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 Instagram Facebook NAVER 이웃 E-mail 구독

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Seoul, Inchon | 서울, 인천
한해의 마지막 단풍놀이는 언제나 안양천
2015. 11. 26. 12:29

도심의 가을, 안양천 풍경
도심의 한발 늦은 단풍놀이

 

요즘 날씨가 왜 이런가요. 가을은 산책의 계절인데 말이죠!

 

올해는 이상하게 11월 내내 날씨가 화창하게 맑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산과 들에는 10월말이면 단풍이 절정에 이르거나 끝나버리지만, 뜨끈 뜨끈 각종 열기로 가득찬 도심은 11월 중순이나 되어서야 드디어 단풍에 물이 올라 사람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데 말이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꾸물 꾸물한 날씨 덕에 도심속의 단풍이 예년처럼 설레임을 주는 대신 아쉬움만 더해주다 어영부영 끝나버렸다.

 

 

 

 

 

항상 11월은 이렇게 서유럽같은 날씨가 이어졌었나? 한국의 가을은 맑고, 푸르고, 높은 하늘이 뽀인트 아니었던가?

잠시 지난 가을들의 풍경이 궁금해져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리는 매년 가을에는 집 근처였던 안양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당연히 그해의 마지막 단풍과도 늘 안양천에서 작별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굿바이 안양천! 4년동안 고마웠다
10월 중순이 넘어도 코스모스가 만발하는 도심속 꽃밭

 

구로구 고척동에 새로 완공된 야구경기장, 스카이돔이 뒤로 보인다

 

2015년에는 10월 초, 전국일주 프로젝트에 따라서 안동으로 내려온 덕분에 안양천의 단풍을 구경하지 못했다. 대신 4년간 우리가족에게 소소하지만, 더없이 소중하고, 즐거운 기억을 가득 안겨준 안양천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이사하기 이틀전 이곳으로 발걸음을 했었다.

 

 

까비양이 우주여행을 떠난 5월 이후에 발걸음이 뚝 끊겼다가 오랜만에 찾아갔는데, 봄꽃이 가득했던 그곳에 이제는 코스모스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9월 중순에 이미 만개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10월에도 여전히 화사한 자태를 뽑내며 수변을 가득 메우고 있더라. 

 

그런데, 나는 아직 이곳을 다시 찾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저 꽃 아래를 궁딩이 살랑 살랑 흔들며 지나가던 까비의 모습이 사방에서 아른거리는 듯 해서 계속 기분이 우울해 지는 거다. 모처럼 오이군과 나왔는데, 분위기 망칠까싶어 애써 밝은 척 하며 열심히 꽃사진 찍기에 집중을 했다. 앗...그런데, 어떤 욕심사나운 꿀벌 한마리가 꽃가루를 잔뜩 뒤집어 쓰고, 열심히 꿀을 빨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까비 같아 보이는게 아닌가. 통통하고, 복슬복슬 귀여운데, 음식만 보면 한없이 욕심사나와지는 모습까지 어쩜 저렇게 똑같을까. 녀석 다음 생에는 좋은 환경에서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했더니 요기 이 식탐많은 꿀벌로 태어났나보다.

 

 

그런데, 오히려 저 식탐꿀벌 덕분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까비도 저 꿀벌처럼 어디 좋은 곳에서 원없이 마음껏 먹고, 뛰놀고 있겠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이군에게 급 카메라를 건네주고, 내 사진도 좀 찍어보라며 들이대기 시작했다. ^^; 꽃밭이 워낙 예쁘다보니 그럭 저럭 묻어가는 사진을 몇장 건졌다.

 

 

10월에는 11월의 궂은 날씨를 대비해서 열심히 돌아다니라는 경고였는지 화창하고 아름다운 가을하늘이 연신 이어졌었다. 

아~정말 높구나.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목이 뻐근해서 고개운동을 하는데, 저편에 어떤 커플이 꽃구경을 나와서 다정히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우리도 누가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사진 좀 찍어주면 좋겠구만...

 

 

 

 

 

아쉬운대로 기다란 오이군의 팔을 셀카봉 삼아 커플 셀프 사진을 한장 남기고, 그렇게 안양천과 기약없는 이별을 했다. 

다음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때는 이곳에 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안양천의 단풍은 이런 모습이랍니다
단풍 명소 찾아 삼만리 할 필요가 없다구요~

 

 

그럼 감자 오이 그리고 까비가 매년 가을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한번 살펴 보자.

옆이 바로 도로라 조금 시끄럽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유명 단풍명소 부럽지 않은 풍경을 자랑한다. 양쪽 수로변을 따라 전부 벚나무가 이중으로 심어져 있어서 가을 단풍도 짙은 주황빛으로 화사하게 물들기 때문이다. 나무 사이의 오솔길도 흙길로 되어 있어 마치 어느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고 보면 벚나무는 봄에 꽃이 필 때는 청순하게 예쁘고, 여름에 붉은 체리가 잔뜩 매달릴 때는 요염하게 예쁘고, 가을에 단풍이 질때는 찬란하게 예쁜 것 같다. 베어져서는 또 짙은 빛의 우아한 목재가 되니 아니 이런 잘난 나무를 봤나.

