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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 유럽/Switzerland | 스위스댁 이야기
뇌샤텔 Neuchâtel 에서의 마지막날. 감자의 귀환
2013. 12. 7. 12:30

스위스에서의 6년
그리운 나의 조국으로 이사가는 길

 

 

2006년 어느 벗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따라 스위스라는 나라에, 오기전엔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어서 유럽의 남쪽인지 북쪽인지도 잘 몰랐던 그 나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참, 지겨워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 연말마다 또 한해가 눈깜딱 할 사이에 가버렸음에 화들짝 놀라곤 하던 나라였는데...

벌써 근 6년이라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오늘 나는 공식적으로 이 나라를, 뜬다.

 

 

 

 

 

 

 

안녕, 뉴샤텔!
잘있거라, 나의 제 2의 고향

 

호주, 스위스에서 7년간의 떠돌이생활(?)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이다. 물론 가끔 한국에 들렸지만 그간은 관광객처럼 다녀갔었고, 이번엔 정말 돌아가는 중이라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스위스에서는 내 나라가 아니어서 그런지 한곳에 오래 머물러도 그닥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질 않았고, 내방이 없어진 한국 집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7년간 집없이 떠돌았던 그런 기분? 그런데 이번엔 간만에 정말 집이라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돌아가는 아침이 설레였냐고? 천만에. 옷의 2/3나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들고갈 짐이 너무나 많아서 며칠째 스트레스를 왕창 받느라 그런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초무거운 짐을 질질 끌며, 입이 댓발은 나온 오이덕분에 아침부터 꾸질꾸질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3주간이나 못볼텐데, 거 쫌 무거워도 웃어주면 안되나. 어차피 결국 들어줄거면서. 차라리 무거워도 혼자 끌고 가는것이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뭐하는 짓인가. 힘은 힘대로 쓰고, 고맙단 인사도 못받은 오이군. 궁시렁 궁시렁 @#$^&&#$$%&*

결국 3주간의 장기(?)이별을 앞둔 로맨틱한 이별따위는 집어치우고, 거의 야채전(쟁)에 가까운 분위기로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기차를 탔다.

 

 

 

 

영국 신사
말로만 듣던 그 영국신사를 만나다

 

기차를 타고, 조금 있으려니 나의 다정한 스위스의 친구들이 작별의 메세지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따뜻한 친구들 덕분에 기분이 누그러져 마지막을 기념하듯 제대로 화창해주는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스물스물 멀미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ICN이라는 스위스 고속기차는 최대한 마찰을 줄여 빨리 가기 위해, 차체를 좌우로 흔들며 카빙을 하는데, 이게 아주 압권이다. 발끝부터 다 넘어오게 하는 멀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_-; 원래도 멀미를 잘하는 나에게 이 기차는 곰팡이에 뿌려진 락스같은 존재로 점심때 먹은 카레에 섞인 올리브 오일 냄새와 합세하여 나를 녹여 의자에 붙이려고 했다. (나는 올리브 기름 냄새를 혐오한다.) 의자에 반쯤 무너져 정신을 잃어가고 있을 무렵 제네바에 도착을 알리는 안내가 어슴프레 들려온다. 앗, 찬공기 냄새! 정신이 번쩍 들어 초울트라 무거운 짐 3개중 일단 가장 가벼운것만 들고, 계단 아래로 진짜 감자처럼 데굴데굴 굴러내려왔다. 심호흡을 몇번을 하고, 나머지 짐 두개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떤 그닥 힘세보이지도 않은 남정네가 내 짐위로 뛰어들어서, 그 무거운걸 번쩍 들고, 척척 기차 밖으로 내려준 것이었다. 그뿐아니라 저~어 멀리 있던 카트로 바람처럼 달려가 본인의 거금 2프랑까지 들여 꺼내어 내게 전달해 주었다. 짐도 사뿐하게 그 위에 올려주고. 미처 고맙단 인사를 장황하게 할 겨를도 없이, 그는 굉장히 센 영국억양으로 '좋은하루'라며 거의 펑하고 사라질것만 같은 분위기로 총총사라졌다.

아...저것이 그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영.국.신.사? 영국가서도 못본 영국신사를 여기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났다. 동시에 아침에 내 짐이 많고, 무겁다며 툴툴대며 인사도 제대로 안하던 남편이랑도 좀 비교가 되서 웃음이 피식 났다. 

 

 

 

 

창공의 감자 그리고 뉘샤텔
하늘에서 바라본 내가 살던 곳

 

루프트한자에 허용된 기내짐이 8kg였는데, 내 배낭은 무려 17kg였기때문에 스캐너 통과시 약간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아무 제제 없이 비행기에 탔다. 무거운 배낭을 가벼운척 하느라 어깨에 감각이 없어졌지만 말이다. 이렇게 피곤한 아침을 보내고, 감자는 다시한번 제네바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잠시 가다보니 금새 저쪽에 새파란 호수가 보인다. 어느나라야? 레만호수는 이미 지났고...

아~뉘샤텔 호수구나!

그렇다. 뉘샤텔. 내가 5년 반이나 지지고 볶은...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머지 한없이 지루한 도시. 이렇게 하늘에서 보니 참 기분이 묘하다.

그나저나 내가 1시간 15분이나 걸려 멀미 팍팍하며 온길을 10분도 안되서 되돌아 오다니. 이거 억울한걸. -_-;

 

 

왼쪽에 가장 큰 호수가 뉴샤텔 Neuchâtel (대략 뇌사텔, 뉘샤뗄, 느샤텔 쯤으로 발음)호수로 스위스안에 100%포함된 호수중 가장 크다. 중간은 모라 Morat, 오른쪽은 비엔느 Bienne 호수. 세 호수가 작은 운하로 연결되어 있어 배타고 한번에 세 호수를 모두 유람하는것이 가능하다.

