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선지 불명의 깜짝 크리스마스 여행 선물

10년 전 스위스 산타를 처음 만난 그날로 돌아가다

▲ 드디어 사진찍을 땐 마누라보다 살짝 앞으로 가야 사랑받는 사실을 습득하게 되었다. 이걸 이해 시키는 데만 무려 10년이 걸렸다.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받는다. 서양권 문화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생일, 결혼 기념일 등 이벤트를 서로 챙겨주며 삶의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오랜 연인이 되어 보셨다면 이해하실텐데, 서로에게 익숙해 진 나머지 설렘은 고사하고, 서로의 존재 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채 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나의 존재를 요란하게 부각시키려 바둥거리지 말고, 없을 때 빈자리가 아쉬운 사람이 되도록 살라 하지만,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빈자리가 생긴다면 이미 늦어 버린 것이 아닌가.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이벤트를 매번 쥐어 짜내어 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재밌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인생은 어느정도 노력한 대로 흘러가기 마련. 물론 변수도 많지만, 어쨌든 우리는 원하는대로 나름 재미있게 산다고 믿고 있다. (서로 세뇌한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는 그 이벤트 중 하나인 우리의 10번째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 10여년 전 어느 날. 오동 포동 앳된 모습의 오이군과 새카만 감자. 이땐 호주의 햇살에 하도 그을려져서 한국인들에게 한국말하면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냐며 놀라곤 했다는. -_-;


2014년 12월의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함께 맞이한 10번째 크리스마스였다. 

10여년 전, 사랑과 우정 사이의 애매한 감자와 오이를 확실하게 연인으로 묶어준 계기가 바로 크리스마스 였기 때문에 우리에겐 나름 의미가 컸던 날이다. 감자보다 호주 비자가 먼저 끝나 고국으로 돌아갔던 오이군이 호주의 최 성수기인 크리스마스에 엄청난 비행기 삯을 지불하고, 2주간 감자를 만나러 호주로 돌아왔던 것이다! 물론 돈으로 사랑을 평가할 순 없지만, 10년전, 아직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되어 통장이 빈곤했을 그 때에 근 300만원 가량의 거금을 비행기 값으로 지불해가며, 나 하나 보기 위해 그 먼길을 날아 왔다는게 쬐끔 감동이 되지 않을 수 없더라. 크리스마스 새벽, 나와 룸메이트가 막 잠에서 깨어나 부시시한 사자 머리를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시각에 오이군은 산타모자를 쓰고, 여자들만 살던 우리집을 습격했다. 그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생쇼 덕분에 나는 우리집 여자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번에 샀고, 나의 기억속에 그냥 친한 친구로 남겨질뻔 했던 오이군은 그날부로 정식 연인으로 승격, 답답한 원거리 연애질의 화촉을 밝혔다.


▲ 스위스에서 날아 온 크리스마스 선물들.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런 식으로 며칠동안 트리아래 쌓아뒀다 성탄절 아침에 풀어 본다. 까비의 불량품 검사를 통과하면 성탄절 준비 완료!


그리고 지난 크리스마스가 바로 그로부터 10년째 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1년 동안 오이군이 갖고 싶다고, 또는 필요하다고 했던 물건 리스트를 기록해 두었다가 한방에 모두 사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쌓아두었다. 꽤 많은 선물 상자가 쌓여있는 걸 보니 혼자 기분이 좋다. 선물은 역시 받는 것도 좋지만, 주는 것도 엄청나게 설레이는 것 같다. 음...? 그런데, 오이군이 가져다 놓은 선물상자는 단 한개네? 그리고 카드 하나. 뭘까? 콩알 다이아? (우리는 정식 결혼반지를 하지 않았다) 난 그런거 안좋아 하는데...받고 바로 팔아버릴까? 나는 값비싼 장신구나 가방, 옷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다니자니 잃어버리거나 망가질까봐 두렵고, 집에 모셔 두자니 아깝다. 장신구를 좋아하지만 잃어버려도 속상하지 않을 가격의 것이 좋고, 옷도 적당히 막 입다 버려도 배아프지 않을 것들이 좋다. 오이군이 그걸 모르진 않을테고, 저 상자는 대체 뭘까.


