛나고, 사람들도 착한 멋진 강화도.

오이와 감자의 기억속에 늘 기분좋은 곳으로 남을 것 같다.



사람좋고, 경치좋은 강화도 이야기 fin

여행날짜 | 20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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