 

 

 

 

프랑크프루트 Frankfrut, 한박자 쉬고
정리 정돈엔 독일인을 따를 자가 없지!

 

 

한시간 반정도  멀미 나는 소형여객기가 나를 마구 뒤 흔든 후, 프랑크프루트에 던져버렸다. 오늘 여행, 영 심상치 않다. -_-;

 

창공에서 바라본 프랑크푸르트는 정리 잘하기로 유명한 독일인의 명성을 고대로 보여주듯 각이 제대로 잡힌 도시였다. 그렇다고 삭막한 느낌이 아니라 푸른 숲에 둘러쌓인, 나무가 많아 매우 쾌적해 보이는 도시다. 공항역시 푸르른 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구나. 유럽은 도시에 어찌 그리 나무가 많은거지? 예전엔 나무 따위 관심없었는데, 이제 이런게 부러운 나이가 되었나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엔 공짜 인터넷이 없는데, 내 17kg짜리 가방이 아이쇼핑마저 허락해 주질 않아서  대합실에 다소곳이 앉아 '한국인 구경'을 시작했다. 제네바에서 올때는 몇 보이지 않던 한국인들이 이제 거의 95%가 되어 대합실에 옹기 종기 앉아 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대량의 한국인. 생긴것도 딱 한국사람같이 생겼다. 신기하다 ^^; 그들 틈에 묻히니 주위를 두리번 거려도 별로 주목 받질 않아서, 간만에 실컷 사람구경을 할 수 있었다. 해본사람은 알겠지만 이것, 은근히 재밌다. ㅋ 

 

 

 

드디어 진짜 비행기(영화를 맘껏 볼 수 있는!)에 올라타 자리를 잡았다. 내 옆자리는 위 사진에 보이는 날씬한 파리군. 동물은 비행기 금지 아닌가? --ㅋ 이렇게 외래 곤충이 유입되는거지...때려잡고 싶었지만 나는 벌레를 잘 못잡는다. 음...나중에 감질나는 양의 기내식을 뺏어먹을려고 달려들면 조금 열받을 것 같은데...

 

 

 

 

 

 

러시아, 몽고 그리고 중국 대륙
알콜중독비행

 

 

오늘 내 몸이 왜이럴까나. 비행기에서는 멀미 안하는데, 오늘은 예외랜다. 아름다운 러시아 대륙위의 노을을 보고나니 영화고 뭐고 속이 너무 뒤집혀서 죽을 지경이다. 잠을 자려고 발악도 해 보았는데, 비행기 안에선 그것 역시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외부의 힘, 즉 알콜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레드와인이 좋겠으나 두통을 동반하니 베일리스를 마시자. 하압~

꼴딱.

맛.있.다. 

이거 맛있어서 오히려 잠이 깬다. 어쩌나...

 

그래, 레드와인을 마시고 두통이 오기전에 잠들어 버리자. 스튜어디스가 한잔 가득 인심좋게 따라주며 오늘 아침 프랑스에서 도착한거라며 친절히 설명한다.

요것도 맛있네.

홀짝.

10분 초롱 초롱.

홀짝.

30분 또랑 또랑.

벌컥벌컥.

1시간 말똥 말똥.

뭐냐...

잠도 안오고 두통도 없다. 와인맛나는 물이었나? 

 

인심도 후해라. 누가 위스키를 이렇게 따라주나...

 

그러나 뻐근한 몸과 뒤집히는 속은 해결이 안된다. 그래서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위.스.키. 

원래 비행기에서 센 알콜은 안마시는데 오늘은 예외.

이쯤되니 스튜어디스가 나를 알콜중독으로 간주했는지 컵에 찰랑 찰랑하게 한가득 위스키를 부어준다. 받아들며 사과주슨줄 알았다 ...-_-; 윗 사진은 이미 크게 두 모금 마신 후에 찍은 것. 어쨌든 효과는 쫌 있어서 반도 못마시고, 대략 엉거주춤하게 잠들기 시작했다.

 

 

 

 

오~나의 집
스마트폰 중독

 

고통스런 비행과 어설픈 잠자리에 뱅어포처럼 빠짝 건조된 나는 환상적인 몽고의 사막지대와 안개속에 어슴푸레 가려진 신비로운 황해의 섬들을 보면서도 사진기를 들이댈 정신을 찾지 못했다. 멀미인지 숙취인지때문에 늘 모자란듯 했던 기내 아침식을 절반도 먹지 못했다면, 그 상태가 짐작이 가실란가?

 

착륙.

사랑하는 나의 조국.

그러나 웃을 기운도 없이 황폐해진 감자조각. 

 

 

그래도 힘차게 문을 나섰더니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일년넘게 못본 우리 아버지. 그래도 매일 본듯한 느낌. 이런것이 가족이란것이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도통 내 눈을 마주치질 않고 아버지, 날 스마트 폰으로 찍고 계신다. 메두사를 물리칠때 눈을 마주치면 돌이되기때문에 거울로 봤다는 뭐 그런게 생각이 나네...

테크놀러지가 사람들의 사회성을 망친다더니 -_-;

아버지, 화면으로 말고, 두눈으로 나를 좀 보소! 여기 사이버 딸 말고, 진짜 딸이 왔수다.

 

아~ 참 힘든 여행이었다. 내년 생일에는 우리 오이군이 나에게 순간이동기계를 선물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이렇게 2011년 9월 14일, 토종감자, 감자골로 돌아왔다.

 

 

 

       

순간이동이 필요해!

여행일자 : 2011.09.14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스위스 여행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다음 책을 참고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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