 

 

가뭄에 콩나듯 감나무도 있는데, 푸짐하게 감이 매달린 모습이 보기만해도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긴긴 길에 차도 다니지 않으므로 어린이나 늘 갇혀있던 애견들도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까비 할머니는 연세가 있으신 덕에 뛰어 놀진 않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안양천에 오면 꼬리를 한껏 치켜 올리고, 우리 옆을 졸졸 따라오며 행복해 하고는 했다.

 

가족사진

 

이때가 11월 16일이었는데, 아직 단풍나무도 은행나무도 완전히 물들지 않았었다. 매년 11월 20일 전후가 안양천 단풍의 절정기 였던 듯 하다

 

 

흙길을 밟으며 어떤 숲속에 있는 상상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까비도 아스팔트 바닥은 본채 만채 지나가는데, 흙길만 나오면 어찌나 좋아하는지 10cm간격으로 킁킁 대느라 도무지 전진할 생각을 안한다. 사람도 동물도 역시 흙을 밟고 살아야 하는데 요즘은 도심에서 흙길을 마주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내가 참 좋아하던 풍경

 

복슬 복슬 강아지 풀. 가을에 보면 그 온화한 보드라움이 두배로 빛난다. (그런데, 만지면 사실 별로 안부드럽다는 ㅋ)

 

아하핫! 나는 야생 들개닷 >_<

 

나는 행여나 다치거나, 벌레라도 붙을까 저런 풀숲에는 못들어 가게 하는데, 스위스 산골 소년 오이군은 동물은 자연에서 뒹굴어야한다며 까비를 풀숲에 마구 풀어 놓는다. 그러면 또 용케 안다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구덩이에도 빠져가며 신나게 잘 쫓아 온다는...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불안해서 그리 편치 않다. 이것이 엄마와 아빠의 차이인걸까? 아이가 없기를 망정이지 매일같이 육아 방식을 가지고 오이군과 싸울 뻔 했다.

 

 

 

 

평범산 산책길에도 오이군의 쓰레기 헌팅은 계속 된다

 

오이군은 까비를 풀숲에 풀어두고, 본인은 열심히 쓰레기를 줏으러 다닌다. 그럼 나는 오이군이 물에 빠질까, 까비가 구덩이에 빠질까 노심초사 그들 뒤를 쫓느라 산책길이 무지 바빠진다. 그나저나 저런 1.5리터짜리 커다란 페트병은 왜 버리고 가는 건지. 물이 가득 든 채로 말이다. 안양천변은 은근 쓰레기가 많아서 따로 쓰레기 봉투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저런 큰 봉지를 하나 줏어 거기에 담으면 된다. -_-;

 

 

아~가을. 좋구나아~ ^^

 

 

 

 

11월 29일, 늦가을의 풍경
안녕 단풍! 내년에 또 만나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가을 산책을 나간다. 이때는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들이 바삭 바삭 말라 있을때라 그 위를 뛰어다니며 낙엽밟기 놀이를 하기 위해서 이다. ^^;

 

그나저나 이 사진은 이때는 까비가 떠나기 6개월 전인데, 이때까지도 집에서부터 안양천까지 그 긴긴 거리를 조그만 다리로 혼자 다 걸어가고는 했었다. 가끔 힘들어해서 중간 중간 같이 휴식을 취해야 하기도 했지만, 안아주면 내려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육교 계단도 끝까지 혼자 다 오르는 등 건강해 보여서 20살은 넉끈히 살아 줄줄 알았건만. 오래 오래 함께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산책을 더 자주 데려가 주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낭만 가득한 갈대 밭에서 오이군은 이날도 쓰레기 봉투를 펄럭이며...

 

 

11월 말이 되면 단풍잎이 거의 다 떨어지며 드디어 안양천도 겨울 준비에 들어간다. 이렇게 늦게까지 단풍이 남아 있는 덕분에 바쁜 일상속에 한발 늦어 단풍을 못본 이들에게 마지막 대안이 되어 주고는 했었다.

 

 뭐...뭘 줏어 먹은 게냐 -_-; 옛날엔 고기를 입에 넣어 줘도 안먹었는데, 나이 들더니 식탐이 길에서 아무거나 줏어먹는 레벨에 이르렀다. ㅠ_ㅠ

 

 

안양천에서 돌아오는 길, 마지막 은행잎이 노오랗게 흔들리는 담장위에 나와 엄마라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 멀리서 보고 뭔지 모를 향수가 느껴지는 그 짧은 한마디에 어딘지 뭉클해져서 조금 더 가까이 보려고 다가 갔는데...

나와 엄마인 줄 알았던 낙서는 자세히 보니 한 획이 빠진 나와 마 였다.

엄마와 임마. 한끝차인데, 느낌 참 다르네.

야, 임마! 누가 낙서를 이렇게 꺾어 쓰기까지 해가며 정자로 또박 또박 쓰니. -_-;

운치 있을 뻔 했던 안양천의 마지막 가을 산책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임마...

허허...

참...

임마...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

2015. 10.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