궁금한 며칠이 지나고 성탄절 아침, 드디어 선물 개봉을 했다. 상자에는 낀채로 터치액정 작동이 가능한 스마트 장갑이 들어있었다. 그래. 콩알 다이아 보다는 쓸모있으니까 만족^^; 그리고, 카드에는 1월 6일까지 까비 부모님께 맞겨 놓을 것. 산타로 부터 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었다. 사실 난 오이군이 이번이 10번째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모르거나 별 의미를 두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카드를 읽는 순간, 행선지도, 여행기간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우리가 호주로 갈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스위스 산타를 만났던 바로 그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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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조금 늦은 크리스마스

날짜가 문제더냐, 당신과 함께라면 내마음은 늘 크리스마스다


여행 삼일 전 넌지시 여름 옷을 싸라고 말해줘서 나는 호주 행을 확신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우리가 처음만난 시드니가 아닌 캐언즈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난해 세이셸에서 20미터 이상의 깊은 물에 들어가는게 무서워서 내가 어드밴스드 다이빙 자격증 습득을 거부하자, 오이군이 미끼로 던졌던 것이 바로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리프 다이빙 투어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꼬임에 넘어가 공포심을 눌러가며 자격증을 땄고, 오이군은 이때까지 그 상품(?)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지 않았었다. 아마 이번에 그 상품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묶어 한방에 주려나보다. 뭐 그래. 가격이 좀 할테니 선물 두개가 묶여 뭔가 손해보는 것 같지만 용서해 주자. ^^;;



 1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위엄 Great Barrier reef


여자의 직감은 꽤 신빙성이 있다. 예상대로 우리는 캐언즈로 날아갔고, 4일간의 보트 다이빙 투어를 떠났다. 나는 늘 그렇듯이 정신없이 배멀미를 해서 대체 이것이 선물인가 고문인가 헤깔렸지만, 어쨌든 다이빙을 하는 동안만은 멀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꽤 행복했다.



세계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를 검색하면 꼭 끼어 있는 코드홀 Cod hole. 나보다 컸던 포테이토 코드(그루퍼)들이 직원처럼 상주하고 있어 매우 유명하다. 내 키를 훌쩍 넘는 녀석들이 자꾸만 다가와 밥달라고 들이대서 살짝 무섭기도 했다.





명불 허전의 아름다운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생생히 살아있는 형형색색의 산호들과 물보다 많게 느껴지는 다양한 생선들이 이루는 군무가 가히 환상적이었다. 



 2  아름다운 것엔 독이 있다! 캐언즈의 바다


다이빙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전에 휴식을 취해야 하므로 캐언즈에 머물렀다. 쉬는 동안 해변에서 물장구나 치고, 놀면 좋겠구만 아쉽게도 캐언즈를 비롯한 호주 북부의 바다에는 호주의 여름철(11월 말 - 4월 중순)까지는 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다. 쏘이면 2-5분이면 끝난다는 박스 해파리가 해안가로 떠내려 오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이루간지 해파리도 떠다닌다. 이녀석은 증상이 천천히 오지만 해파리가 작아서 사람들이 증상이 나타나도 해파리가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포악한 바다 악어도 가끔 돌아다닌다고 하니 호주 북부 바다는 여름엔 총체적 난국.



그러나 캐언즈의 덮고, 습한 여름은 물놀이를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바다가 아닌 산위의 계곡으로 향했다. 강 역시 민물, 바닷물 모두에서 살 수 있는 바다악어가 돌아 다닐 수 있으므로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렇게 계곡 중간 중간에 물이 넓게 고여 있는 곳을 스위밍 홀이라 부르는데, 바위를 넘어 넘어서는 큰 바다 악어가 오지 않고, 만약 악어가 있다 하더라도 온순하고 작은 민물악어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물놀이를 하러 이런 곳을 찾는다.



호주 북부에도 과일박쥐가 잔뜩 살고 있다. 얘들은 야행성이 아니라서 대낮에 이렇게 배트맨 군무를 하거나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아기 울음소리를 내며 꽥꽥 거린다. 과일박쥐가 요즘 에볼라 숙주라고 유명해 졌는데, 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작년에 세이셸에서도 많이 보고, 호주 북부 전역에 무수히 서식하고 있지만 이 나라들은 에볼라로 고통받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습도가 엄청나게 높아 숨쉬기도, 걷기도 힘들었던 캐언즈는 사방에 꽃이 만발해 있었다. 색색깔의 자연이 보기는 참 좋은데,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정신을 못차리도록 덥고 습해서 딱히 이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3  10년만에 다시 맨리로


사실 시드니 공항에서 캐언즈행 국내선으로 갈아타며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캐언즈로 가는구나...다이빙 생각에 신이 나면서도, 우리의 젊음이 곳곳에 녹아 있는 시드니의 맨리가 다시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이빙과 캐언즈를 둘러 본 후, 여행이 다 끝나고 집에 가는 줄 알았던 내게 다시한번 1월의 산타가 카드를 들고 찾아왔다.

맨리Manly 선착장으로 네가 좋아하는 팟타이 먹으러 갈까?



 4  아~ 쉘리 비치, 쉘리 비치 Shelly beach


다 끝난 줄 알았던 여행은 그렇게 일주일이 연장되었다. 나는 꿈에 그리던 맨리로 돌아왔다. 다시한번 한여름에 산타모자를 쓴 오이군과 함께.

맨리에 와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맨리 해변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면 있는 쉘리비치였다.



이곳엔 정말 무수한 추억이 묻어 있다. 우리 뿐만 아니라 같은 어학원에 다녔던 모든 이들에게 그럴 것이다. 일주일에 최소 4번은 모여 친구들과 바베큐 파티를 했던 곳이니까.



변함없이 무료 바베큐 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바다 내음을 맡으며 캥거루고기 햄버거와 호주의 즙이 많고, 달콤한 옥수수를 노릇 노릇 구웠다.



 5  추억의 시드니 크루즈


10년 전 그가 크리스마스 휴가 2주를 보내고 돌아가던 마지막 날, 나는 그에게 시드니 크루즈 식사를 선물 했었다. 그때는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이어서 점심 크루즈를 탔지만, 이번엔 10년차 직장인이므로 쬐끔 더 여유가 생겨서 저녁 크루즈를 탔다. 같은 회사가 맞나 싶을만큼 메뉴가 다르고, 테이블 세팅과 서비스도 달랐다. ^^; 그러나 로맨틱한 시드니의 풍경은 변함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6   노스 헤드, 시드니 하버 국립공원을 걷다


내가 맨리에서 참 좋아하던 곳이 노스헤드North head 전망 포인트와 맨리 와프Manly Wharf 에서 스핏 브릿지Spit bridge까지 이어지는 약 10km 정도의 트래킹 코스였다. 맨리의 풍경과 시드니 시티, 하버 브릿지의 풍경을 바다 건너로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가슴이 탁트이는 절벽 풍경이 일품이다. 이 곳들은 예전에 벅찬 알바에, 진로 고민에, 불지르고 떠나가는 오이군에 뒤죽 박죽이었던 내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곤 했었다. 


▲ 전망감상하는데, 슬금 슬금 내 가방 검사하러 기어나온 이스턴 워터 드레곤 Eastern water dragon


놀랍게도 내가 그리 좋아했던 스핏 브릿지 트래킹 코스를 오이군은 한번도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다기에 이번에 도전을 했다. 끝까지 가고 싶었지만, 너무 늦게 출발한데다가, 흐린날씨를 예고했던 일기예보가 확실하게 틀려주는 바람에, 햇볕을 가려줄 모자 하나 없이 걷다 지쳐 결국 7km 즈음 해서 포기. 이렇게 또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 이유를 남겨두는 걸까? 


10년만에 찾은 호주는 이렇게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소소히 달라진 것이 꽤 많았지만, 대부분 우리가 그리웠던 것들은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더 감동을 주더라.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로맨틱한 나의 남편처럼.



호주 추억 여행 스케치 fin.

본격적인 추억 여행 이야기는 지난 서호주 여행기가 끝나면 이어집니다

여행날짜 | 2015.01.07 -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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